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쓱크랩북] ‘이숭용 나가’ 아픔 그 1년 뒤…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감독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지난해 10월 1일, 경기 후 수원케이티위즈파크는 성난 SSG 팬들의 ‘팬심’이 한데 모여 폭발했다. 급기야 경기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선수단 버스를 막아섰다. 팬들은 ‘이숭용 나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수장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SSG 구단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SSG는 이날 KT와 5위 결정전에서 역전패하며 가을야구 진출이 좌절됐다. 막판까지 최선을 다하며 끝내 승부를 5위 결정전까지 몰아가는 데는 성공했으나 구단과 선수단, 그리고 팬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는 못했다. 시즌 내내 이숭용 SSG 감독의 경기 운영에 불만을 품었던 팬들은 이 패배 이후 폭발했다. ‘이 정도로 성을 낼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보는 시선에 따라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경기 및 선수단 운영에서 비판할 거리는 분명히 차고 넘쳤다. 구단 내부에서도 “구상했던 것과 달랐다”는 암묵적인 의식이 존재했다.
버스 안에 팬들의 분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선수단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한 베테랑 선수는 “착잡했다. 베테랑 선수 몇몇이 버스에서 내려 팬들에게 뭔가를 설명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었다. 그런데 정작 이숭용 감독은 당시 그 버스에 없었다. 사실 남자다운 성격의 이 감독은 “당당히 팬분들과 만나겠다. 직접 사과하겠다”라며 팬들 앞에 서려고 했다. 그러나 더 큰 사태를 우려한 SSG 프런트, 그리고 KT 구장 관리 직원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팬들과 마주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쪽문으로 구장을 빠져 나가는 이 감독의 마음은 착잡했다. 죄인의 심정이었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간이 지나 오프시즌 만난 이 감독은 “죄송하기도 하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 시즌이 끝난 뒤 며칠 동안은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지더라”고 했다. 야구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리고 반성을 많이 하겠다고 했다. 그저 팬들을 원망하고, 비판적인 미디어를 탓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천천히 복기했다. 그렇게 갈림길에 선 이 감독은, 자신이 옳다고 고집부리기보다는 주위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시즌이 끝난 뒤 내부 프런트 의견부터 들었다. 평소부터 소통은 즐겨 하던 이 감독이었다. 구단 내부에서도 쓴소리 한 번 했다고 삐치거나 그럴 성향의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다. 프런트 직원들도 그런 이 감독의 성향을 믿고 소신을 말했다. 선수단의 베테랑 선수들과도 미팅을 해 가감 없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미디어 등 구단 바깥사람들에게도 무엇이 부족했는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청원했다.
지난해 가고시마 마무리캠프까지도 이 감독의 ‘질문’은 계속됐다. “구단 담당을 오래 했으니 솔직하게 좀 말해달라”고 조를 정도였다.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이 감독이 부임할 당시 그렸던 청사진은 옳았다. 그러나 성적에 쫓겨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이 감독은 주전 선수들의 휴식을 통한 관리 야구,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적절히 활용하는 점진적 리모델링의 기치를 들고 부임했다. 하지만 정작 시즌 중 많은 부분에서 오류를 일으켰다. 팬들이 분노한 것은 단순히 6위에 그친 성적이 아닌, 그 약속을 왜 지키지 않았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그 약속을 지킬 자신이나 능력이 없다면 ‘나가라’는 분노였다.
이 감독은 마무리캠프 말미에 결론을 내린다. 이 감독은 “프런트나, 외부에서나 결국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당히 비슷했다”고 했다. 결국 구단이 자신을 감독에 앉힌 이유를 되새기는 게 첫 번째였다. 2025년은 초심대로 가보기로 했다. 사실 취임 선물로 외부 전력 지원을 받은 것도 없었고, 올해 역시 마땅한 보강은 없었지만 있는 전력으로도 해볼 만하다고 했다. 플로리다 캠프에서 투수들의 성장세를 지켜본 이 감독은 올해 목표를 내심 5강 그 이상으로 잡았다. 그리고 해냈다.
SSG는 9월 30일 고척 키움전에서 4-3으로 이기고 남은 경기 결과 관계없이 정규시즌 3위를 확정했다. 시즌 전 프리뷰를 생각하면 모두가 놀란 일이었다. SSG는 이렇다 할 전력 보강이 없었고, 특급 신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간 팀의 주축을 이루던 베테랑 선수들이 한 살씩을 더 먹었고, 구심점이었던 추신수까지 은퇴했다. “팀이 에이징 커브를 그릴 것”이라는 전망은 무리가 아니었다. 시즌 전 SSG를 5강 후보로 분류한 전문가는 아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내부에서도 시뮬레이션 결과는 대체적으로 비관적인 흐름을 그렸다.

