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전쟁 발발 2주년… 기근 위기 속 분수령 된 '트럼프 종전 구상'

이정혁 2025. 10. 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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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지속된 1년 사이 2만 명 목숨 잃어
이스라엘 배급 제한에 가자 '기근' 시작
유럽 국가들,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도
강경 입장에 종전 구상 수용 여부는 '불분명'
팔레스타인인들이 2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누세이라트 난민 캠프에서 피란을 위해 남쪽으로 대피하고 있다. 누세이라트=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벌어진 '가자지구 전쟁'이 7일(현지시간) 발발 2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휴전을 통해 인질 148명이 석방되기도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교전은 다시 반복됐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3일 기준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에서 6만1,709명이 사망하고 1만4,222명이 실종된 상태라고 집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 2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29일 '종전 구상'을 발표하면서 가자지구 전쟁이 종식될 수 있는 분수령을 맞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스라엘과 하마스 내 강경파의 반대 움직임에 가자지구를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이 여전하다.


인도주의 위기 심화하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8월 21일 가자지구 칸유니스의 한 배급소에서 식량을 받기 위해 빈 그릇을 들이밀고 있다. 칸유니스=AFP 연합뉴스

가자지구 전쟁 발발 2년 동안 인도주의 위기는 크게 심화된 걸로 나타났다. 지난 8월 22일 유엔 기구와 비영리단체로 구성된 이니셔티브 통합식량안보단계(IPC)가 가자지구 내 '기근(Famine)' 발생을 선언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전쟁 기간 중 440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이들 가운데 지난 8월 IPC의 기근 선언 이후 단 두 달 동안 사망한 이들이 177명에 달한다. IPC는 가자지구 주민 220만 명 가운데 3분의 1인 64만1,000명이 기근 상태에 놓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의 배급품 유입을 철저히 통제한 것이 인도주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스라엘은 지난 3월 휴전협정 1단계 만료 직후 가자지구 내 물자 유입을 전면 차단했다. 그간 배급에 참여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내에 하마스 조직원이 침투했고, 배급품이 하마스에게 흘러들어간다는 이유에서였다. 5월부터는 미국과 이스라엘 주도의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을 통한 배급만이 허용됐지만, 이스라엘군의 경고사격에 배급을 받으러 온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는 일이 반복해서 벌어졌다.

마이클 파크리 유엔 식량권 특별 보호관은 지난 8월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상상 가능한 가장 효율적인 기아 기계를 만들었다"며 "음식과 구호를 무기로 삼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모욕하고, 약화시키고, 죽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과 학교 등 기초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기반시설을 향한 이스라엘의 공습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군사적 용도로 이용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며 가자지구 내 주요 의료시설을 공격했다. 지난 8월 25일에는 가자지구 남부의 나세르 병원을 두 차례 폭격해 20명이 숨졌는데, 첫 공습 소식을 듣고 취재를 위해 달려가던 기자 5명이 목숨을 잃었다.


'75% 점령'에도 전쟁은 속행

이스라엘군 탱크가 지난달 25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나누는 장벽 옆을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2년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거침없는 공세에 하마스는 사실상 궤멸 직전이다. 2023년 이스라엘 기습 작전을 주도했던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는 지난해 10월 27일 가자지구에서 사살됐다. 전투원을 크게 잃은 하마스는 현재 쪼그라든 채 최후의 저항을 이어가고 있다.

승기를 잡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안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지난 5월 가자지구 점령이 포함된 '기드온의 전차' 1단계 계획을 발동한 데 이어 지난달 15일부터는 가자지구 내 최대 도시인 가자시티 내 주민 100만 명에게 대피령을 내리고 공격을 개시했다. 교통수단의 부족으로 도시에서 나가지 못한 이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지난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남아있는 이들은 테러리스트 또는 테러 지지자가 될 것"이라 발표했다.

가자지구는 사실상 잿더미로 변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소속 점령지국제조사위원회(UNIIP)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당국은 가자지구 내 민간 인프라를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철거하는 방식으로 75%에 이르는 통제 지역을 확보했다. 보고서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영구적인 지배를 확립하려 하는 의도를 보여왔다"는 내용도 적시됐다.

이어지는 참극에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입장이던 서방국가들도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항의에 나섰다. 지난 7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최초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뒤 9개국(영국, 캐나다, 호주,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모나코, 안도라, 몰타, 산마리노)이 이 같은 흐름에 동참했다. 지난달 9일 이스라엘이 하마스 지도부를 잡겠다며 중재국 카타르마저 폭격하는 등 제멋대로 행보를 이어간 영향도 컸다.


트럼프 구상안, 향후 전망

베냐민 네타냐후(왼쪽) 이스라엘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만나 가자지구 종전 구상에 합의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2년간 이어지며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은 가자지구 전쟁도 지난달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종전 구상'과 함께 분수령을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합의한 이 구상안에는 이스라엘·하마스 동의 아래 즉시 전쟁을 멈추고 이스라엘도 하마스도 아닌 국제 과도 기구 '평화 위원회'가 향후 가자지구 정부를 감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스라엘군은 단계적으로 철군하고 치안 유지는 미국과 아랍 국가들이 참가하는 국제안정화군(ISF)이 담당한다.

하지만 합의가 실제 성사될지는 의문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내부의 강경파 때문이다. 종전 구상에는 가자지구 재건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재건을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향한 신뢰할 길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지만,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결사반대' 해온 이스라엘 우익 세력이 동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도 구상 발표 다음 날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계속 주둔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히는 등 당초 발표 내용과 결이 다른 반응을 이어갔다.

하마스 내부에서는 합의 수용 여부를 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내 무장을 완전 금지하는 종전 구상안은 사실상 항복 요구에 가깝다는 평이 나온다.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 등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종전 요구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상태다. 거부 움직임이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하마스에 3, 4일 시간을 주겠다"며 "동의하지 않으면 지옥에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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