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칼럼] 조희대의 오래된 약속은 지귀연에게만 지켜지나
검찰 등 수사기관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이 기각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1%다. 이 백분의 일 확률로 압수수색영장을 피해 간 사람이 있다. 바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지귀연이다.
MBC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지귀연 부장판사에 대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고 어제(10월 2일) 보도했다. MBC는 구체적인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마 지극히 운이 좋았거나, 같은 법원 식구라 봐줬거나, 영장 내용이 터무니 없어서 법원이 걸러냈거나, 이 셋 중 하나가 기각 이유일 거다. 1번과 2번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3번 사유는 설득력이 없다. 통계나 경험상 그런 전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법원의 ‘사법정보공개포털’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법원에 청구된 압수수색검증영장은 모두 53만 5,577건이다. 사상 처음으로 압수영장 청구 건수가 50만 건을 훌쩍 넘어섰다. 여기서 법원이 기각한 영장은 5,352건이다. 발부율은 99%, 기각률은 1% 가량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검찰이 들이민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이 제대로 보지 않고 기계적으로 발부해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법원을 일컬어 압수수색영장 ‘자판기’라고 조롱하는 말도 나왔다. 일례를 들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가 2023년 9월과 12월 뉴스타파 사무실과 한상진, 봉지욱 기자 집과 필자 집을 압수수색할 때다.
검찰이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로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서울중앙지법에 의해 9월 13일과 12월 5일 각각 발부됐고, 검사와 수사관은 그 영장을 들고 바로 다음날 새벽 뉴스타파 뉴스룸과 기자 집을 덮쳤다. 문제는 그 영장에 기재된 이른바 ‘범죄 사실’이 검찰의 망상에서 비롯한 허무맹랑하고 터무니 없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김만배와 신학림, 그리고 뉴스타파가 공모해 윤석열을 낙선시키고 이재명을 당선시키려고 허위조작보도를 했다는 식의 뉘앙스를 영장 속에 집어넣고, 심지어 신학림이 뉴스타파 대선 TF에 일하기로 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까지 기재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정황이나 사실 관계에 대해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고 검찰 손에 영장을 쥐어줬다. 그리고 다음날 검찰은 뉴스타파 뉴스룸과 기자들의 주거지를 구둣발로 짓밟았다. 세 기자의 휴대폰도 압수해 ‘윤석열 명예훼손’과 직접 관련이 없는 문자 메시지 등도 마구 뒤졌다. 필자는 2년이 다 되가는 지금도 뺏긴 휴대폰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쯤해서 법원이 공수처의 지귀연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한 사유가 뭘지 다시 생각해보자. 1,2,3번 중 아무래도 3번, 즉 영장 내용이 부실해서 기각했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작성한 압수수색영장 내용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발부해 왔기 때문이다.
앞뒤 정황으로만 보면 부장판사 지귀연의 경우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의 필요성이 상당했기 때문에 법원의 이런 이례적 영장 기각은 더욱 문제가 있어보인다. 지귀연은 지난 2월 4일 ‘희대의 셈법’으로 윤석열을 풀어준 뒤 휴대전화를 바꿨다가, 불과 3개월만인 5월 14일 유흥업소 접대 의혹이 불거지자 또 휴대폰을 바꿨다고 한다. 보통 이럴 때 증거인멸의 정황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지귀연 압수수색영장 내용과 법원의 기각 사유가 공개되면 이런 예외적 기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법원이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지귀연의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요즘 인신구속영장보다 더 무섭다고 하는 압수수색영장 제도를 인권보호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제기되고 있긴 하다. 휴대폰이 털리는 것은 한 인생이 털리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법원이 공수처의 지귀연 압수수색영장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검증한 뒤, 인권보호의 최후 보루로써 양심에 따라 압수수색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그건 인정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압수수색영장에서도 그렇게 해야 했고,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전례로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지귀연 경우에도 그랬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대법원장 조희대는 2023년 12월 5일 열린 국회인사청문회에서 압수수색 문제가 굉장히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앞으로 세심히 살펴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조 후보자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 도입과 관련해 “외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2024년 초 법원 시무식에서도 헌법상 신체의 자유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언급하며 “헌법 정신에 따라 인신구속과 압수·수색 제도를 개선하고 적정하게 운용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실체적 진실 발견을 조화롭게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또 “증거의 구조적 불균형이 불공정한 재판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증거 수집 제도를 개선해 반칙과 거짓이 용납되지 않는 법정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등 수사기관의 지나친 강제수사를 적절히 제한하기 위한 사법적 통제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조희대는 2024년 2월 17일 취임 후 첫 출입기자간담회에서도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를 언급하며 여러 안을 만들고 검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년이 다 된 지금도 압수수색영장 제도는 예전 그대로다. 그 사이 검찰은 마구잡이로 압수수색영장을 치고, 법원은 자판기 역할을 하면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언론사가 검찰에 털리고, 민감한 취재 정보가 담긴 휴대폰을 검사가 마구 뒤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대법원장 청문회 때 조희대가 공개적으로 한 약속은 국민에겐 공수표가 됐다. 하지만 같은 식구인, 또한 내란우두머리를 풀어준 판사에게는 그 약속이 따뜻하게 실행된 모양새다. 매우 민감한 정국에서 정치 일정에 개입한 대법원장,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논리로 윤석열을 풀어준 재판장, 그 재판장이 계속 윤석열 재판을 담당하는 현실, 또 그 부장판사의 유흥업소 접대의혹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백분의 일 확률로 영장도 기각해주는는 사법부가 사법부 독립을 외치는 모습은 매우 공허할 뿐만 아니라 구토까지 유발한다.
뉴스타파 김용진 muckraker@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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