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채워주는 건 구글 명함 아닌 하루의 성실함”

송혜진 기자 2025. 10. 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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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에 구글 임원서 해고된 후
美 마트에 재취업한 로이스 김
‘트레이더 조’ 일한 경험 바탕으로
‘우리는 다르게 팝니다’ 책 펴내
지난 달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로이스 김. 구글 임원이었던 그는 정리해고(layoff) 이후, 마트 '트레이더 조'에서 1년 반 넘게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우리는 다르게 팝니다'를 펴냈다. /장련성 기자

‘이제 이렇게 마트 아줌마가 되는 건가?’

2023년 1월 30일 월요일 새벽 3시 미국 마트 체인점 ‘트레이더 조’의 정문 앞에 서서 로이스 김(본명 정김경숙·57)은 잠시 이런 생각에 멈칫했다고 했다. 입김이 새파랗게 얼어붙는 겨울이었다.

그는 직전 주 금요일 아침에 정리해고(layoff)를 당했다. 대면 통보도 전화도 없었다. ‘유감스럽게 귀하도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됐다’고 적힌 이메일 한 통 받은 게 전부다. 당시 구글은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자 전 세계 인력의 6%에 해당하는 직원 1만2000명을 해고하는 대규모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구글에서 16년 일했고 본사 최초 비원어민 디렉터(임원)까지 지냈던 로이스 김도 이를 피하진 못한 것이다.

충격이 컸다. 보통은 술만 마시며 며칠을 지냈을 것이다. 로이스 김은 그러나 사흘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평소 한 번쯤 일해 보고 싶었던 동네 마트 ‘트레이더 조’를 찾아가 면접을 봤고 일자리를 얻었다. 첫 출근길엔 마음을 다잡았다. ‘더 늦기 전에 마트 경험도 해보자. 망설이면 놓친다.’

로이스 김은 이후 트레이더 조에서 꼬박 1년 넘게 일했다. 파트타임으로 시작해 6개월 만에 섹션 리드가 됐고, 또다시 6개월이 지났을 땐 매니저로 승진했다. 최근엔 트레이더 조에서 일한 경험을 녹여 책 ‘우리는 다르게 팝니다(더퀘스트)’를 펴냈다. 빅테크 임원이었던 그가 육체 노동자로 살아낸 시간은 어땠을까.

9월 중순 로이스 김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잔근육 붙은 팔을 드러낸 민소매 차림의 여성이 서 있었다.

지난 달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로이스 김. 그가 실직 후 1년 반 일했던 미국 마트 ‘트레이더 조’의 에코백을 품에 안고 활짝 웃었다. 트레이더 조는 직원들을 위해 '동료(crew)'라고 따로 새긴 가방을 나눠줬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빅테크 임원, N잡러가 되다

-구글 임원을 지내다 마트 트레이더 조에 취직했다.

“정리해고 당했단 사실만 생각하며 누워 있고 싶지 않았다. 일단 그동안 하고 싶어도 회사 다니느라 못 해본 일들을 적어봤다. 이때 첫 줄에 쓴 게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기’였다. 동네에 있는 트레이더 조는 대형 마트인 월마트, 타겟과 달랐다. 직원들이 유독 친절했다. 물건도 다른 곳에선 살 수 없는 게 많았다. 우리나라 냉동 김밥이 완판된 곳도 트레이더 조다. 지원서를 직접 프린트해서 매장을 찾아갔다. 바로 면접 기회를 얻었고, 까다로운 두 번의 인터뷰를 통과하고 크루가 됐다.”

-트레이더 조에서만 일을 한 게 아니라고 들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마트에서 시급제로 일했고, 오후 1시가 되면 커피숍 스타벅스로 가서 오후 8시까지 일했다. 이웃 고양이 먹이 주고 돌봐주는 펫시터 일을 했고, 틈날 때마다 차에 승객을 태우는 공유차량서비스 ‘리프트’ 아르바이트도 했다. 밤엔 화상으로 몇몇 국내 기업들을 위한 홍보·마케팅 컨설팅도 했다. 가장 바쁜 요일엔 19시간쯤 내리 일한 셈이다.”

-당장 생계가 어려웠던 것도 아닐텐데, 그렇게까지 일한 이유가 있을까.

“정리해고 후에도 여전히 내 몫을 해내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바쁘게 일하면서 상처를 금세 잊을 수 있었다. 트레이더 조 매장에선 종종 짐을 옮길 일이 생긴다. 처음엔 20kg짜리 박스 옮기는 일로 시작해 나중엔 200kg짜리 적재물도 옮겼다. ‘자칫 깔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무게였지만, 요령을 익혀서 옮기면 뿌듯했다. 매일 작은 성취를 맛봤고, 그게 자신감으로 돌아왔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대단한 명함, 높은 직책이 아니라, 그날 하루를 성실히 살아낸 기쁨이라는 것도 이때 알게 됐다.”

트레이더 조에서 물건을 옮기고 있는 로이스 김. 나중엔 200kg짜리 적재물도 실어 옮길 수 있게 됐다. /로이스 김 제공

◇당신이 ‘제대로’ 일할 때

-구글에만 있었다면 배울 수 없는 교훈들을 또한 트레이더 조에서 배웠다고 들었다.

