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당산" 목소리, AI로 무단 대체? "성우 송장 취급, 인권 침해"

김예리 기자 2025. 10. 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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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간 안내방송…"'AI 학습·대체 계획' 뉴스로 접해"
공사 측 "동의 없이 추진 검토 안해"? 문제는 남아
성우협회 측 "회복할지 모를 성우 송장 취급, 반윤리적"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tvN 에 출연해 지하철 안내방송 녹음 AI 대체 현상에 의견을 밝히고 있는 강희선 성우. tvN 유튜브 갈무리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지하철 안내방송을 맡아온 강희선 성우 목소리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켜 대체하려 했다는 언론 보도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한국성우협회와 방송연기자협회 등이 공사에 사과를 요구했고, 공사는 '동의 없는 AI 음성 합성 도입을 추진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업계 내에 AI 활용에 대한 배우 권리 보호 장치의 공백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성우협회·한국방송연기자동조합·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는 지난 2일 공동성명에서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9년 간 서울 지하철 안내방송을 맡아온 강희선 성우가 투병으로 마이크를 내려놓게 되자, 당사자 동의 없이 그의 목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학습, 활용해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며 “저작권법상 실연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이자, 윤리 측면에서도 비난 받을 만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들 협회는 △강희선 성우에게 공식 사과 △생성형 AI로 인간 성우 목소리를 재현하고자 할 때 본인의 명시적 동의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3일 한국성우협회 설명에 따르면, 강희선 성우와 가족들은 지난달 30일 “강희선 성우 목소리가 앞으로는 AI(인공지능) 음성으로 대체될 예정”이라는 공사 측 입장을 언론보도로 처음 접했다. 해당 보도는 공사 측이 “성우 음성이 학습된 방송으로 이질감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는데, 성우 측에는 어떤 연락도 없었던 상태였다고 한다. 강 성우는 서울 지하철 한국어 안내방송을 29년 간 맡아왔다.

최재호 한국성우협회 사무총장은 통화에서 “보도 직후 강 성우의 가족과 함께 공사에 문제 제기했지만, 공사는 '과대한 보도일 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며 “그래서 허위보도라면 그에 대한 유감을 표할 것과 성우 목소리 학습시킬 의도가 없었다는 점, 시민들에게 걱정 끼친 데 대한 미안함을 표할 것을 요구했다”고 했다.

▲9월30일 TV조선 '사건파일'내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TV조선 유튜브 캡쳐

서울교통공사는 2일 협회 성명 발표 뒤 언론을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공사는 기존에 안내 방송을 녹음했던 성우의 동의 없이 해당 목소리를 AI TTS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없다”며 “기존 성우와의 녹음 진행이 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여러 검토 사항 중 하나로 AI TTS 도입을 검토했다. 이는 결정된 사항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최 사무총장은 “언제 회복해 성우 생활을 다시 할지 모를 사람을 서울교통공사는 송장 취급한 것으로, 이번 언론보도 속 공사 입장은 인권침해이다. AI 대체를 하겠다는 결론 역시 반윤리적 행위”라며 “공사는 결정된 사안이 아니라지만, 실제 AI를 도입한다면 또다른 성우나 실연자의 목소리가 활용될 것이다. 제2, 3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으므로 성우 본인의 명시적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성우를 비롯한 인간 배우의 활동을 AI로 대체하려는 시도의 윤리적 논란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사 측이 부인했지만 최초 보도에서 공사가 “'성우 음성이 학습된' 인공지능 음성 합성 안내방송으로 이질감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대목을 두고 강 성우의 목소리를 무단 사용하려 하는 것이냐는 우려가 나왔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AI를 이용해서 타인의 목소리를 복제하는 경우 저작권법이나 퍼블리시티권이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우를 비롯한 배우의 목소리를 기존 작품에서 가져온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퍼블리시티권은 한국에 명문 규정은 없지만, 부정경쟁방지법이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제2조(정의 규정)에서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 그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1항 타목)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했다.

오 대표는 “엔터테인먼트기업이 드라마 등 영상에 이미 배우들의 딥페이크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 배우의 권리가 없다면, 배우들은 단 한 번 연기한 뒤 (자신이 창출한 성과에 대한) 권리를 잃게 된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헐리우드에서도 작가·배우들이 파업을 벌이며 AI 활용 권리 보장을 요구했고, 그 결과로 체결된 단체협약엔 배우 목소리·연기·얼굴을 AI로 활용할 경우 반드시 동의를 받고 출연료처럼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고 했다.

강 성우가 스스로 서울 지하철 안내방송이 AI 안내로 대체되어가는 흐름에 심경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1·3·4호선 일부 구간을 운영하는 코레일에서)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없더라고요. 성우가 바뀌었나? 제 입장에선 섭섭하잖아요. 우리는 돈을 따지지 않아요. 그 어떤 자부심이죠. 그런데 코레일이 바꿨대요. AI로. 그래서 가서 들어봤더니, (영) 아니더라고요. 사람의 정서가 없어요. 종착역에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할 때 저는 진짜 온 힘을 다해서 (실제로) 인사해요. AI는 따뜻함이 없어요. 인간의 정서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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