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 부패와 불공정에 맞선다”… 대륙 넘어 번지는 Z세대 분노

안준현 기자 2025. 10. 4.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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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로 정보 나누고 연대
모로코 Z세대 시위대./AP 연합뉴스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시위에 나선 청년들을 향해 경찰이 총격을 가해 2일(현지 시각) 3명이 숨졌다. 시위는 수도 라바트에서 시작돼 카사블랑카·탕헤르·테투안 등 주요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청년 단체 ‘Z세대 212’는 정부가 예산을 남용하며 열악한 교육·의료 시스템에는 손을 놓고 있다며 분노하고 있다. 모로코는 국왕인 모하메드 6세가 통치하는 입헌군주제로, 최근 월드컵 공동 유치에 5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청년 실업률은 35.8%에 달하는 상황에서 최근 공공 병원의 산모들이 출산 중 잇따라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젊은 세대의 분노가 치솟은 것이다. 모로코 정부는 “10대 폭도들이 경찰 무기를 탈취하려다 총에 맞아 숨졌다”며 “시위대가 칼·화염병·돌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생)가 주도하는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진 곳은 모로코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네팔·필리핀 등 아시아에서 시작돼, 파라과이·페루 등 남아메리카를 넘어 마다가스카르·모로코·케냐·말리 등 아프리카까지 도미노처럼 확산하고 있다.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는 지난달 28일 대학생을 중심으로 청년들이 공공 서비스 부실과 일자리 기회 부족 등에 대한 공분을 표출하며 거리 행진을 했다. 페루에서도 고용 불안정에 항의하며 정부와 국회를 규탄하는 Z세대 시위가 지난달 27일 수도 리마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지난달 하순 수도 안타나나리보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빈곤과 잦은 단수·단전에 항의하는 청년층 시위가 일어났다.

그래픽=김현국

나라마다 Z세대 시위를 촉발한 사건은 다르지만, 특권층의 만성적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반발이 공통적인 동력으로 꼽힌다. 코로나 이후 심화된 경기 침체는 여러 신흥국 청년들에게 동시에 실업 충격을 안겼다. 이런 가운데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해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득권층이 누리는 특권과 다수 국민이 처한 현실을 동시에 목격하면서 분노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월 425만원에 달하는 국회의원 주택 수당이, 동남아시아 최빈국 동티모르에선 의회가 국회의원 65명에게 신형 승용차를 지급하려고 예산 58억원을 편성한 것이 Z세대 시위를 촉발했다. 네팔에선 전직 총리와 정치인 자녀들의 명품 치장 사진과 ‘너희의 사치, 우리의 고통’ 등의 글이 확산됐고, 정부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26개 소셜미디어 접속을 차단하자 폭동 수준의 시위가 이어졌다. 네팔의 평균 연령은 24.7세인데, 청년 실업률은 20.8%에 달한다.

경제 불평등과 기득권 부패에 분노하는 ‘Z세대 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 시위 현장에서 한 청년이 경찰 저지선을 뚫겠다며 카트를 밀고 있다(위). 같은 달 28일 페루 수도 리마에선 분노한 청년들이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고 있다(아래). /AP EPA 연합뉴스

미국 웨스트필드 주립대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이번 움직임을 미국·프랑스·일본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1968년 학생운동, 중동과 아프리카 민주화 운동인 2011년 ‘아랍의 봄’ 등에 견주며 “국경을 넘어 수십만 명이 같은 상징과 언어로 정치 변화를 요구하는 ‘에로스 효과(Eros Effect)’의 재현”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시위가 조직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억압에 저항하고 자유를 염원하는 본능의 발현이라는 의미다. 실제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활동하다가 거리로 나온 이번 ‘Z세대의 분노’는, 특정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이 주도하는 기존 반정부 시위와 차별화된다. 파라과이 언론은 “시위 현장에서 정당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현수막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모로코 시위를 주도한 ‘Z세대 212’ 등도 온라인에서 느슨하게 규합된 단체다.

다만 시위의 결과는 각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나 정치 시스템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가 도입된 국가는 청년들의 요구가 부분적으로 반영돼 개혁이나 예산 수정으로 이어졌다. 네팔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인물을 임시 총리로 임명해 과도 정부를 꾸렸고, 인도네시아는 국회의원 주택 수당을 철회했다. 마다가스카르에선 내각을 해산했다. 반면 권위주의 군주제가 작동하는 모로코에선 유혈 탄압이 지속되고 있다.

‘아랍의 봄’처럼 강력한 탄압과 대안 세력 부재로 단기적으로는 운동이 좌절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청년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이 세대 전체의 기억으로 남아 정치 구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낡은 정치 질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정착·재건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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