설상가상으로 시즌 개막도 하기 전에 미치 화이트와 최정이라는 투·타의 핵심 선수들을 차례로 잃었고, 여기에 부상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악전고투였다. 5위를 놓고 내내 공방전을 벌였고, 후반기 시작 직후라고 할 수 있는 7월 22일에는 7위까지 떨어졌다. 이대로 시즌이 끝나는 흐름이었고, 이 감독은 시즌 뒤 재계약 없이 팀을 떠날 판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시즌 운영에서 알게 모르게 저축해온 그것들이 후반기 빛을 발하고, 여기에 전반기에 부진했던 선수들이 반등하면서 SSG는 큰 흐름을 만들었다. 이 감독은 전반기 불펜 핵심 투수들의 3연투를 극도로 자제했다. 경기 상황에 따라 연투는 어쩔 수 없었지만, 대다수 경기에서는 “나올 만했다”는 합리적인 운영을 했다. 여기에 근소하게 뒤진 상황에서도 새로운 얼굴들을 밀어붙이며 결과적으로는 성적과 선수들의 성장을 모두 잡아냈다. 여기서 건져낸 선수들은 SSG 마운드가 시즌 내내 버틸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이 됐다.
부상으로 주전 선수들의 휴식이 강제 로테이션을 돈 부분도 있지만, 트레이닝·컨디셔닝 파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시즌 내내 “트레이닝파트의 전화가 가장 두려웠다”고 혀를 내둘렀던 이 감독이다. 지난해 실패했던 체력 관리에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했고, 시즌 전부터 8월 이후 체력전에 신경을 많이 쓴 덕에 SSG는 올해 ‘여름에 고꾸라지는’ 팀의 전통적인 패턴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난해에도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쓰기는 했다. 수로 보면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유의미한 경험을 얻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러나 올해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 속에 더 적극적으로 젊은 선수들을 썼다. 그래도 1군에 한 번 올라오면 2~3경기는 선발로 나서 칠 기회를 줬고, 투수들은 믿고 과감하게 기용했다. 퓨처스팀(2군)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들었다. 박정권 퓨처스팀 감독과 전화는 일상이었다. 그 결과 1군에 자리를 잡은 선수들도 있었고, 적어도 이 선수가 1군에서 통할 만한 전력인지 견적을 낼 수 있는 과정까지 만들어냈다. 구단 프런트가 올 시즌 이 감독의 운영에서 가장 인정하는 부분이다.

팀 성적이 상승세를 그리기 시작하자 구단도 8월부터 이 감독과 연장 계약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운영이나 경기 전략에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장 출신으로 구단 운영 전반을 이해하며 프런트와 소통이 좋고, 여기에 피드백을 받고 감독으로 쑥쑥 성장하는 모습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런 성향이 변하지 않고 현재의 흐름을 계속 이어 갈 수 있는 감독으로 봤다. 남자답기는 하지만, 지도자로서는 제왕적 스타일과 애당초 거리가 멀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 9월 3일 계약 기간 2+1년 총액 18억 원(계약금 3억 원·연봉 총액 12억 원)에 연장 계약을 했다. 시즌 막판 성적에 신경을 쓰면 오히려 장기적인 그림을 다시 놓칠 수 있는 만큼, 지금의 기조를 계속 이어 갈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이다. 성적은 물론 청라 시대로 가는 주춧돌을 만들기를 바랐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 아님에도 과감하게 베팅했다. 구단도 상당한 위험 부담을 떠안은 것이었는데 웬만한 긍정적 평가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결과도 만족스럽다. 이 감독 스스로도 “시즌 중 재계약이 팀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걱정됐다”고 했지만, SSG는 이 감독의 재계약이 결정된 9월 3일 이후 13승5패(.722)라는 파죽지세를 탔다. 이 기간 성적으로는 리그 1위다. 재계약이 오히려 팀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SSG는 3위를 확정했고, 이제 포스트시즌 복귀를 확정한 채 마지막 승부를 기다린다. 딱 1년 전 '이숭용 나가'를 외쳤던 팬들도 이제는 조금은 더 따뜻한 시선으로 경기를 바라보고 있다.
리그를 대표하는, 우승 경력이 많은 명장들은 그 경력을 만든 자신만의 확고한 지론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단단하다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으나, 위기에 몰렸을 때 사람과 운영 스타일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이 감독은 지금까지는 그런 덫을 잘 피하며 임기 2년을 보냈다. 선수의 능력과 마찬가지로 지도자의 능력도 섣불리 재단할 필요는 없으며, 충분히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 원동력은 ‘말하는 능력’이나 ‘천재적 전략’이 아닌, ‘듣는 능력’과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는’ 용기였다. 이 초심을 잊지 않는다면, 남은 2+1년 계약은 물론 앞으로의 지도자 경력도 비교적 수월하게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SSG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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