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구마 굽기

고구마를 굽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화요일 아침 수업에 다소 일찍 오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 학생들에게 줄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따뜻한 고구마 한 알이 떠올랐다. 말없이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묵묵히 책을 읽거나 발표 준비를 하는 학생들에게 달콤하고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싶었달까? 또 대학원 수업 중 쉬는 시간에 나눠 먹을 주전부리로도 군고구마는 손색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고구마 굽기는 하루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아침 6시30분, 반려견 테리와 함께 학교를 한 바퀴 돈다. 4킬로미터쯤 달리고 연구실에 들러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넣는다. 다시 달려 집으로 돌아가 씻고 준비한다. 8시쯤 다시 연구실로 들어오면 온도를 조금 낮춰 2차 굽기를 한다. 연구실의 에어프라이어는 작은 것이라 최대 설정 시간이 30분으로 짧다. 익숙해지면 30분씩 설정하고 그에 맞춰 조정하는 것에도 불편은 없다.
고구마 굽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180도로 30분, 뒤집어서 10분 더 구워요"라며 고구마 굽기의 정답을 알려주곤 한다. 또 어떤 이는 "처음에 150도로 15분, 그다음 190도로 20분이 진짜 꿀맛이래요." 고구마를 미리 냉장고에 넣었다 꺼내 굽는 게 낫다는 사람, 물에 담갔다가 굽는 게 좋다는 사람, 종이호일 대신 전용 보관용기에 넣어두어야 껍질이 덜 마른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트 고구마와 텃밭 고구마는 수분 함량이 달라 굽는 법도 달라진다고도 했다.
여러 시도 끝에 깨달은 한 가지 원리! 사실, 위의 모든 방법에도 이 원리는 숨어 있다. 고구마는 그리 높지 않은 온도에서 오래 구워야 한다는 것. 빠른 불은 속을 설익게 하고 겉만 타게 한다. 겉은 멀쩡한 듯 보여도 한입 베어 물면 냉기가 도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다. 기다림과 낮은 온도, 고요한 시간이야말로 고구마를 진짜 달게 만드는 비결이었다.
숨은 원리는 이랬다. 고구마의 주요 성분은 전분이다. 전분의 단맛은 '말토스'라는 당에서 비롯되는데 이 말토스는 베타아밀라아제라는 효소가 전분을 분해할 때 생성된다. 이 효소가 활발히 작동되기 위해서는 고온보다는 다소 낮은 온도가 좋다. 그래서 고구마를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히면 전분이 충분히 당으로 바뀔 시간을 확보하게 되고 그 결과 훨씬 더 달콤한 군고구마가 완성된다.
고구마 굽는 일은 '교육'과 많이 닮았다. 학생들은 때로 겉은 괜찮아 보여도 속은 아직 익지 않은 마음일 수 있다. 하루 이틀로 바뀌지 않을 뿐 아니라 높은 점수나 빠른 성과로 측정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익어가는 시간. 그것을 기다릴 줄 아는 교사의 마음이 필요하다. 눈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 학생들이 멈춰 있는 듯 보이는 날들. 그 모든 시간은 '익어가는 중'이라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대학원생들도 자주 조급해진다. 졸업, 진로, 논문, 실적. 누군가는 앞서가는 것 같고, 나는 제자리인 것 같고, 논문은 완성할 수 있을지, 심사에 통과는 할 수 있을지,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은 더 불안하고 힘이 든다. 그런 이들에게 '고구마를 익히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속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무르익고 있음을 믿고 기다리는 것. 말보다 중요한 건 바로 그 기다림의 온도다.
프로젝트로, 강의로, 연구로 강의실과 연구실은 바쁜 전선이지만, 이른 아침 고구마 향이 가득할 때만큼은 따뜻한 부엌 같다.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이 우리를 먹이고 그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듯, 이른 아침의 작은 수고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위로를 건넸으면 좋겠다.
익는다는 것, 익어간다는 것은 단맛을 품는 일이다. 단맛을 품은 사람 마음속에서 씨가 여물고, 내년의 꿈이 싹튼다. 가을은 이렇게 또 우리 옆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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