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맨땅 걸으면 암도 낫는다?...14년 맨발 러너의 보다 못한 쓴소리

백우진 2025. 10. 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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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의 심신탐구]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조성한 황토 산책질에서 시민들이 걷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상 영역마다 펀더멘털리스트가 있고, 운동 분야에서 필자는 '펀더맨발리스트'다. 펀더멘털리스트는 근본주의자, 또는 원리주의자라고 불리고, 필자는 국내 '맨발 달리기 이론의 주창자'라고 자칭한다.

2011년 8월 15일부터 신발을 벗고 맨발로 뛰었다. 그해 가을에 마라톤 풀코스를 맨발로 완주했다. 개인 기록 3시간 37분도 맨발로 세웠다. 마라톤은 2003년에 시작했다.

다들 내 앞에서는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속으로는 '츳츳, 너무 특이하게도 고생을 사서 하는군'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맨발 러닝을 고집하는 것은 과학에 바탕을 둔 원리와 장점을 믿기 때문이다. 맨발로 뛰면 발과 종아리가 함께 단련되어 발 부상 위험에서 멀어지고, 발과 종아리가 신발보다 더 완충 작용을 잘하는 덕분에 무릎이 보호되며, 신발을 신고 뛸 때에 비해 혈액 순환이 훨씬 활발해지고, 잠을 푹 자는 효험을 볼 수도 있다. 나는 맨발로 고생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널리 공유하고자 책까지 썼다.

내가 신발의 매트릭스에서 탈출하게끔 확신을 준 분이 있다. 하버드대 인류진화생물학과 대니얼 리버먼 교수다. 그가 공동 연구한 논문 '지구력 달리기와 인류의 진화(Endurance Running and the Evolution of Homo)'가 2004년 《네이처》에 게재됐다. 《네이처》는 표지에 이 논문을 소개하면서 '달리도록 태어나다(Born to Run)'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는 미국 저널리스트가 같은 제목으로 쓴 미니멀 슈즈 달리기에 대한 책을 먼저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뒤, 관련 자료를 두루 찾아서 공부하다가 리버먼 교수의 논문에 이르렀다. 그는 인류는 오래 달리기에 적합하도록 진화했다면서 그 가장 강력한 증거로 발을 들었다. 그가 논문에서 분석한 발은 당연히 맨발이었다. 신발 속에 있는 발이 아니라. 200만 년 전 선행 인류는 당연히 신발 없이 몇 시간을 뛰어다녔다. 사냥감을 좇아서.

리버먼 교수도 맨발로 뛴다. 그러나 풀코스를 완주하지는 않은 듯하다. 따라서 필자는 맨발 달리기 분야에서 이론과 실천을 망라했다는 점에서 손꼽힐 수 있다고 자부한다.

황토 산책길 조성은 효과 의심스러운 예산 낭비

이토록 맨발 활동을 신봉하고 실행하는 필자이니, 전국 방방곡곡 불고 있는 맨발 걷기 바람은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좋은 일도 도가 지나치면 아니 한 만 못하게 된다. 맨발 걷기에서 그런 모습이 여럿 나타나고 있다.

자기 집 마당이나 자신의 텃밭 둘레에 황토 산책길을 만드는 것은 누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대전 계족산에 사재를 털어서 황토를 덮는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의 나눔에는 박수를 보낸다. 숲속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 체험을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내 돈도 들어간 세금으로 길에 황토를 까는 행정에는 반대한다. 맨발 효과는 황토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는 잠시 후에 본격적으로 다룬다.) 지자체가 앞다퉈 황토 산책길을 만들었고 조성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세금을 흙처럼 낭비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그동안 맨발로 달린 많은 풀코스와 평소에 뛰는 구간은 전부 아스팔트 도로다. 콘크리트는 너무 딱딱하지만, 아스팔트는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아스팔트에 비하면 흙길은 푹신한 편이다. 물리적인 맨발 효과를 부담 없이 보도록 하는 데에는 그냥 흙길로 충분하다.

맨발 달리기는 발과 종아리 근육을 단련해 부상 위험을 줄이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에서 황토와 결합한 주장이 어싱(earthing)이다. 그라운딩(grounding)이라고도 불린다. 어싱은 접지(接地)를 가리키고, 이는 가전제품 등의 전기 회로를 구리선 등 도체로 땅과 연결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회로와 땅의 전위를 동일하게 유지함으로써 이상 전압의 발생으로부터 기기와 인체를 보호한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어싱'의 핵심 주장은

맨발로 맨땅을 접해야 한다는 주장을 '접지주의',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을 '접지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한다. 접지주의는 전 세계에 확산됐다. 영어권에도 책이 나왔고 국내에도 발간됐다. 이 글에서는 2010년에 초판이 나온 《어싱: 가장 중요한 건강상 발견(Earthing : The Most Important Health Discovery Ever!)》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세 사람인데, 케이블TV 업계 출신의 일반인과 심장전문의, 작가다.

이 책의 주장 중 핵심으로 다음을 뽑을 수 있다.


  • 신발이 지구의 자유 전자 공급을 막는 바람에 인체는 치유와 보호를 받지 못한다.


  • 맨발로 걸으면 정전기가 사라지고 전자(電子)에 휩싸인다.


