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피프티’ 유튜버 한동훈, 정치 대신 골드 버튼을 향해 매진하길[위근우의 리플레이]

한동훈 국민의힘 전 당대표는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VS 월드컵’ 하는 것을 좋아한다. 3개월 전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한국 영화들을 대상으로 ‘VS 월드컵’을 진행했고, 최근에는 축구 미드필더와 영화 속 악역으로 치르는 월드컵을 예고했다. 스티브 제라드, 로테어 마테우스, 아야 투레 등 다양한 스타일의 미드필더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나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여기서 조커를 굳이 꼽지 않는 것에서 어떤 종류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등의 목록을 나열하는 그는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그런 그에게 이런 ‘VS 월드컵’도 제안하고 싶다. ‘유튜브 다이아몬드 버튼 VS 국민의힘 대선 후보’, 혹은 ‘유튜브 채널 폭파 VS 정계 은퇴’. 냉소가 아니라 그는 정말 유튜브에서 ‘라방’을 하고 자신의 팬들과 소통하며 문화적 취향을 전시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이고 상대적으로 정치할 때보단 재능도 있어 보인다. 다만 최근 선보인 치킨 배달 영상에 대한 “여의도 떠나면 더 화제된다”(한국경제)는 식의 정치적 평가에는 별로 동의하기 어렵다. 그는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인간적 매력도 있는 보수 엘리트 왕자님 역할을 수행하려는 듯하지만, 정작 유튜버 한동훈의 재미와 그가 시도 중인 유튜브 정치는 완전히 따로 놀기 때문이다.
한동훈의 콘텐츠는 ‘영 피프티’ 스타일이다. 젊은 시절 X세대로 분류되어 문화적 자유주의와 IMF 사태 이전의 소비문화를 누리고, 나이 들어 경제적 사회적 기득권이 되고도 자유로운 개인으로 보이고 싶은 50대 남성. 10년 전 딱 이들을 호칭한 ‘영 포티’가 등장한 이후부터 지난해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가 ‘영 피프티’란 말을 쓴 현재까지 해당 개념은 젊은 세대에게 온당한 비웃음을 사고 있지만, 한동훈을 폄훼하기 위해 ‘영 피프티’란 말을 쓴 건 아니다. 그보단 그가 전시하는 문화적 경험과 그로써 구현하는 자기 이미지의 전형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유튜브 ‘라방’ 강점에 대해 1시간이 넘도록 오디오가 비지 않더라는 구독자의 의견을 전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정치 현안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재즈나 록 뮤지션에 대해 소개하고 다시 정치 얘기를 하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 목록을 읊기 시작한다. 명백한 그의 상위호환인 배우 이서진이 나영석의 콘텐츠에서 젊을 적 경험담과 엮어 아이언메이든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얘기를 신나게 떠들 때와 비교하면 활력은 떨어지지만 한동훈도 자기만의 위키백과를 펼쳐 늘어놓는 재주가 있다. 이 목록엔 전영혁부터 독일 타이거 전차까지, 라이언 긱스부터 필립 셰이무어 호프만까지 꽤 다양한 이름이 있다. 이것이 ‘영 피프티’의 전형성이다. X세대 시절엔 유연한 분위기에서 문화 콘텐츠를 즐기고 2000년대부턴 주도적으로 온라인 게시판 문화를 통해 논평을 곁들인 다양한 취향의 목록을 경쟁적으로 교환하고 중년 이후에도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여가를 즐기는 이들 세대가 문화적 혜택을 받은 건 사실이며 그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하다. 이 과시욕은 어딜 향할 것인가. ‘영 피프티’가 비호감이 되느냐 마느냐는 여기서 갈린다. 네이버 지식in 고수가 될 것인가, 젊은 척 잘난 척하는 부장님이 될 것인가.

