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침팬지의 친구’ 제인 구달, 91세로 별세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5. 10. 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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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들의 영원한 친구이자 엄마, 20세기 과학계의 거목 제인 구달 박사가 1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제인구달 연구소는 이날 구달 박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강연 투어 도중 별세했다고 밝혔다.

그곳에서 만난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는 구달의 열정과 관찰력을 알아보고 탄자니아 곰비 국립공원에서 침팬지를 연구해보라고 제안했다.

구달 박사의 연구 방식은 기존 과학계의 관행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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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에 아프리카로 떠난 연구자
‘인간만 도구 쓴다’ 통념 깨뜨려
침팬지에 이름 붙여주며 교류
동물 행동 연구에 새 지평 열어
지난 2019년 우간다 침팬지 보호소에 방문한 제인 구달 박사 [AFP 연합뉴스]
침팬지들의 영원한 친구이자 엄마, 20세기 과학계의 거목 제인 구달 박사가 1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제인구달 연구소는 이날 구달 박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강연 투어 도중 별세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류가 아닌 다른 동물이 도구를 사용하고 복잡한 사회를 이루며, 심지어 전쟁까지 벌인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과학자다.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구달 박사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동물을 사랑했다. 아버지가 선물한 침팬지 인형 ‘주빌리’를 평생 아꼈고, ‘타잔’의 연인 제인을 동경하며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꿈꿨다.

대학 학위도 없던 그는 비서 학교 과정을 마친 뒤 런던의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1956년 케냐의 친구 농장을 방문하며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곳에서 만난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는 구달의 열정과 관찰력을 알아보고 탄자니아 곰비 국립공원에서 침팬지를 연구해보라고 제안했다. .

1960년 7월, 26세의 구달은 어머니와 함께 곰비의 원시림에 들어섰다. 그의 연구는 시작부터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도착 3개월 만에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고 이름 붙인 침팬지가 흰개미를 사냥하기 위해 풀줄기를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의 과학적 기여도를 인정한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학부 학위가 없던 그를 1961년 박사 과정에 받아들였다.

구달 박사의 연구 방식은 기존 과학계의 관행을 깼다. 그는 연구 대상을 숫자로 부르던 관례 대신 ‘플로’, ‘피피’ 등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며 침팬지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이를 통해 침팬지들이 고기를 먹고, 모계 중심의 복잡한 사회를 이루며, 서로 다른 집단 간에 조직적인 전쟁까지 벌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의 연구는 동물의 행동과 감정을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새로운 시도였고, 동물행동학 분야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의 연구를 “서구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적 성취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연구자의 길을 넘어 환경보호운동가로
“희망의 씨앗 심겠다” 평생 헌신
마지막까지 “나는 싸우다 죽을 것”
여성 과학자들의 ‘롤모델’ 되기도
1974년 1월 제인 구달(오른쪽)과 그의 남편.[AP 연합뉴스]
이후 구달 박사의 발견은 기사와 책,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특히 1965년 미국 CBS 방송의 ‘미스 구달과 침팬지의 세계’는 그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아름답지만 위험이 도사린 곰비의 자연과 그 안에서 침팬지와 교감하는 그의 모습은 대중을 움직였다.

그는 남성 중심적이던 과학계에 여성이 설 자리를 열어준 선구자이기도 했다. 다이앤 포시(고릴라), 비루테 갈디카스(오랑우탄) 등 수많은 여성 영장류학자들이 그의 뒤를 이었다.

1970년대 들어 구달 박사는 연구자의 길을 넘어 환경 보호 운동가로 변신했다. 서식지 파괴와 밀렵으로 고통받는 침팬지들을 보며 더 이상 관찰자로만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977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해 야생동물 연구와 보존 활동에 나섰다. 1991년에는 청소년 환경운동 프로그램인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을 시작했다.

그는 80세가 넘은 나이까지 1년에 300일 이상 전 세계를 돌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중에는 ‘희망캐스트’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멈추지 않았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유엔 평화대사로 임명됐고, 2003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데임 작위를 받았다. 올해 1월에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에게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싸우다 죽을 것”이라고 외치던 구달 박사는 지난 2021년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은퇴계획이 없고, 향후 최소 10년간은 더 현장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생의 열정이 가득한 것과는 반대로 죽음 앞에서는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저는 영원히 살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이 그러하듯 110살까지 살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저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제가 일할 수 있는 한 오래 살고 싶습니다.죽음은 언젠가 찾아올 겁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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