아무 맛도 없는데, 맛있다…이것이 경지 오른 식도락
극강의 무미 곱씹는 맛 녹두전
입안서 ‘사각사각’ 애동고추볶음
씹을수록 소박한 맛 호박잎전

“처음 출가해 사찰에서 첫 추석을 맞았을 때 절은 명절 음식을 만들지 않고 조용할 줄 알았어요. 웬걸요, 음식 만드느라 고생을 엄청 했어요.(웃음) 그때는 힘들었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답니다.” 영선사(대전시 서구 도마2동) 주지 법송 스님의 말이다.
영선사는 2013년 열반한 성관 스님의 삶을 이어 수행하며 사찰음식의 전통을 계승하는 절이다. 성관 스님은 자비로 대중들을 초대해 공양을 나누며 삶의 의미를 설파한 이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김유신 수석전문위원은 “영선사는 음식을 해도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잘하며 품격 있는 사찰음식으로 지역 공동체와 나눔을 실천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불자들도 이런 영선사 철학에 동참한다. 수년간 사찰음식 연마에 매진해 사찰음식 공동체 영선사의 한축을 담당하며 먹거리를 이웃과 나눈다. 그 중심에 법송 스님이 있다. 성관 스님이 그의 은사다.

“그때는 녹두전을 800개 만들고,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로 송편을 빚었는데 8㎏이 넘었죠. 쌀가루를 2시간 이상 치댔어요. 손의 열기와 쌀가루가 만나 치댈수록 맨들맨들해지고 쫄깃해졌죠. 1시간 치댄 반죽과 30분 치댄 반죽은 완전히 달랐죠. 그렇게 하면 더워도 맛이 잘 변하지 않았어요.” 출가했던 20여년 전 일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법송 스님이다. 정성은 이뿐만 아니었다. 송편 안에 들어가는 깨도 껍질을 벗겨 매우 곱게 갈아 소금과 꿀을 섞었다. 당근, 쑥, 비트, 치자 등을 즙 내 오방색 송편을 만들었다. 손마디가 묵직하게 아플수록 머리는 비워졌다. “하는 과정이 수행이었죠. 쓸데없는 노동이다, 생각하면 못해요. 음식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깨달음이 일었죠.” 음식이 수행의 매개체란 점을 법송 스님은 해를 거듭할수록 깨쳤다.
지난달 24일만난 법송 스님은 추석의 의미도 설파했다. “햇곡식, 밤 등이 나오는 계절, 귀중한 음식을 내 입에 가져가기 전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상이나 타인에게 먼저 건네는 게 추석의 의미입니다. 내가 먼저 먹는 복덕에서 시작하지 말고 남을 먼저 주는 복덕에서 시작하는 거죠.”
이번 한가위 명절에도 법송 스님을 포함한 영선사 4명의 스님은 손이 바쁘다. 사찰은 통상 명절에 다례제(불교식 제사. 특정 스님이나 인물을 기리며 차를 올리는 행사)나 합동 차례를 올린다. 마음을 다한 음식을 불상 앞에 올린다. 여기에 사찰을 찾는 불자를 위한 공양도 만들어놓아야 한다.

영선사 스님들은 이번 추석엔 녹두전, 나물, 애동고추볶음, 호박잎전, 토란국 등을 준비할 예정이다. 여기에 11가지 전이 추가된다. 영선사 녹두전은 조리 과정이 까다롭다. 녹두만 잘 갈아 부치면 되는 게 아니다. 삶은 고사리를 가늘게 찢고, 데친 시금치도 얇게 잘라야 한다. 당근과 표고버섯도 같은 과정으로 만든다. 스님은 ‘이불 바늘’ 정도 가늘기라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련한 고명을 녹두 반죽과 함께 부친다. 부치는 과정도 정성이 양념처럼 들어간다. 녹두 반죽 한숟가락 위에 고명 얹고 다시 녹두 반죽을 붓는다. 이 과정을 여러차례 반복해 익히면 완성이다.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쓰지 않는다. “밀가루전만 먹던 이는 우리 녹두전이 퍼석한 맛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스님들은 재료인 녹두 자체의 맛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게으르지 않은 마음’이 장착된다고 했다. 부처가 가장 경계한 게 ‘게으른 마음’이라고도 말했다. 여러가지 채소 고명이 어우러진 녹두전은 극강의 무미가 주는 식도락을 선사한다. 아무 맛도 없는데, 맛이 있다. 이보다 더한 식도락의 경지가 있을까.
법송 스님은 성관 스님의 특기였던 더덕대추전도 언급했다. “더덕을 다 까서 썬 뒤 형태를 살린 채 눌러주고 대추를 쫑쫑 얇게 썰어 더덕에 올려요. 찹쌀가루, 멥쌀가루, 소금, 물로 반죽한 걸로 부치는데, 손이 이만저만 가는 게 아니지만, 대중들이 좋아했죠. 성관 스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대접했어요.” 정성이 맛의 기둥이다. 그 마음을 음식으로 만들며 엮어내는 게 수행이다.