  • 맨발과 땅의 접촉을 차단하는 신발은 염증, 자가면역질환, 생체리듬 교란, 호르몬 장애, 코르티솔 이상, 부정맥, 관절염, 헤르페스, 간염, 불면증, 만성 통증, 피로, 스트레스, 불안, 조기 노화 등을 일으킨다.

이에 대해 '과학과 비판적 사고의 촉진'을 모토로 하는 매거진 《스켑틱》이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제목은 '세도나에서의 맨발: 땅에 발을 접지한다는 엉터리 주장이 의학적인 유사과학을 조장한다(Barefoot In Sedona: Bogus Claims About Grounding Your Feet to Earth Promote Medical Pseudoscience)'이다. 기고자는 가정의학 전문의 해리엇 홀이고, 온라인판은 2018년 4월 24일 발행됐다.

"세포는 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홀은 이 글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접지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꼰다.

조심하라! 사악한 모카신, 끔찍한 하이힐, 흉포한 플립플롭, 괴물 같은 부츠, 음험한 슬리퍼를! 이들 모두 우리를 해치려 달려든다. 신발만이 아니다. 맨땅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것들- 집, 옷, 천막 바닥, 포장도로, 현관 매트, 자동차, 스키 등등-이 문제다.

접지주의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전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물리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인체 의학의 분야다. 전자와 관련해 홀은 "저자들 중 누구도 물리학자가 아니다"라며 "그 티가 난다"고 꼬집었다. 후자에 대해서는 "세포는 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요컨대 그는 접지주의에 대해 "어싱을 지지하는 논거는 틀렸거나 너무 모호해서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대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홀은 대체의학(대체요법)을 비판하는 글을 활발히 썼다. 필명 스켑독(The SkepDoc)으로도 널리 알려졌고, 과학 기반 의학 운동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홀의 성향을 고려할 때, 접지주의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도움을 받을 방법이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는 편향도 없고 플라시보도 느끼지 않아, 이런 사안에서 객관성을 지킬 수 있다. 필자는 챗GPT에게 어싱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필자: Earthing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학술 저널의 논문을 찾아서 초록으로 제시해줘.

챗GPT: 좋습니다. 국제 학술 저널에 실린 Earthing/ Grounding 관련 주요 논문 5편을 골라 초록(원문 대신 저작권을 준수한 요약문) 형태로 정리해 드립니다. (중략)

간단한 해석ᆞ주의사항


  • 지금까지 발표된 많은 연구는 소규모 파일럿 연구 또는 예비적 무작위대조 시험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무작위ᆞ이중맹검 설계를 사용해 긍정적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 리뷰 논문은 가능한 생리학적 메커니즘(전자 전달, 항산화ᆞ항염 효과, 혈류ᆞ혈액 물리 변화 등)을 제시하지만,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는 않았습니다.


  • 결론적으로 흥미롭고 예비적으로 유망한 결과들이 있으나, 보건의료 권고나 치료법으로 확정하려면 표본이 크고 엄격한 무작위대조 시험과 독립적 재현 연구가 필요합니다.

"말기암 퇴치"가 가장 위험한 주장

마지막인데 가장 위험한 효험이 '말기암 퇴치'다. 국내에는 맨발로 말기암을 물리쳤다는 사례를 강조하는 접지주의자가 있다. 이는 '일화적'일 뿐, '임상적'으로 입증된 효과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암 환자가 이런 효험을 빋고 맨발 대체의학에 의존할 경우, 현대 의학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더 높은 가능성을 버리게 된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고 달리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많고 크다. 그 효과는 '어싱'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접지주의자의 주장과 달리 어싱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신발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

다음은 챗GPT가 이 글을 읽고 정리한 문답이다. 이 사안을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FAQ이다.

자주 묻는 질문: 어싱(Earthing)과 맨발 러닝

Q1. 맨발 달리기와 어싱(earthing)은 같은 개념인가요?

A1. 아니다. 맨발 달리기는 발과 종아리 근육을 단련해 부상 위험을 줄이고 혈액순환을 돕는 등 운동 효과가 과학적으로 뒷받침된다. 반면 어싱은 맨발로 땅에 닿아 '전자'를 흡수해 질병을 예방·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Q2. 어싱 책(Earthing: The Most Important Health Discovery Ever!)의 핵심 주장은 무엇인가요?

A2. 신발이 지구의 자유 전자 공급을 막아 각종 질병을 유발하며, 맨발로 땅에 닿으면 염증, 자가면역질환, 불면증, 조기 노화 등 거의 모든 질환을 예방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Q3. 과학자들의 평가는 어떤가요?

A3. 의사이자 회의주의자인 해리엇 홀(필명 The SkepDoc)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세포는 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장들은 틀렸거나 검증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현재까지 나온 연구들은 규모가 작고 통제가 부족해 확정적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Q4. 국내에서 어싱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나요?

A4. 지자체가 황토길을 조성하거나 일부 접지주의자가 말기암 완치 사례를 주장하는 등 과도한 열풍이 있다. 그러나 맨발 효과는 황토 때문이 아니며, 암 치유 같은 주장은 일화적 사례일 뿐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Q5. 맨발 러너로서 필자는 어떤 입장인가요?

A5. 필자는 14년 넘게 맨발 러닝을 실천하며 장점과 노하우를 체득했고,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어싱과 같은 유사과학적 주장은 강하게 비판한다. 맨발 달리기는 과학적 원리에 근거해 효과가 있지만, '기적'을 내세우는 접지주의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백우진 칼럼니스트 (smitte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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