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 장인 박지환 “600년뒤에도 사랑받는 악기 만들고 싶어”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2025. 10. 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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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크레모나서 공방
3대 콩쿠르 ‘최고제작가상’
기술이 못닿는 사람 감각으로
균일하지 않은 나무 조화 찾아
현악기 제작자 박지환씨(오른쪽)가 바이올린을 살펴보고 있다. [Wieniawski Society]
“바이올린의 수명은 통상 600년에서 800년 정도로 여겨집니다. 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 바이올린이 지금 전성기를 보내는 셈이죠. 악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 받는 악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서양 현악기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환씨는 최근 매일경제와 서면 인터뷰에서 현악기 제작자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그는 “오랜 시간 잘 관리된 ‘올드 악기’는 긴 세월을 거쳐 깊이 있는 음색을 만들어낸다”며 “기술의 발달로 현대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악기도 호평을 받고 있지만 아직 정상급 연주자들이 ‘올드 악기’를 선호하는 까닭”이라고 부연했다.

박씨는 2015년 공방을 열고 10년간 유럽 본토에서 자신의 발자취를 뚜렷하게 남기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트럼펫 주자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악기 연주 전공을 모색했던 그는 입시에 실패하고 군악대에서 군 복무를 수행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후임에게 우연히 현악기 제작 일을 듣고 이탈리아 유학을 결정한 것이다. 2005년 크레모나에 있는 국제 스트라디바리 현악기 제작학교(IPIALL)에 입학한 그는 도제식으로 기술을 배웠다.

박씨는 “현악기 제작에 대해 듣고 ‘좋아하는 일’일과 ‘잘 하는 일’을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며 “길게 고민하지 않고 이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기술의 발전으로 여러 악기들이 공장 생산되고 있지만 바이올린은 아직 수제악기 시장을 크게 위협하고 있지는 않다”며 “공정 자체가 복잡한 데다 매번 균일하지 않은 나무를 사용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사람의 감각으로 대응해야 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바이올린은 크게 앞판과 옆판, 뒷판으로 구성된 ‘몸통(바디)’과 위쪽에 있는 ‘헤드’로 구성된다. 앞판은 가문비나무를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은 주로 단풍나무를 쓴다. 얇은 판을 뜨거운 쇠에 휘어지게 구워서 형틀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옆판부터 제작한다. 이후 앞판과 뒷판을 옆판에 맞게 가공하고 두께와 형태를 맞춰 옆판에 붙인다. 이들은 모두 악기의 울림통으로서 역할 하며, 나무에 따라 소리의 특성이 달라진다.

박씨는 “바이올린 공정 과정 중 어느 한 순간이라도 미흡하면 전체에 영향을 끼쳐 부족한 부분이 바로 드러난다”며 “악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미적으로도 음향에서도 튀거나 부족한 부분 없이 조화롭게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마음가짐은 결과로 나타났다. 박씨는 2016년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세계 최고 권위의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제작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올해는 한국인 최초로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는 우승 당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출품해 1위와 2위에 올랐는데, 이는 대회 사상 세 번째 기록이었다. 2018년에는 독일 미텐발트 제작 콩쿠르에서 비올라로 최고제작가상(바이올린 4위 비올라 2위)을, 크레모나 트리엔날레 콩쿠르에서 첼로로 최고제작가상(바이올린 3위 첼로 2위)을 받았다.

이들 3대 모던 현악기 제작 콩쿠르에서 모두 최고제작가상을 수상한 것은 세계에서 박씨만이 유일하다. 또 그의 2016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우승 악기인 ‘오르소(Orso)’는 폴란드 문화재청에 등록된 상태로 비에니아프스키 재단의 관리를 받고 있다. 우승작은 후원차 유능한 젊은 연주자에게 임대돼 소리를 내고 있다. 박씨는 “올해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오르소 연주자를 만났다”며 “연주자도 만족하고 있다고 해 기뻤다”고 말했다.

뛰어난 제작자로서 걸어온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일까. 답은 첫 번째 바이올린이었다. 박씨는 “지금까지 바이올린은 100대 이상, 비올라와 첼로는 각각 20대가량 만들었다”며 “그 가운데 IPALL 1학년 때 개인적으로 만든 첫 바이올린이 가장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방에서 힘들게 공정 과정을 익히며 약 1년간 제작했다”며 “당시 마음을 초심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유지해 언젠가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갖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역만리에서 추석을 보내는 심정을 물었다. 박씨는 “해외에서 맞이하는 명절은 분주한 귀성길도, 북적이는 가족 모임도 없지만 늘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며 “크레모나에서도 한국과 같은 달을 바라본다는 심경으로 지인과 매일경제 독자들에게 인사드린다”고 답했다.

현악기 제작자 박지환씨(오른쪽)가 바이올린을 살펴보고 있다. [Wieniawski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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