“트레이더 조는 정말 연구해볼 만한 곳이다. 아마존·알리 익스프레스 같은 온라인 업체들이 유통을 쥐고 흔드는 요즘에도 트레이더 조는 온라인 판매를 안 한다. 그 흔한 셀프 계산대도 없다. 소셜미디어 마케팅, 대중 광고도 따로 안 한다. 그래도 미국 전역 600개 매장의 단위 면적당 매출이 1등이다.

비결은 손님을 ‘팬’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곳에 취직하기 전 달걀을 사러 간 적 있다. 계산대 직원이 내가 집어온 달걀을 다시 살피더니, ‘여기 달걀 하나가 살짝 금 간 것을 알고 있냐’고 묻고 알아서 새것으로 바꿔주더라. 세상 어느 마트 직원이 이렇게 일할까 싶었다.

취직하고 봤더니 역시나 트레이더 조는 매장 크기는 다른 곳보다 작지만 직원 한 명 한 명이 매장의 모든 물건을 익히고 각각의 성분과 특징까지 알고 있었다. ‘글루텐 프리 제품을 사고 싶다’는 고객이 오면, 그곳 매장의 모든 글루텐 프리 상품을 찾아주고 각각 상품의 다른 점도 알려준다. 손님 입장에선 트레이더 조에 다시 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형 마트 직원 중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온라인 시대에 안 맞는 운영 방식 같기도 한데.

“혁신은 디지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 선배 동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 제대로만 하라.’ 가령 이곳에선 피망 하나도 몇 시간이 걸리든 정성 들여서 쌓으라고 가르친다. 나 같은 초보가 피망을 쌓으면 세 시간씩 걸렸다.

처음엔 속으로 ‘이게 웬 인력 낭비, 시간 낭비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피망을 그렇게 진열하니 헤집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위에 있는 것만 곱게 집어갔다. 하나 살 것도 여러 개 사 갔고, 금세 동이 났다. 대형 마트에선 보통 신선식품 30~40%가량이 안 팔리고 폐기되는데, 다들 폐기율을 줄이려고 많은 비용을 쓴다. 이곳은 반면 폐기율을 애써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진열대 상품 마지막까지 팔려나갔다.”

세시간씩 걸려 쌓았다는 피망과 파프리카. 트레이더 조의 신선식품 진열 방식을 익히면서, 로이스 김은 '시간이 걸려도 좋다. 제대로 하라'는 원칙을 새롭게 터득했다고 했다. /로이스 김 제공

-비효율이 알고 보면 더 효율적이다?

“정확하다(웃음). 트레이더 조 매장에선 100명 넘는 직원 근무표를 수기로 작성한다. 처음엔 쇼킹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이걸 손으로 적고 있나. 엑셀이나 구글 독스 문서로 올리면 그만인데. 나중에 알았다. 누가 갑자기 아프거나 큰일이 터져 대체 인력을 찾을 일이 생기면, 매니저들은 자신이 일일이 직원 이름을 손으로 적은 덕분에 누가 지금 일을 대신할 수 있는지 문서를 들춰보지 않아도 바로 알았다. 대응이 훨씬 빨랐고, 문제 해결 능력도 더 뛰어났다. 손으로 쓰는 것,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익힌 거다.”

-책에 트레이더 조에서 ‘인간의 인간적인 활용’을 배웠다는 얘기도 나온다.

“트레이더 조는 격주로 사내 소식지를 발행한다. 소식지 앞부분엔 매번 35년~10년 근속자 이름을 근속 연수와 알파벳 순서에 맞춰 몇 페이지씩 깨알같이 다 실어준다. ‘우리가 당신이 일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임원이나 사장 이름도 똑같이 알파벳 순서로 들어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직원들은 이런 데서 회사 다닐 이유를 얻는다.

직원 한 사람이 계속 궂은일을 맡게 두지도 않는다. 계산원만 8~9시간씩 하거나, 물건 옮기는 것만 하루 종일 하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어서다. 다른 대형 마트에선 카트만 치우는 사람을 따로 두지만, 이곳은 직원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1시간씩 돌아가며 한다. 누구든 하고 1시간만 하니, 웃으면서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배려가 조직을 움직인다.”

◇용기는 체력에서 나온다

로이스 김은 한국에서 구글 코리아 커뮤니케이션 총괄 임원으로 일하다 2019년 본사 디렉터가 되면서 미국 실리콘밸리로 옮겨왔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미국으로 갈 땐 주변에서 ‘한국에서 임원까지 하던 사람이 미국서 무슨 고생을 사서 하려고 그러냐’고 말렸다고 했다. 구글에서 나와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땐 55세였다. 이때도 주변에선 “편하게 쉬면 되지 뭐 하러 그렇게 일하러 나가냐”고 했다.

-50세에 미국에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55세에 마트 일을 해보는 것도.

“당연히 쉽지 않다(웃음). 한국엔 나와 오래 호흡을 맞춰온 팀원들이 있고, 고생하며 쌓아온 넓은 인맥이 있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어디에 도움을 구해야 하는지 답이 딱 나왔다. 미국에선 반면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맨땅에 부딪혀야 했다.