실버 버튼 유튜버이자 정치인으로서의 한동훈이 오락가락하는 건 이 지점이다. 그가 3개월 전 시도한 고민상담소 ‘라방’ 역시 형식적으로는 그린 듯한 ‘영 피프티’ 콘텐츠다. 엘리트 중장년 정치인 남성이 친근한 카운슬러를 자처하며 소통을 시도하는 것만큼 수요 없는 공급도 없을 게다. 하지만 본인의 팬덤을 대상으로 한 그의 상담소는 수요가 있었고 한동훈도 꽤 열심히 답을 했다. 그 미감이 꼴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뿐, 구독자와 유튜버의 화기애애한 소통을 굳이 찾아 비난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가 스스로 인정하듯 정치인이며 심지어 한때는 집권 여당의 당대표에도 올랐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가 본인 채널에서 연출하는 모습들은 매우 사적인 순간조차 이미지 정치의 맥락 안에 있으며 딱히 의도를 숨기지도 않는다. 안타깝게도, 취향의 전시장으로서 그럭저럭 봐줄만했던 한동훈 식 ‘영 피프티’ 정서는 젊고 세련된 감각의 50대 정치인을 어필하는 정치적 미감의 차원에선 한없이 삐걱댄다. 마치 지난 대선 당시 “서태지처럼 시대를 바꾸는 대통령”을 천명하거나 아이앱 스튜디오 후드티를 입고 자연스러운 척하던 모습처럼. 애초에 좁은 팬덤형 기획인 고민상담소라는 포맷에 그 바깥을 향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건 형식과 내용의 부조화를 일으킨다. 가령 홈플러스 기업 회생 사태에 대한 고민에 대해선 안타까워하는 제스처만 남기던 그는, 뒤이어 홈플러스에 입점한 자영업자들이 민생 소비쿠폰 대상이 아니라는 사연에 대해선 열심히 이재명 정권을 비판했다. 지지자와의 팬미팅이면 그 정도로도 충분하겠지만, 명석함과 공감 능력의 조화를 내내 연출하려던 그가 정작 명백히 정치가 경제에 개입해야 할 문제에선 침묵하고 MBK 파트너스 대신 정부만 공격하는 건 맥이 빠진다. 고민상담소라는 형식으로 강조하고 싶었던 엘리트임에도 인간적인 모습 대신 정치적 유불리를 위해 남의 사연을 파는 조잡한 인상만 남긴 셈이다.
최근의 치킨 배달 영상이 언론의 일회적 관심과 일부 지지자들의 성원을 받는 것과 별개로 한동훈의 유튜브 정치 행보가 계속 외곽에서 변죽만 울리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본인의 ‘라방’ 정치에 대한 당 내 우려를 전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이 ‘본캐’라면 뜬금 없는 ‘라방’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건 ‘부캐’이고, 둘 사이의 싱크로율이 높은 편이라 자신했다. 완전한 착각 혹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그가 지난 7월 말 국민의힘 당대표 불출마 선언을 하고 이틀 뒤 유튜브 실버 버튼 언박싱 영상을 게재한 건 매우 상징적이다. 마키아벨리를 인용하며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 정치적 토론의 힘을 얘기하는 유튜버 한동훈은 그럭저럭 명민하고 세련되어 보일지라도, 정작 그 갈등의 무대인 여의도 정치는 회피하며 자기 이미지만 방어하는 중이다. 치킨 배달 영상을 통해 배달 수수료에 신음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전하노라 자평하지만, 정작 국민의힘 당대표 시절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촉구 100일 긴급 공동행동의 면담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 관리자로서 해야 할 의무는 다하지 않고 격의 없이 소통하는 이미지만 추구해서 싫다는 젊은이들의 ‘영 피프티’ 비판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어느 길이든 쉽진 않겠지만, 중앙 정치의 패권 대신 유튜브 골드 버튼을 향해 매진하는 게 한동훈에게 더 어울리는 길처럼 보이는 건 그래서다. 언젠가 짱 센 한동훈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구태들을 다 패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팬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한동훈이 유튜브를 통해 추구하는 마냥 산뜻해 보이지만 실은 엄청난 힘을 숨긴 ‘영 피프티’ 정치인의 모습은 지금처럼 외곽에서 변죽을 최대한 시끄럽게 울리는 방식으로만 유지할 수 있다. 모르는 척 장단만 맞춰준다면 한동훈도 쓸데없는 허세는 줄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록밴드 얘기나 하며 서로 만족하며 소일할 수 있을 것이다. 코미디언 리키 저베이스의 독설 가득한 풍자를 좋아한다던 여유 있는 중년 남자 한동훈과 ‘윤석열차’의 풍자를 혐오의 확산으로 우려하던 법무부장관 한동훈 사이의 삐걱대는 모순도 대충 뭉갤 수 있다. 지지자 아닌 이들도 마이클 조던과 코비, 티맥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현대의 3점 농구가 재미없다는 흔한 꼰대적 발언에 대해서도 즐거이 논쟁해 줄 수 있다. 단언컨대, 전업 유튜버가 되는 길이야말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정치인 한동훈의 가장 훌륭한 정치적 결단이 되리라. 높은 확률로 본인 행복을 위해서도.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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