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AI가 만드는 6가지 가상경험
2000년대 초 필자는 정보통신(IT) 기술이 만들어내는 가상경험을 경험 대상의 속성(유사신빙성·인공성)과 경험 영역(물리적·사회적·자아)의 조합으로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분류 체계는 향후 인공지능(AI)이 제공할 다양한 가상경험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현명하게 이용하도록 돕는 안내서가 될 수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먼저 세 가지 유형만 다루고, 다음 칼럼에서 나머지 세 유형을 이어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가상경험 유형은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이나 객체를 디지털 기술로 체험하는 ‘유사신빙적(Para-Authentic) 물리 경험’이다. 구글 어스로 어린 시절 살던 집을 찾아보거나, 가상현실(VR)로 이사 갈 집을 미리 둘러보는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이 기술은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거울에 머물렀다. 하지만 AI는 이 거울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예컨대 현재 싱가포르·서울 등 세계 여러 도시는 항공사진과 정밀 측량 등을 활용해 도시 전체를 ‘디지털 트윈화’하고 여기에 교통 등 실시간 데이터를 연계해 흐름을 예측함으로써 응급차량 운행, 자율주행, 교통 인프라 운영의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가상세계가 더 이상 현실의 과거를 담는 기록 보관소가 아니라 현실의 미래를 바꾸는 제어판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흐름이다. 수동적 반영에서 능동적 미래 예측으로의 전환, 이것이 AI가 가져올 변화다.
두 번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나 객체를 창조해 경험하는 ‘인공적(Artificial) 물리 경험’이다. 판타지 게임 속 마법의 숲이나 영화 속 외계 행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 이러한 세계의 창조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을 가진 할리우드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이제 생성형 AI는 누구나 상상 속 세계의 건축가이자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구글이나 오픈AI 등에서 제공하는 물리 기반 AI 동영상 생성기는 “중력이 지구의 절반인 행성에 수정으로 된 숲”과 같은 텍스트 설명만으로 물리 법칙이 작동하는 3D 세계를 즉시 구현해낼 수 있다.
세 번째 경험은 화상회의나 온라인 수업처럼 기술을 매개로 실제 사람들과 소통하는 ‘유사신빙적 사회 경험’이다. 팬데믹 이후 일상이 된 이 방식은 편리함 이면에 감정적 교류의 한계라는 약점을 드러냈다. 현재 많은 화상회의 솔루션 업체들은 AI를 통해 회의 중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음성 톤을 실시간 분석해 2D 화면에서 놓치기 쉬운 감정적 맥락을 보완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 스마트글라스 등에 탑재된 AI는 실시간 언어 통역은 물론 사용자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상대의 제스처와 표현을 실시간 해독해 전달함으로써 다양한 문화적 배경 간 의사소통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언어적 신호의 오해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을 목격한다. AI로 증강된 의사소통이 때로는 실제 대면 소통보다 더 진정성 있는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네 번째 경험 유형은 AI 에이전트나 가상 캐릭터와 관계를 맺는 ‘인공적 사회 경험’입니다. 이 유형과 나머지 매우 중요한 두 유형 -‘유사신빙적 자아 경험’과 ‘인공적 자아 경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예시는 다음 칼럼에서 이어가겠다.

이관민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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