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서울지하철에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이규화의 지리각각]

이규화 2025. 10. 3.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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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승차권 발매기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신용카드로 결제하려다 현금만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발견하고 가리키고 있다. 유튜브 채널 Nomac Uncut 의 ‘아시아 최고의 도시, 서울’ 영상 캡처.

서울지하철(수도권지하철)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하드웨어 최강’이다.

노선의 촘촘함, 청결도, 정시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용요금과 스크린도어를 통한 안전성까지 세계 어느 도시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몇 가지 흠결이 지적된다. 특히 다음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은 시급하고도 심대하다.

하나는 외국인에게 승차권 구매시스템이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도착역명을 알아내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점이다.

내국인은 신용카드나 별도의 학생카드, 스마트폰으로 개찰구에 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 관광객은 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다.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신용카드를 내밀었는데 반응이 없자 당황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가끔 눈에 띈다(이들은 한국의 대중교통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교통카드 충전기 앞에서 또 한번 당황하게 된다. 현금만 결제되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도시에선 신용카드로 승차권 결제(개찰)가 되는데, ‘세계 최고’라는 서울지하철에선 먹통이다. 이 지점에서 서울지하철의 소프트웨어는 ‘빵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괜한 말이 아니다.

외국인에겐 고역, 승차권시스템…10년 무능 행정의 결과


서울 지하철은 뉴욕이나 파리, 런던 등 오래된 도시철도가 갖는 낙후된 이미지와 비교할 때 분명 현대적이고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해외 언론으로부터 “서울지하철만큼 안전하고 깨끗한 곳은 드물다”는 찬사가 종종 나온다. 그러나 이런 하드웨어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직접 이용해본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세계 최고”라는 평가가 와닿지 않는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외국인 승차권 구매시스템의 후진성 때문이다. 외국인이 보유한 비자(VISA)나 마스터(Master) 카드로도 개찰구를 통과할 수 없다. 뉴욕, 런던, 도쿄, 싱가포르가 이미 10년 전쯤부터 ‘오픈 루프(Open loop)’ 방식으로 해외 신용카드 결제를 도입한 것과 대비된다.

명동역, 홍대입구역 등 외국인이 몰리는 역에선 교통카드 판매기와 충전기 앞에 긴 줄이 생기는 게 다반사다. 교통카드를 충전하려는 관광객이 기계 앞에서 머뭇거리다 현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IT 강국을 기대했던 관광객들은 “서울이 의외로 불편하다”는 불만을 쏟아낸다. 실제로 외국인 관광객이 “지하철이 한국 여행의 최대 불편 요소”라고 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이 불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지적돼 왔다. 10년 넘게 행정이 실종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국인에게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화된 도시 서울을 감안하면 이는 반쪽짜리다.

2004년 도입된 티머니 기반의 ‘클로즈드 루프’(closed loop) 시스템이 ‘원흉’이다. 내국인에게 완벽히 작동했지만, 외국인에겐 진입장벽이었다. 하지만 관련 민원이 주로 외국인에게서 나왔던 탓에 시 당국은 이를 ‘소수의 불편’으로 치부해왔다. 그들은 선거에서 ‘표’도 아니지 않은가.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티머니 운영사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비용 문제도 있었다. 서울교통공사 추산에 따르면 개찰구 단말기 7000여대를 전부 교체하는 데만 약 500억원이 든다고 한다. 버스, 마을버스, 택시까지 고려하면 비용은 수천억원이 족히 들 것이다. 어느 부처도 책임지고 나서지 않으면서 행정은 사실상 ‘방치’를 택한 셈이다.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시대, 더는 미룰 수 없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2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K-팝, K-드라마, K-푸드 등 K-컬처의 열풍은 확산 중이다. ‘케데헌’ 열풍은 정신을 바짝 들게 한다.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교통 시스템이 외국인들에게 ‘최악의 경험’으로 기억된다면, 이는 국가 이미지에도 타격이다.

전문가들은 “편리한 교통은 관광객 소비와 직결되는 핵심 요소”라고 한다. 단순한 교통 편의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 역시 2021년부터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대도시 중심으로 외국인이 신용카드를 바로 쓸 수 있도록 바꿨다.

제주도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해외 신용카드 결제를 버스에 도입했다. 이미 세계 주요 650여 도시가 ‘오픈 루프’를 도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의 늑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근본적 해법은 전국 단위의 ‘오픈 루프’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로 전국 어디서든 지하철과 버스를 탈 수 있어야 한다. 환승 할인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전면 개편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임시방편이라도 관광객이 집중되는 수도권과 부산 같은 핵심 관광지부터 ‘외국인 전용 신용카드 게이트’를 설치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개찰구 한두 곳만 전용 게이트로 바꾸면 전체 시스템을 뒤엎을 필요가 없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미 “19억원 규모의 예산으로 전용 게이트 설치가 가능하다”고 밝힌 만큼, 기술적 어려움은 크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의지’다.

스크린도어에 부착된 역명 표시.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서야 볼 수 있고 흐릿해 시인성이 떨어진다. 이규화 기자

외국인 관광객에게 계속 불편을 강요한다면, 세계 최고라는 평가가 빛이 바랠 뿐 아니라 발길을 돌릴 것이다. K-컬처 붐을 이어가기 위해선 교통 인프라의 글로벌 스탠더드화가 필수다. 서울이 진정한 ‘세계적 도시’로 도약하려면, 지하철 개찰구에서부터 그 첫인상을 바꿔야 한다.

“여기가 어디죠” 두리번 거리며 물어야 하는 도착역


다음은 도착역 안내 시스템에 대한 불만족이다. 지하철 불편 사항을 조사하면 항상 수위에 오르는 것이 도착역을 쉽게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시민게시판과 민원창구에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열차 내 방송에서 도착역명이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차량 소음이 커 안내 방송이 잘 들리지 않는다. 역명 표지 역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환승역이나 혼잡 구간에서는 승객들이 어느 역에 도착했는지 허둥지둥하게 된다. 어르신·청각장애인·외국인 이용객에게는 결코 사소한 불편이 아니다.

이 점을 개선해달라고 시민들은 오래전부터 요구해왔다. 서울시는 뒤늦게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부터 스크린도어에 도착역명을 부착하고, 역사 안내판의 글씨 크기를 키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상역이나 노후 역사에는 적용 속도가 더딘 데다, 열차 내부에서는 여전히 승객 체감 개선이 부족하다. 스크린도어에 부착하는 역명 글자도 더 키울 필요가 있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서면서 드러나기 때문에 노출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차내 도착역 디스플레이는 띄엄띄엄 설치돼 있고 화면 방향도 한쪽만 향하고 있다. 화면 크기도 작고 흐릿할 때도 많다. 고장이 잦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도착역 안내는 단순한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안전 문제”라고 강조한다. 대피 상황이나 긴급 정차 시 승객들이 현재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 주요 도시처럼 차량 내 대형 디스플레이를 확대 설치하거나, 다국어·시각적 아이콘을 결합한 안내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청각장애인을 위해 진동 알림이나 모바일 연동 안내 등 보조 수단도 검토할 만하다.

서울지하철은 하드웨어 중심의 ‘명성’을 넘어, 이제 소프트웨어의 세심함까지 갖춰 ‘일류’ 승객 경험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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