나물은 20가지나 차례상에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더덕, 도라지, 연근, 우엉 등이다. 직접 구운 김과 두부도 보태진다. 연근부각, 감자부각도 빠지지 않는다. 애동고추볶음은 “지금부터 먹는 음식”이라고 스님은 말했다. “서리가 약간 내리면서 나오는 작은 고추인데, 추석 전후에 먹어야 하는 고추죠.” 씹을수록 입안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아삭아삭’이 아니다. 적당히 단단하면서도 볶아져서 부드러워진 식감이다.
본래 호박은 다채롭게 활용되는 식재료다. 전, 죽, 탕이나 국의 재료 등으로 쓰인다. 법송 스님은 잎에 주목한다. “쌈으로 많이 먹는데, 우리는 전을 부쳐 먹어요.” 이 역시 무미다. 돌돌 말린 호박잎전은 씹을수록 소박한 맛이 우러난다. 토란국은 영선사 차례상의 필수다. 남은 추석 음식을 ‘처리’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녹두전은 얼린 채로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먹는다고 한다.
법송 스님은 복을 많이 닦으면 불행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베풀면 운명도 피할 수 있죠.” ‘게으르지 않은 마음’도 재차 언급했다. 1년에 두번 대청소를 하는데 그중 한번이 추석 때라고 한다. 묵은때를 ‘내보내는 것’이다. 5분 뒤 다시 쓸 빗자루도 일단은 제자리에 둔다고 했다. “금방 쓸 것인데 왜 갖다 놓냐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살아보니 그러는 게 불편한 게 아니었어요. 모든 게 짧은 시간이라도 제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마음도 제자리에 있어야 하죠.” 음식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잘 다듬은 재료가 제자리에 있어야 음식이 나온다. 반조리 식품이 범람하는 편리한 세상에 음식을 만드는 수고가 주는 깨달음을 스님은 전한다. 그가 만든 담박한 맛에 인생살이 진리가 숨어 있다.

영선사 3가지 한가위 음식
애동고추볶음
재료: 애동고추 3줌, 식용유 약간, 양념(간장 2큰술, 물 1큰술, 깨소금 2큰술, 참기름 약간)
①애동고추는 꼭지를 따고 씻어 물기를 빼둔다. ②팬에 기름을 약간 두르고 고추를 넣어 볶는다. ③노릇노릇 볶아진 고추에 양념을 넣고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마무리한다.
녹두전
재료: 녹두 2컵, 삶은 고사리 2줌, 숙주 2줌, 시금치 2줌, 당근 3분의 1개, 부침유, 표고버섯 3개, 소금 약간, 깨소금 2큰술, 양념(들기름 3큰술, 참기름 3큰술, 간장 2큰술)
①고사리는 삶은 뒤 물에 우려내고 잘게 찢어 양념에 무친 다음 볶는다. ②녹두는 전날 불려 곱게 갈아 소금 간을 한다. ③숙주는 데친 뒤 썰어 양념에 무쳐두고 시금치도 데쳐 가늘게 찢어 무쳐두고, 표고버섯은 채를 곱게 썰어 볶아놓는다. ④당근은 가늘게 채 썰어 살짝 볶고 당근, 고사리, 숙주, 시금치, 표고버섯을 섞어 함께 무친다. ⑤팬에 식용유를 넣고 녹두를 한 수저 넣고 고명을 올리고 녹두를 반 수저 올려 구워낸다.
호박잎전
재료: 호박잎 10장, 밀가루 1컵, 물 2컵, 소금 약간, 부침유, 초고추장
①호박잎은 씻어둔다. ②밀가루, 물, 소금을 섞어 만든 반죽물에 호박잎을 담근 뒤 꺼내 부쳐낸다. ③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대전/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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