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올랐는데 담뱃값은 10년째 그대로… 인상설 힘 받는다
韓 담뱃값, 2015년 4500원서 멈춰… OECD 38개국 중 네 번째로 저렴
복지장관 “가격 정책 재검토해야”… 학계에선 ‘1만 원’으로 인상 주장
가격 중 세금-부담금이 70% 차지… “서민 증세” 비판 피할 수 없어
기재부는 “검토 안한다” 선그어… 10년마다 대폭 인상 후 ‘후폭풍’
담뱃값 올릴 땐 금연 지원 늘리고, 광고 규제 등 병행해야 반감 적어

담뱃값이 10년 만에 인상될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4500원인 한국 담뱃값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7.36달러(약 1만375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서민 증세’라는 반발 탓에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최근 ‘담뱃값 인상 10년 주기설’이 다시 제기됐다. 2015년 마지막으로 담뱃값이 인상된 지 10년이 흘렀으니 조만간 정부가 담뱃값을 올릴 것이란 내용이다. 담뱃값 인상설이 나올 때마다 정부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부인하지만 10년 주기설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는 분위기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담배 가격 정책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지난달 25일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9년 만에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은 것을 계기로 담뱃값 인상을 둘러싼 논란과 바람직한 방향을 짚어 봤다.》

올해 6월 발간된 대한금연학회지에 실린 ‘새 정부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담배 규제 정책’ 특별 기고의 한 대목이다. 저자인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은 “국내 궐련 한 갑의 가격이 4500원(약 3.21달러)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36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담뱃값 인상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꼽았다.
담뱃값이 10년째 제자리걸음 하면서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 가격이 낮아졌으니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담뱃값을 결정하는 정부는 신중한 모습이다.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을 올려 가격을 인상하면 ‘서민 증세’라는 반발이 커질 수 있어서다. 1500원이던 담뱃값이 2005년 2500원으로, 2015년 다시 4500원으로 10년 만에 오른 건 그만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 한국 ‘말버러’ 값 127개국 중 84위

담배는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법으로 제조와 판매, 가격 등을 통제하고 있다. 국내 담배(궐련) 한 갑의 일반적인 가격인 4500원 가운데 3323.4원(73.9%)이 정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과 부담금이다. 구체적으로 담배소비세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부가가치세 409원, 개별소비세 594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841원, 폐기물 부담금 24.4원, 엽연초부담금 5원 등이다. 사실상 세금에 따라 담배 가격이 좌우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담뱃값 인상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다. 가격에 민감한 서민층 흡연자가 더 큰 영향을 받아 서민 증세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 모두 담뱃값 인상을 쉽게 거론하지 못하는 이유다.

● 다시 떠오른 담뱃값 인상설
최근 담뱃값 인상설이 다시 불거진 건 정 장관이 7월 말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담배 가격 정책의 변화를 언급하면서다. 정 장관은 답변서에서 “2015년 담뱃값 인상 이후 담배 소비와 청소년 흡연율이 감소했지만 최근에는 정체 상태이며, 신종 담배가 확산해 가격 및 비(非)가격 정책을 점검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담배 정책을 둘러싼 여건도 달라졌다. 수년간 감소세였던 흡연율이 2023년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성인의 일반 담배(궐련) 흡연율이 19.6%로 전년(17.7%) 대비 1.9%포인트 늘었다. 2018년 22.4%에서 4년 연속 줄어든 흡연율이 반등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최신 자료에선 2024년 흡연율이 16.7%로 다시 떨어졌지만 이를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긴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무엇보다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률이 2021년 4.6%에서 2024년 7.2%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도 같은 기간 3.2%에서 4.9%로 매년 오르고 있어서 더 강력한 담배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정부가 3년 연속 대규모 세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점도 담뱃값 인상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거론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3년(―56조4000억 원)과 2024년(―30조8000억 원)에 이어 올해도 연간 세수가 예상(382조4000억 원)보다 12조5000억 원 덜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전임 윤석열 정부보다 증세에 적극적이다. 올해 세제 개편안을 통해 5년간 35조6000억 원의 세수를 더 확보하기로 했지만 대규모 재정지출을 감당하려면 추가 세수 확충 방안이 절실하다.
● ‘가격 외 규제’도 강화해야 효과↑
대부분의 의료보건 전문가는 선진국 대비 낮은 수준인 담뱃값을 올려서 확보한 재원을 흡연 규제 정책과 금연 지원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정부의 흡연율 통계는 자기 평가식으로 집계돼 과소 추산되는 측면이 있어서 실제 국내 흡연율은 여전히 높은 편이라는 것이다. 대한금연학회지 기고문에서 저자들은 “담뱃값 인상은 담배 소비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라며 “담뱃값이 10% 인상되면 담배 소비는 약 4% 감소한다”고 했다. 이들은 담뱃값을 OECD 평균과 비슷한 약 1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뱃값이 크게 오른 2015년 1475억 원으로 확대된 보건복지부의 담배 규제 정책 및 금연 지원 사업 예산은 매년 줄어들어 올해 915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센터장은 “저소득층, 여성, 비정규직, 정신질환자 등은 흡연율이 높고 담배로 인한 질병에 더 취약해 경제적·사회적 부담이 훨씬 더 크다”며 “건강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금연 지원 사업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기재부는 “세금을 올려 담배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내년 6월에 예정된 지방선거 전에 정부가 담뱃값을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담뱃값을 올리려면 담배 광고와 진열 규제, 담뱃갑 경고 문구 강화, 청소년 금연 교육 확대 등의 비가격 정책을 함께 강화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는 “그간 담배 규제와 예방 정책의 종류는 선진국만큼 발전했지만 그 강도는 아직 부족한 편”이라며 “비가격 정책도 강화해야 가격 인상의 명분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이 증세 목적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국민건강 증진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담뱃값을 물가와 연동시켜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고숙자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갑자기 한꺼번에 1000원, 2000원씩 오르니까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커지는 것”이라며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처럼 담뱃값이 최소한 물가 상승률만큼 오르게 유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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