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심 세계관은 오만” 깨달음 준 ‘침팬지의 어머니’

“인간은 침팬지보다 조금 더 지적인 원숭이에 불과하다.”
침팬지 연구를 통해 영장류를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까지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은 영국의 동물학자 겸 생태운동가 제인 구달(91)이 1일 별세했다. 제인 구달 연구소는 이날 “미국 순회강연 일정을 치르던 구달 박사가 자연적 요인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침팬지들이 야생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그의 발견은 위대한 과학적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고 전했다.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구달은 대학 학위 없이도 호기심과 열정을 통해 세계적인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타잔’ ‘두리틀 박사의 모험’ 등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즐겨 읽으면서 동물 연구자의 꿈을 키웠다. 특히 아버지가 사다준 ‘주빌리’라는 이름의 봉제 침팬지 인형을 좋아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비서를 양성하는 직업학교에 진학한 그는 야생동물의 천국 아프리카에 가서 동물을 연구하겠다는 꿈을 꾸며 식당 종업원 등 여러 일을 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막연해 보였던 꿈은 스물세 살이던 1957년 현실이 됐다.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 나이로비 근교에서 가족 농장을 일구던 친구의 초대를 받고 케냐행 배에 몸을 실었다. 그는 이곳에서 고생물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를 만나 자연사 박물관 직원으로 채용됐다. 대학 학위 없이도 독학으로 배운 지식과 열정을 눈여겨본 리키 박사는 탄자니아 곰베 숲 지역에 서식하는 침팬지의 생태를 밀착 관찰하는 프로젝트에 구달을 투입했다.
이 연구를 통해 구달은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로 발돋움했다. 구달은 현장에서 연필과 노트만 들고 숲을 돌아다니며 야생 침팬지의 생활을 매일 적었다. 이 현장 연구를 통해 침팬지가 풀줄기를 이용해 흰개미를 낚는 장면을 관찰해 ‘침팬지도 도구를 만들어 쓴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인간만을 ‘도구 만드는 존재’로 규정하던 통념을 깨고, 인간과 다른 유인원의 차이가 아주 미세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유순한 초식성으로 알려진 침팬지에게 다른 원숭이를 사냥해 잡아먹는 육식성 맹수의 모습이 있다는 점도 구달의 현장 연구로 확인됐다.
구달의 연구 방식은 학계 주류와 결이 달랐다. 각각의 개체에 번호 대신 사람처럼 이름을 붙이고, 이들의 감정과 개체 성격을 기술했다는 이유로 ‘의인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기록은 사람 못지않게 복잡하고 입체적인 침팬지의 행동 패턴을 보여주었고, 현대 동물행동학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워싱턴포스트는 “구달의 연구는 ‘동물은 본능적 존재’이고, 인간은 이성적 존재란 오만을 허물었다”고 평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는 정식 학사 학위는 없었지만 구달의 연구 성과를 인정해 1966년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구달은 자연보호 운동가로도 업적을 남겼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1977년 설립한 제인 구달 연구소는 동물 생태 연구에 그치지 않고 생태 보호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1991년엔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고, 지역 환경보호에 나서는 청년 운동인 ‘루츠 앤드 슈츠(Roots & Shoots·뿌리와 새싹)’를 출범시켜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구달은 평화사상가로 전 세계에 인간과 동물, 자연의 조화와 공존의 중요성을 설파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8월 만해실천대상을 받았다. 당시 시상식 참석차 강원도 인제를 찾은 그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평생 침팬지를 연구했지만 인간이 더 똑똑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데, 그 똑똑한 머리를 지구를 망가뜨리는 데 쓰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은 2014년 충남 서천에 제인 구달 탄생 80주년을 기념해 ‘제인 구달 길’을 만들었고, 이화여대는 2023년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구달은 2002년 유엔 ‘평화의 메신저’로 임명됐고, 2021년엔 인류 정신과 가치의 진보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영국 템플턴상, 올해 1월에는 미국 최고 민간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다.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인형 회사 마텔은 2022년 ‘어린이들에게 영감을 준 여성’ 시리즈로 구달이 침팬지를 연구하는 모습으로 디자인한 바비 인형을 선보였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 광화문은 ‘세계의 중심’이 된다
- 車부품 공장 화재… 55명 부상, 14명 연락두절
- 호르무즈 방어… 동의 했지만, 동참 안 밝힌 다카이치
- 아미로 꽉 찬 식당·카페… 1.2조 ‘BTS노믹스’에 서울이 설렌다
- 26만명 몰릴 듯… 넘어지면 웅크리고 큰 소리로 알리세요
- “내 약점을 드러내는 용기… BTS는 당당해지라고 응원해줘”
- 트럼프 “진주만 땐 왜 안 알렸나” 말에 눈 커진 다카이치
- 에너지 타격전으로 번진 이란戰 “아마겟돈 공포가 전세계 덮쳐”
- 4년간 산업용 전기료 70% 올랐는데… 이번엔 중동발 ‘LNG 쇼크’
- 검찰 통제 사라진 2만 특사경… 정치인 기관장들 ‘호위무사’ 될 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