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마셔도...” 술 가까이 하면 ‘이 병’ 못 피한다

채인택 2025. 10. 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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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56~72세 56만명 4~12년 추적조사
240만 명 대상 유전체 데이터 분석도 병행
‘적당히 마시면 치매 막는다’는 통념 깨
알코올 섭취하면 적게 마셔도 치매 발병
3배 더 마시는 사람 치매 가능성 15% 상승
도수 낮은 술로 조금만 마셔도 음주자는 치매를 피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영국과 미국에서 나왔다. 치매를 막으려면 절주보다 아예 금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랫동안 적당한 알코올은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사회적으로 금주보다 절주가 강조돼온 이유다. 하지만 적어도 치매 예방과 인지 장애 지연 같은 뇌 건강 분야에서는 이 믿음은 사실이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보건학과 아냐 토피왈라 교수는 케임브리지대 암센터,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과 등과 공동 연구한 결과를 동료평가 학술지인 《영국의학협회지 증거기반 의학(BMJ Evidence-Based Medicine)》9월호에 게재했다. 논문 제목은 '다양한 인구집단의 알코올 섭취와 치매 위험: 코호트, 사례 대조 및 멘델 무작위화 접근법의 증거(Alcohol use and risk of dementia in diverse populations: evidence from cohort, case–control and Mendelian randomisation approaches)'이다.

150만 데이터에서 56만명 대상의 대규모 연구

이 연구는 알코올 소비와 치매 위험에 대한 연구 중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56~72세 성인 55만9559명을 대상으로 미국에선 4년간, 영국에선 12년간 관찰 분석을 했다. 아울러 240만명이 참가한 전장유전체 연구(유전자 전체의 DNA 서열을 분석해 질병·장애·변이를 살피는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전체 분석도 함께 진행했다. 대규모 데이터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연구의 신뢰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미국 보훈부(VA)의 '100만 재향군인 프로그램(Million Veteran Program)'과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의 생물학적 샘플과 건강 데이터를 활용했다. 2011년 설립된 '100만 재향군인 프로그램(Million Veteran Program)'은 100만명 이상, 2003년 세워진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는 50만명 이상의 유전 샘플과 익명화된 건강 데이터를 확보해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전자는 미국 보훈부의 '재향군인 건강관리국(VHA)'이 유전자·생활방식·군경험과 건강 간의 연관성을 연구해 재향군인을 위한 더 나은 정밀의학을 제공할 목적으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사업이다. 후자는 장기적인 보건의료 연구를 목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술 마신다면 양과 관계없이 치매는 피할 수 없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대상자 중 4만8034명이 숨졌으며, 1만4540명에서 치매가 발생했다. 연구팀은 대상자를 비음주자, 과음자(주당 40잔 이상), 알코올 사용 장애인(AUD·통제불능일 정도로 자주, 과도하게 음주하는 사람), 그리고 가벼운 음주자로 나눠 서로 치매 발병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적게 마시는 그룹에서도 치매는 여전히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벼운 음주자에서 치매 발병률이 낮아 보이는 데이터도 있었는데, 연구진은 초기 치매에서 관찰되는 음주 감소가 부분적인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연구팀은 많이 마시든 적게 마시든 모든 유형의 알코올 소비는 치매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유전자 분석 결과는 술을 마시는 사람은 비록 적게 마셔도 치매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확인해주었다. 치매는 특정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이 아닌, 술을 마시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술을 적당히 마시면 치매를 막을 수 있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간병인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노인 치매 환자. 치매 발병에는 알코올은 물론 다양한 원인이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알코올 중독자 치료하면 치매 위험 16% 낮춰

주목할 점은 주당 알코올 섭취량이 3배 증가하면 치매 위험이 15%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결국 알코올을 조금씩 마신다고 치매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많이 마시면 치매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는 의미다. 통계학적으로 말하면, 알코올은 아무리 적게 마셔도 치매를 유발하는 '인과 관계'가 있으며, 많이 마실수록 발병률이 더욱 높아지는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알코올 사용 장애인의 유병률을 낮추는 보건 정책은 치매 발생률을 최대 16%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중독 수준의 음주자를 치료하면 치매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연구결과는 치매를 줄이려면 사회적으로 절주보다 금주 정책이, 보건적으로는 알코올 중독자 치료가 필요함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채인택 의학 저널리스트 (tzschaeit@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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