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은 ‘ㅸ·ㆆ’ 고어…인니 찌아찌아족 설화집서 되살아난다

한글을 표기 문자로 도입한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술라웨시 섬 남쪽 끝 바톤 섬의 바우바우시에 사는 찌아찌아 부족 9만3000여명은 고유의 말을 쓰지만 그 말을 표기할 자체 문자는 가지고 있지 않은데, 지난 2009년 부족장 회의를 거쳐 한글을 부족의 문자 체계로 도입하기로 했다. 그 뒤 한국에서 파견된 교사와 한국 연수를 거친 현지인 교사 등이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거리 표지판에도 한글이 쓰이는 등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은 세계적으로도 화제를 모아 뉴욕타임스 등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한글과 한국어 교육을 위해 현지에 설립했던 세종학당이 이듬해 철수하고 인도네시아 안에서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이 중앙 정부의 언어 정책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등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은 위기와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찌아찌아족의 설화와 민담을 한글로 표기한 책 ‘찌아찌아 민속 설화집’ 원고가 완성되어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바우바우시의 찌아찌아 훈민정음 학당을 이끌고 있는 우충환 학당장은 오는 15일 서울 연세대에서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심상옥) 주최로 열리는 제11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 이 책 출간을 중심으로 ‘찌아찌아 한글 보급의 현황과 의미’라는 주제로 발표를 할 예정이다. 우 학당장은 해군사관학교와 경남대 영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자문관을 지냈으며 2022년부터 찌아찌아 훈민정음 학당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30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우 학당장은 “설화·민담집 출간에 이어 한글 작문 교재도 올해 안에 출간할 예정이고, 한국 쪽에서 지원하는 찌아찌아 문화회관 건립 역시 엠오유(MOU,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부지를 확정하는 등 찌아찌아족에 대한 한글 보급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현황을 전했다.
“2009년부터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을 지원해 온 원암문화재단(이사장 이기남)이 2022년 8월 현지에 찌아찌아 훈민정음 학당을 설립하면서 제가 학당장으로 부임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어가 유창한 현지 교사 세명이 1주일에 두번, 초등학생 30~40명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고, 교육 대상을 중고교생들로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 중입니다. 더 나아가 지금은 방과후 수업 형태로 이루어지는 한글 교육을 정규 과정에 넣기 위해 노력 중이고요.”

2009년부터 찌아찌아족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현지 교사 아비딘, 그리고 2010년에 합류한 알리와 라시드는 모두 한국에서 한글 교육 연수를 받았다. 이들은 2023년 원암문화재단이 제정한 원암문해상 제1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 학당장은 “원암문화재단이 급여를 제공하는 이들 세명의 현지 교사에 더해 지금도 20여명이 찌아찌아 한글 교사 연수를 받고 있는 등 현지 교사를 늘릴 계획”이라며 “최근 한류 붐을 타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한글을 배우려는 이들도 늘고 있어서 현지 교사 추가 확보 전망은 매우 밝다”고 전했다.
‘찌아찌아 민속 설화집’을 엮은 이 역시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의 선구자로 불리는 현지 교사 아비딘이다. 이 책에는 찌아찌아 부족 사이에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 10편이 실렸다. ‘원숭이와 거북이 이야기’ ‘라 만도 만도’ ‘하즈를 닮은 악마’ 등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동물을 의인화해 권선징악의 주제를 전하거나 공동체의 연대를 통한 질서 회복 과정을 그리는 등의 교훈을 담고 있다. 170쪽 남짓한 책은 찌아찌아 한글과 영어, 한국어의 세 언어로 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찌아찌아 한글’에는 우리 고어에 있었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 순경음비읍(ㅸ)과 여린히읗(ㆆ), 쌍리을(ᄙ) 같은 자음들이 쓰인다는 사실이다. 책은 500부가 발행되어 학생들과 영향력 있는 주민들, 한국에 관심 있는 현지인들에게 고루 배포되고 한글 교육에 쓰일 예정이다. 우 학당장은 “이번 책 출간을 통해 찌아찌아족이 부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역사와 문화를 후대에 전하는 한편, 무문자 언어의 보존을 위한 국제적 모델로서 한글의 과학성과 보편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단절이 오기도 했지만, 초기에 세종학당이 들어왔다가 철수하는 등의 우여곡절에 대해 현지인들도 많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세종학당이 꼭 사람이 몰리는 대도시만 지원할 게 아니라 바우바우의 찌아찌아족 마을처럼 작고 외지지만 전략적 중요성이 큰 곳도 지원했으면 합니다.”
한편, 14일 개막해 17일까지 이어지는 세계한글작가대회에는 국내외 문인과 한글 전문가, 해외 동포 작가, 번역가, 유학생 등 1천여명이 참가한다. 행사에서는 도종환 시인과 배우이자 작가인 차인표씨의 기조강연, 한글학자인 알브레히트 후베 독일 본대학 명예교수와 한글학자이자 방송인인 정재환씨의 특별강연,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과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등의 주제 발표, 광복 80주년 기념 시 낭송 등이 이어진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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