영어도 문제였다. 본사 커뮤니케이션 사람들은 누구보다 말이 빠르고 언변이 화려하다. 이들 사이에서 비원어민 출신으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평생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큰맘 먹고 부딪혔다.

구글 본사에 처음 갔을 땐 주요 직원 명단을 엑셀로 뽑아놓고 혼자 ‘3개월 만에 100명 만나기’ 프로젝트를 했다. 일을 잘하려면 어딜 가나 관계가 좋아야 한다. 여기 묻고 저기 부탁하는 게 통하려면 얼굴부터 알아야 하는 거다. 매일 하루 6~7명씩 새로 만나 인사를 하고 다녔더니 몇 달 뒤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트레이더 조에 있을 때도 일부러 아침 교대·점심 교대·저녁 교대를 다 돌았다. 동료 이름을 누구보다 빨리 외우고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남들보다 빨리 진급했던 비결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던 시절의 모습. '로이스 김'이라고 쓰인 이름표와 로고가 새겨진 니트 비니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로이스 김 제공

-원래 사교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인가.

“전혀(웃음). 원래는 사람들과 눈도 잘 못 맞추는 ‘트리플 A형’이다. 20대에 미국 MBA 유학을 갔는데 극도로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 한 명 제대로 사귀질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매일 10㎞씩 뛰었다. 이때부터 삶이 달라졌다. 몸이 건강해지니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요즘도 매일 운동한다. 일주일에 3~4번씩 10㎞씩 뛰고, 검도는 매일 한 지 17년쯤 됐다. 산행과 수영, 근력 운동도 주기적으로 한다. 체력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말 건넬 용기도, 회사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며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체력에서 나온다.”

-정리해고의 충격을 사흘 만에 털고 일어났던 것도 체력 덕이었을까.

“물론이다. 몸까지 아팠다면 한참을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 다행히 오래 운동을 지속해온 덕에 몸이 쌩쌩했고, 죽도록 괴로운 순간에도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55세에 마트 일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체력 하나는 자신 있어서였다. 트레이더 조에서 일이 익숙해질 무렵엔 나처럼 구글에서 정리해고된 사람들을 모아 트레킹도 다니고 산행도 갔다. 체력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 비록 넘어졌지만

로이스 김은 최근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책을 낸 후 강연도 다니고, 실직한 사람끼리 만나 서로 격려하는 ‘비트윈잡스(Between Jobs)’란 모임도 시작했다. 새로운 직장도 다시 알아보고 있다.

-헤드헌터가 자기소개서에 트레이더 조 아르바이트한 경험을 더 길게 써야 한다고 말했다던데.

“모토로라, 한국 릴리, 구글에서 일한 경력을 쭉 쓰고 트레이더 조 매니저 경험을 한 줄 붙인 것을 읽더니 대뜸 ‘구글에선 몇 명하고 일했어요? 트레이더 조에선 몇 명하고 일했죠?’라고 묻더라. 돌아보니 내가 큰 기업의 임원이었을 때도 함께 일한 팀원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반면 트레이더 조 매니저일 땐 함께 일한 팀원이 100명이 넘었다. 헤드헌터는 내게 ‘그것 보라’고 했다. ‘당신 인생 경력의 하이라이트는 구글이 아니에요. 트레이더 조에서 매니저까지 간 거예요. 어떤 대기업에서도 못해 본 경험을 한 거라고요’라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자기소개서를 그래서 다시 썼다(웃음).”

-가족들은 그래도 한때 정리해고 당하고 N잡러로 일한 이야기를 주변에 널리 알리는 것을 꺼렸다고 들었다.

“나중에 더 좋은 기업에 번듯하게 취업하고 성공한 다음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해도 되는데, 왜 지금 한창 고생하는 이야기를 말하고 다니느냐는 타박도 들었다. 그렇지만 내겐 지금 넘어진 이야기,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애쓰는 과정 자체를 사람들과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패를 넘어서기 위한 과정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로이스 김의 눈가가 붉어졌다.

-‘비트윈잡스(Between Jobs)’란 모임엔 어떤 사람들이 오나.

“요즘 우리나라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단행하거나 권고사직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이 과정에서 실직한 분들이 내게 소셜미디어로 연락해 ‘만나서 힘을 얻고 싶다’고 했다. 회사 나오고 움츠러든 사람들에겐 가족이나 친구의 위로도 사실 크게 와닿지 않는다. 또 다른 실직자, 혹은 실직을 경험했지만 이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힘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었다. 같이 사연도 나누고 격려도 하고 지원서 쓰고 면접 보는 과정도 코칭해준다. 지금 우리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 같다. 오늘도 이 인터뷰 마치면 비트윈잡스 모임이 기다리고 있다(웃음).”

-오늘 직장을 잃은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쉬면서 괴로워하지 말고 일단 시간제 아르바이트, 육체노동이라도 부딪혀봤으면 좋겠다. 모든 경험은 자산이 되고, 작은 성취가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니까. 그리고 운동하자. 나가서 30분씩만 뛰어도 삶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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