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조각' 브루클린 브리지, 삶을 건너는 작은 모험 선사
[조성익의 인생 공간] 142살 뉴욕 브루클린 브리지
![뉴욕 이스트강 동쪽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연결하는 브루클린 브리지. [중앙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3/joongangsunday/20251103164945291tfej.jpg)
그런데 막상 다리 앞에 서자 살짝 두려움이 밀려왔다. 한 번 발을 떼면 반대편까지 멈출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총 길이 1.8㎞, 도착 지점은 저 멀리 작은 점으로만 보였다. 게다가 몇 걸음 걸어보니 다리가 흔들흔들 하는 것이 아닌가. 발 밑으로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10층 높이 아래로는 강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순간 “다시 돌아갈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내 옆으로 어린이가 씩씩하게 건너는 모습에 힘을 얻어 걸음을 이어갔다.
![[일러스트=조성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3/joongangsunday/20251103164946746gggm.jpg)
도시 안에서 도시를 벗어나는 산책
브루클린 브리지의 독특함은 한 공학자의 꿈에서 시작됐다. 19세기 후반, 토목 공학자 존 뢰블링(John Roebling)은 당대 최고의 교량 전문가였다. 그가 몰두한 방식은 ‘현수교’, 즉 강철 로프를 양쪽 교각에 걸고 그 로프에 다리 상판을 그네처럼 매다는 구조였다. 교각이 양쪽 강변에만 세워지므로 큰 배들도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어 유용했다. 매달고(현) 드리운(수) 로프는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게 되어 보기에도 좋았다. 유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닌 이 다리는, 뢰블링에게 토목 공사 이상의 의미였다. 그는 사람들을 이 다리 위로 걸어가게 함으로써 미국인의 지성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아무리 다리 하나로 도시인의 지성이 높아질까. 잠시 의심했지만 직접 걸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다리는 평평한 진입로에서 시작한다. 어느 순간 양옆의 강철 로프가 상승하는 새처럼 서서히 솟아올라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다 갑자기 위풍당당한 교각이 막아서면 현수선은 급상승과 하강의 비행으로 교각을 타넘는다. 끊임없이 높낮이가 변화하는 현수선은 강과 도시의 풍경을 담는 액자가 되고 이 틈으로 보는 도시의 풍경도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몇 걸음 걷다가 멈춰 서서 이 변화감을 만끽하다 보면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걷는 보행자에서 주변을 응시하며 걷는 철학자가 된다.
![2층 보행로를 걷다 보면 도시의 풍경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3/joongangsunday/20251103164948121axjc.jpg)
건너고 보니, 지성의 상승보다 더 소중한 다리의 미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작은 모험심’이었다. 우리는 예측 가능한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편안한 사무실·집·자동차 안에서 우리의 마음은 점차 안락함에 길들여지고 모험을 경험할 기회가 줄어든다. 하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라. 주변에는 모험심을 발휘할 공간이 넘쳐 났다. 놀이터에서 처음 타보는 그네는 불안과 재미가 교차하는 경험이었고, 골목에서 두발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의 짜릿함은 두려움을 이겨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었다.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안온한 일상에서 벗어나 모험심을 발휘하는 여정이다.
그렇다고 도시에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공간을 일부러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안전은 단단히 확보하되, 정신의 환기를 일으키는 ‘안전한 모험’의 공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심장 박동이 조금 올라가는 공간 경험은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도시가 주는 유쾌한 선물이다. 보행교를 건너는 과정이 그러했다. 약간의 두려움을 딛고 모험을 시작한다. 익숙한 서식지를 벗어나 도시의 낯선 구역으로 건너간다. 그곳의 분위기와 사람 사는 모습을 관찰하고 다시 나의 구역으로 귀환한다. 뉴욕의 가을, 브루클린 브리지가 필자의 인생공간이 된 이유다.
다리 밑 노점에서 핫도그와 콜라를 사서 강변 공원에 앉았다. 여기가 브루클린 브리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감상 포인트다. 점심을 먹으며 천천히 지나온 여정을 관찰했다. 굳건한 돌 탑 두 개가 당당히 서 있고 그 사이에 강철 로프가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로프는 스스로의 무게로 살짝 늘어져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이 완만한 선은 구조적으로 합리적일 뿐 아니라, 눈으로 보기에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직선의 돌탑과 곡선의 로프, 단단한 압축력과 팽팽한 인장력이라는 상반된 힘이 균형을 이루며 시각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별다른 장식을 덧붙이지 않았는데도 구조를 해결하다 보니 스스로 아름다워진 건축물을 만나면, 건축가들은 ‘구조미(構造美)가 살아있다’고 표현한다. 값 비싼 옷을 입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매가 드러날 때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다. 브루클린 브리지는 구조미가 살아있는 도시 조각품이다.
도시에 이런 아름답고도 유용한 산책로를 만들어준 뢰블링은 안타깝게도 이 다리를 건너보지 못하고 건설 중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이 현수교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아 공사를 이어갔지만, 그마저도 건설 부작용으로 불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다리로 시민의 지성을 높이겠다는 열정은 그의 부인에게로 이어졌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뜻을 이어받은 에밀리 뢰블링이 이 위대한 작업을 맡게 된 것이다. 저녁이면 병상에 누운 남편과 상의하고, 낮에는 홀로 현장을 지휘했다. 남편은 병상에서 망원경으로 브루클린 브리지를 바라보며 저녁 회의를 준비했다. 부부가 힘을 합쳐 무려 16년이나 이어진 가족의 대업을 마침내 완수한다. 그리고 인류의 지성을 높여준 이 위대한 다리는 올해로 142살이 되었다.
![마포 양화대교 위의 카페. [중앙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3/joongangsunday/20251103164949468htdr.jpg)
빈틈없이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모든 것이 경제 논리로 돌아가는 현대 도시에서 강은 땅값이 들지 않는 기회의 대지다. 이 기회의 땅, 아니 기회의 물에 어떻게 즐거운 상상을 보탤까. 이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존 뢰블링의 말처럼 건널 때마다 우리의 지성을, 그리고 우리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위대한 인생 공간들이 강 위에 늘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축복받은 대한민국의 가을, 우리의 산책이 길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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