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선택의 방향 – 낡은 집의 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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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저출생 문제를 두고 대체로 역대 정부는 "돈이 없어서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접근해왔다.
왜일까? 이는 단순히 '집 안의 가구' 문제가 아니라, '집 자체의 구조'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낡은 집 안에서의 불평등이다.
아이를 낳으라는 요구는, 사실상 불안정한 집에 더 많은 거주자를 들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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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저출생 문제를 두고 대체로 역대 정부는 "돈이 없어서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접근해왔다. 그래서 현금성 지원을 늘려 왔다. 이번 정부에서는 더욱 그러한 분위기가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젊은 세대는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한 명에서 멈춘다. 최근 출산율 반등을 이야기하지만, 섣부른 희망일 뿐이다. 왜일까? 이는 단순히 '집 안의 가구' 문제가 아니라, '집 자체의 구조'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60~70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자랑스러움을 갖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사회가 세계적인 경제 강국 반열에 올랐다. 겉보기에 집은 웅장하게 지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 집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엄마의 독박육아ㆍ경력단절에 대한 깨달음과 불안감, 불안정한 노동시장, 치솟는 주거비, 끝이 보이지 않는 교육 경쟁이 사회를 흔든다. 튼튼하다고 믿었던 집의 지붕은 새고, 벽은 갈라지고, 바람은 틈새로 스며든다.
그런데 정부의 대응은 어떠한가? 젖어가는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새 가구를 사주고, 더 큰 텔레비전을 넣어준다. 거실은 화려하게 변했지만, 지붕은 여전히 새고 있다. 이는 곧 저출산ㆍ저출생 대응의 현 주소를 상징한다. 현금성 지원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양육비 부족이 아니라 '압박비용' 때문이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체면 유지 비용,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끝없는 지출이 부모의 어깨를 짓누른다. 압박비용을 나오게 하는 구조를 없애지 않고 부모의 양육 부담 해소를 이야기할 수 없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집 안의 인테리어 공사가 아니라 집 자체의 리모델링이다. 지붕을 고치고, 창틀을 바꿔야 한다. 다시 말해, 삶의 기반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안정된 일자리, 공정한 교육 기회, 지역 격차 완화, 평등한 돌봄, 주거의 안정성 같은 구조적 개혁이 없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은 결코 조성되지 않는다. 단지 물질적 지원으로 아이 침대를 더 주거나 보육 쿠폰을 지급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이 낡은 집 안에서의 불평등이다. 어떤 방은 지붕이 뚫려 비가 새고, 어떤 방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러니 사람들은 빗물이 덜 스며드는 방, 즉 수도권으로 몰린다. 그곳은 과밀로 숨 막히고, 다른 지역은 텅 빈다. 이 또한 출산을 가로막는 현실이다. 모두가 몰리는 안전한 방조차 이제는 과열로 인해 더 이상 삶을 지탱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이 낡은 집을 지탱하는 기둥과 뼈대, 배수와 환기 시스템까지도 새롭게 손봐야 한다.
지금의 저출산ㆍ저출생 위기가 단지 한두 가지 정책으로 고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노동, 교육, 주거, 돌봄, 성평등 등 사회 전 영역에서의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집의 균열을 무시한 채 가구만 바꾸는 일은 결국 더 큰 붕괴를 앞당길 뿐이다.
지금 우리는 화려한 인테리어를 했지만 무너져가는 집에 살고 있다. 아이를 낳으라는 요구는, 사실상 불안정한 집에 더 많은 거주자를 들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 어떤 세대도 그 불안정 속에서 미래를 맡길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저출생 대응의 본질은 집을 새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집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데 있다. 지붕을 수리하고, 균열 난 벽을 메우며, 환기와 배수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사회적 불안과 압박을 줄이고, 누구나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직면한 진짜 과제다. 낡은 집의 리모델링 없이는 출산율 반등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
정재훈 경북행복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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