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은 넘치는데, 왜 조선소는 불안할까

2025. 10. 1. 06: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포커스]

경남 창원시 K조선 본사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용접을 하고 있다.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일은 많은데 남는 게 없다. 이 호황이 끝나고 나면 뭐로 버틸지 모르겠다.” 국내 한 조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 조선업은 겉으로는 역대급 호황이다. 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가 수년째 이어지고 글로벌 친환경 규제 강화는 ‘K조선’의 기술력을 세계 무대에 다시 올려놓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선박 가격은 하락 조짐을 보이고 글로벌 발주량은 감소세가 뚜렷하다. 인력난과 고정비 부담, 낮은 수익성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국내 대형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는 수주잔량 기준 3년 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했지만 업계에서는 “지금이 정점(피크)이 아니냐”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8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44만 CGT(82척)로 전년 동월 대비 65%나 줄었다. 같은 기간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도 186.26포인트로 전월 대비 소폭 하락해 정체 조짐을 보였다. 조선업 호황이 끝난 것인지, 더 큰 도약을 위한 일시적 숨고르기인지 논란은 분분하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다섯 가지 질문으로 풀어본다.

 

 Q1. 수주잔량은 충분한데 왜 ‘피크아웃’ 우려가 나올까

국내 조선 3사의 상반기 수주잔고는 134조675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줄었지만 평균 3년 치 이상의 일감을 보유하고 있다. 도크 가동률은 거의 100%에 이르지만 내부 분위기는 낙관적이지 않다.

수주잔량은 과거 성과의 결과물일 뿐 최근 신규 발주 흐름이 크게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 세계 선박 발주는 938척, 2707만 CGT로 전년 동기 대비 50.8% 급감했다. 8월 한 달만 보면 발주량이 전년 동월 대비 64.8% 줄어 최근 5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선박 가격도 정체와 하락 신호를 보인다.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여전히 고점 수준이지만 연초부터 완만한 하락세로 전환돼 8월에도 소폭 떨어졌다. 수익성은 더 큰 문제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건조 중인 선박은 대부분 2~3년 전 수주한 고정가 계약 물량”이라며 “당시에는 선가 상승 직전이라 마진이 반영됐지만 지금은 철강재와 인건비 상승으로 ‘일할수록 손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의 고질적 인력 부족 문제 해결도 시급하다. 신규 발주 감소가 이어지면 수년 뒤 다시 일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업계에선 LNG선 수요 사이클이 정점을 지나면서 암모니아 추진선·자율운항선 등이 차세대 먹거리로 거론되지만 기술 안정성과 국제 기준 마련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신규 수주가 둔화할 경우 고정가 계약 물량이 오히려 원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이 건조한 LNG 운반선. 사진=한화오션



 

 Q2. 글로벌 환경 규제는 부담일까 기회일까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해운업 온실가스 배출 ‘순제로’를 목표로 2030년까지 20%, 2040년까지 70%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해상 연료 기준 강화와 해운 부문 배출권거래제(ETS) 적용 확대를 추진하며 친환경 전환 압박을 가중시켰다. 조선업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선박 개발과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강화된 환경규제는 단기적으로 조선업계에 부담이다. 이중연료 엔진과 온실가스 저감 장치 등 고사양 설비 도입으로 선박 한 척당 건조 비용이 수천만 달러 증가하고 설계와 건조 기간도 늘어난다. 특히 기존 벌크선과 탱커선 같은 전통 선종은 친환경 전환 준비가 늦어 비용 부담이 더 크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조선업에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K조선은 이미 메탄올, 암모니아 등 차세대 친환경 연료 추진선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 IMO와 EU 규제 강화는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로 이어져 수익성과 경쟁력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Q3. MASGA, K조선에 게임체인저 될까

한·미 조선업 협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는 K조선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 노동단체들이 십스법(SHIPS Act) 통과를 촉구하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 기대감도 높아졌다. 십스법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해외에서 건조된 선박도 미국산으로 인정해온 기존 ‘존스법’ 장벽을 허물 수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선제적으로 미국과 전략적 협력을 확대해왔다. HD현대는 미국 사모펀드 서버러스, 산업은행과 손잡고 미국 내 조선소 인수 및 현대화를 추진 중이며 자율운항과 AI 기반 선박 개발에도 공동 투자한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은 방산 대응력 강화와 미 해군 함정 건조 확대에 대비하는 움직임이다. 삼성중공업은 비거 마린과 협력해 미 해군 MRO(정비·보수·운영)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에 5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해 생산능력 연 20척 규모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실질적 이행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중 마스가 프로젝트에 할당된 1500억 달러 외에 나머지 2000억 달러 운용 방식에 대해 한·미가 아직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전문 인력 유입을 위한 H-1B 비자 수수료 100배 인상(10만 달러) 발표에 따라 업계 반발이 크다. 국내 조선소의 숙련 엔지니어들이 미국 진출에 제약을 받을 경우 마스가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사진=HD현대중공업



 

 Q4. HD현대重·HD현대미포 합병,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까

HD현대미포는 중형 선박 중심 생산 구조와 해운 경기 침체로 도크 활용률이 낮았다. 최대 7기 수리 도크 중 4기만 가동하며 수주 감소에 직면했고 대형 선박 수요 대응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번 합병은 도크 활용 비효율을 해소하고 생산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대미포의 중형 선박 기술과 도크 설비가 HD현대중공업의 대형 선박 역량과 결합되면 규모의 경제와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마스가 프로젝트 본격화에 맞춰 특수선과 방산 시장 진출도 가속될 전망이다.

중국과 일본 조선사들이 대형화와 첨단기술에 투자하며 추격하는 상황에서 합병법인은 경쟁력 강화라는 과제를 안았다. 현대미포의 특수선 사업 라이선스 공유로 저가 중국 조선소와 경쟁하는 데 유리해졌으며 미국 특수선·방산 시장 공략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한 미 해군 4만1000톤급 화물보급함 ‘USNS 앨런 셰퍼드’ 정비 사업이 미포 인근 안벽에서 진행되는 것도 합병 시너지 사례다.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대표는 “추가 조선소 투자 없이 합병 후 미포 조선소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도크 군함용 개조에 큰 투자가 필요 없다고 밝혔다.

이번 합병은 도크 활용률 저조 문제 해결과 조선업 ‘피크아웃’ 우려 극복을 위한 전략적 조치로 평가된다. 기술과 생산 인프라, 인력을 통합한 합병 HD현대중공업은 변화하는 조선업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성장 발판을 마련할 전망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에서 개발한 AI 기반의 선박 통합 항해 시스템 ‘오션와이즈’. 사진=HD현대



 

 Q5. K조선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해법은

국내 조선업계는 수익성 개선과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과 특수선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특수선은 단가가 높고 기술 난도가 커 차별화에 유리하지만 발주량이 적고 시장 변동성이 커 리스크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특수선만 지나치게 집중하면 수주 변동성에 취약해질 수 있다”며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기존 주력 선종과 병행해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K조선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단순 수주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수익성 개선과 기술 경쟁력 강화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친환경 기술 도입과 디지털전환, 스마트 조선소 구축은 필수 과제로 부상했다.

R&D 투자 확대와 숙련 인력 양성도 시급한 현안이다.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선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교육훈련 강화, 산업 안전 개선, 임금 및 복지 향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후판 가격 상승과 환율 변동 등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면 수익성 중심의 수주 전략과 공급망 다변화가 필수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친환경 선박 기술과 방산·특수선 분야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술력 강화에 한계가 있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현장 인력 양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