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청양군 명예군수 "내 고향 청양 미래 발전 위해 평생 봉사 이어가겠습니다"

윤양수 국장 2025. 10. 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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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병권 청양군 명예군수
1938년 청양 비봉면 사점리서 태어나
가난 속 성장하며 고향 위해 헌신 다짐
1987년 비봉면 명예면장으로 첫 임명
노인회관·소방대기소 신축 지원 나서
2013년 청양군 초대 명예군수로 위촉
청곡장학회 통해 꾸준히 장학금 기부
서울서도 늘 고향 청양 향한 마음 지켜

[충청투데이 윤양수 국장] "내 삶의 중심은 언제나 청양으로 향한다"

유병권 청양군 명예군수는 언제나 고향을 이렇게 말한다. 그는 1938년 충남 청양군 비봉면 사점리에서 태어나 가난과 불편함이 일상인 시절을 보냈다. 그는 그러한 기억을 부끄러움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고향 발전에 헌신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바꾸었다.

그는 늘 말했다. "고향이 잘 살아야 나도 당당해진다. 청양이 발전해야 제가 세상에 나와 일군 성취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다짐은 평생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1987년 그는 비봉면 명예면장으로 임명됐다. 많은 이들이 '명예직은 허울뿐'이라 생각하던 때였지만 그는 달랐다. 마을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챙기며 아이들의 학비를 보탰다. 주민들은 "집안일까지 살펴주는 친형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는 그렇게 지금까지 명예면장을 지키며 노인회관과 소방대기소 신축을 지원했고 작은 도서관을 마련해 아이들에게 책 읽을 공간을 선물했다. 그는 봉사를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내가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일"이라 정의했다.

2013년에는 마침내 청양군 초대 명예군수로 위촉됐다. 그러나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여섯 번의 거절이 있었다. "봉사는 직함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향 원로들은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군 전체를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간곡히 설득했다. 결국 그는 일곱 번째 요청 끝에 수락했고 "명예라는 말은 곧 책임"이라 다짐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군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큰 각오를 품었다. 그의 봉사 가운데 가장 빛나는 영역은 교육과 장학이다. 그는 가남초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내놓았고 청곡장학회를 설립해 20년 넘게 지원을 이어왔다. 2015년에는 10억 원을 청양사랑인재육성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이 장학금은 상가 임대 수익과 이자로 운영돼 2022년 말까지 328명의 학생에게 1억 4천만 원이 넘는 지원이 돌아갔다. 그는 장학금을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미래를 키우는 투자"라고 했다. 실제로 그의 지원을 받은 학생 가운데는 대학 교수가 된 이도 있고 지역에서 의료인과 교육자로 성장해 다시 고향에 기여하는 이들도 있다. 그의 나눔은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전국적 무대에서도 그는 활약했다.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1986년 아시안게임 자원봉사실장, 1988년 서울올림픽 준비 대의원으로 참여했고 각종 국가 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또 30년 넘게 청소년 선도위원회와 범죄예방위원으로 일하며 보호관찰 청소년을 돕고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손을 내밀었다. 이러한 활동으로 국민훈장을 비롯해 법무부장관상, 검찰총장상, 서울시장상, 그리고 '군민대상 애향부문'(2002), '자랑스러운 충남인상'(2022)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상보다 중요한 건 나눔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그의 고향사랑은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2023년 1월 그는 청양군 고향사랑기부제의 첫 번째 고액 기부자가 됐다. 500만 원을 기부하고 답례품으로 받은 쌀 150만 원 상당을 다시 지역 아동센터와 유치원에 기부했다. 2024년에도 같은 금액을 기부해 충남장애인부모회 청양지회와 아동·청소년을 지원했으며 모교인 가남초에도 500만 원을 내놓았다. 2025년 3월에는 무려 1천만 원을 기부하며 3년 연속 고액 기부자로 이름을 올렸고 답례품으로 받은 청양사랑상품권 전액을 지역 단체에 나눴다. 그해 7월에는 경로당 무상급식 지정 기부로 200만 원을 보태며 어르신들의 복지를 챙겼다.

그에게 고향은 단순한 땅이 아니다. 그는 고향을 "어머니이며 형제이며 이웃이고 결국 나 자신"이라 말했다. "고향은 곧 가족이다. 함께 울고 웃으며 살던 이들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저는 고향을 제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며 분주하게 살았지만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건 늘 청양이었다. "고향에는 불가항력적인 힘이 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결국 돌아오게 된다" 그의 삶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신의와 배려다.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성공도 없다. 남을 이용하는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일수록 공동체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늘 '수구초심'을 입에 올렸다. "여우가 죽을 때 고향을 바라보듯 사람도 결국 고향을 향한다. 저는 지금 서울에 있지만 제 마음은 늘 청양에 있다. 앞으로도 고향을 위해 봉사할 것이다"

군민들은 그를 '기부왕', '날개 없는 천사', '청양의 지킴이'라 부른다. 노인들은 "마을의 든든한 버팀목"이라 칭했고 청년들은 "장학금 덕분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꿔준 은인이다. 그러나 청양 전체에는 의심할 여지 없는 버팀목으로 자리한다.

유병권 명예군수의 삶은 화려한 수상 경력보다 '고향은 곧 가족'이라는 신념으로 더욱 빛난다.

그의 고향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평생을 관통한 실천이자 철학이었다. 청양의 발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언제나 유병권 명예군수의 발자취가 함께할 것이다. 그의 삶은 청양군민에게 희망의 불씨이자 후세가 본받아야 할 귀한 길잡이다.

[고향을 품은 삶, 청양을 지킨 사람 - 유병권 명예군수에게서 배운다]

고향을 떠난 이가 다시 고향을 찾는다는 말은 흔하다. 그러나 평생 고향을 마음에 품고 그 발전을 위해 스스로를 내어놓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다. 유병권 청양군 명예군수의 삶은 바로 그 드문 예외다. 그는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사회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일군 뒤에도 고향을 잊지 않았다.

오히려 고향을 향한 책임감을 더 크게 품었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명예면장에서 명예군수에 이르기까지 그는 명예를 상징이 아니라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여섯 번 거절 끝에 맡은 자리에서 그는 봉사의 무게를 더 크게 짊어졌다. 그가 이어온 장학 사업과 기부 활동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다. 그것은 청양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만드는 힘이다. 장학금 덕분에 학업을 이어간 학생이 자라서 다시 고향을 돕고 도움받은 청소년이 자립하여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은 그가 보여준 나눔의 선순환을 증명한다. 유 명예군수의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봉사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고향을 책임지는 태도'다. 고향을 떠나도 마음은 돌아온다는 건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 마음을 구체적 행동으로 옮겨 평생을 실천했다.

그가 보여준 헌신은 청양을 넘어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지방 소멸 위기가 걱정되는 오늘날 그의 발자취는 더욱 귀한 교훈을 남긴다. 지역을 살리는 힘은 정책이나 제도만이 아니라 고향을 가족처럼 여기며 책임지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청양=윤양수 기자 root5858@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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