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추석 밥상, 농촌이 건네는 가장 따뜻한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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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한 해의 수고가 밥상으로 모이는 시간이다.
몸이 알아듣는 언어는 화려함이 아니라 단순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해마다 추석상 앞에서 확인한다.
올해 추석, 우리의 밥상은 한 해 농사의 결실이자 내일을 준비하는 처방전이다.
한 숟갈 뜨는 순간,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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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한 해의 수고가 밥상으로 모이는 시간이다. 햅쌀의 윤기, 들기름에 번진 나물 향, 장맛이 살아 있는 국 한 그릇이 몸을 덥히고 마음을 누인다. 이 위로를 나는 농촌이 건네는 치유라 부르고 싶다. 치유는 생활의 온도에서 자란다. 땅의 리듬에 맞춰 먹고, 함께 손을 맞대어 나누는 순간 이미 회복은 시작된다. 음식은 배를 채우기 전에 사람을 먼저 모아 앉힌다. 그 모임이 공동체의 맥박을 다시 고르게 한다.
추석 밥상은 먼저 몸의 균형을 다시 세운다. 제철 원물을 단출하게 조리 한 끼는 과식을 부르는 자극 대신 '제때·제맛'을 되돌려 준다. 오래 숙성된 장과 발효의 지혜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필요한 것을 남긴다. 농업의 시간표가 우리 몸의 시계를 맞추는 방식이다. 며칠만 이렇게 먹어도 수면과 소화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몸이 알아듣는 언어는 화려함이 아니라 단순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해마다 추석상 앞에서 확인한다. 음식은 약이 아니어도, 좋은 습관이 되어 조용히 작동한다.
추석 밥상은 관계의 체온도 회복한다. 송편을 빚으며 안부를 묻고, 나물을 다듬으며 지난 계절을 이야기한다. 식탁은 가장 작은 공동체이자 가장 강력한 돌봄의 현장이다. 혼자 먹는 끼니가 늘어난 시대일수록 함께 만든 한 끼의 온기는 더 멀리 간다. 아이는 반죽을 밀고 어른은 모양을 잡는다. 모양이 조금 비뚤어도 괜찮다. 모난 시간을 둥글게 빚는 그 과정이 이미 치유다.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그 손놀림이 신뢰를 만든다. 그리고 추석 밥상은 지역을 살리는 경제가 된다. 농부의 손을 거친 원물이 가공·외식·관광과 이어지면 한 그릇의 가치가 마을의 소득이 된다. 로컬푸드 직매장과 마을부엌(공동부엌), 학교급식과 복지관의 밥상이 한 줄로 이어질 때 농업의 공익은 숫자 너머의 체감으로 돌아온다. 명절에만 반짝이지 않게, 지역 식당은 제철 재료로 '한 접시'를 꾸미고, 학교와 기업은 '로컬 점심'을 선택해 지역의 맥박을 고르게 하자. 농업·보건·복지가 연결될 때 선순환은 더욱 견고해진다.
명절이 지나면 일상의 치유로 이어가자. 그 주간만큼은 집집마다 '회복의 상'을 차려보자. 염과 당을 낮추고 제철 채소 한 가지라도 직접 손질해 밥과 국에 곁들인다. 마을부엌이 문을 열면 세대가 함께 도마 앞에 나란히 서고, 직장은 점심 한 끼만이라도 지역 재료로 꾸민 '쉼의 식탁'을 마련하자. 중요한 건 화려한 메뉴가 아니라 로컬·제철·단순이라는 원칙,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마음이다.
정책과 제도도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 지자체는 원산지·알레르기·염·당정보를 표준화해 신뢰를 높이고, 보건·복지와 연계해 명절 전후 '회복 주간'을 운영하면 좋겠다. 현장은 프로그램마다 간단한 사전·사후 기록을 남겨 효과를 정직하게 보여주자. 데이터가 쌓이면 치유는 취향을 넘어 근거가 되고, 근거가 모이면 산업이 된다. 무엇보다 현장의 수고가 제값을 받도록 조리와 돌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제도에 담기길 바란다. 그렇게 공공 조달과 교육 급식의 기준이 바뀌면 시장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올해 추석, 우리의 밥상은 한 해 농사의 결실이자 내일을 준비하는 처방전이다. 한 숟갈 뜨는 순간,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단단해진다. 치유는 멀리 있지 않다. 밥 짓는 냄새가 퍼지는 바로 그곳, 농촌의 시간과 우리의 식탁 사이에 있다. 이 명절, 회복의 시작을 우리 집 밥상에서 조용히 열어보자.
고은주 농협 안성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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