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와 대전 후 인기 급락…일본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
2022년 10월 1일 79세

일본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1943~2022)는 1976년 6월 26일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대결했다. 이노키 33세, 알리 34세였다.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경기는 당초 ‘세기의 대결’로 흥분을 고조시켰다. 입장료는 최고 30만엔에 달했다. 한국에도 KBS·TBC·MBC 3사(社)가 TV로 실황 중계했다.
“1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도관의 이번 대전 입장료는 링사이드가 30만엔이며 최하 5천엔. 예매권은 모두 팔렸는데 입장 수익금은 5억엔(1백70만달라), 그리고 TV중계료 등 기타 수입이 약 8백만달라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은 모두 승리를 장담했다. 이노키는 “알리가 15회 대전이 끝나면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 성한 몸으로는 귀국하지 못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알리는 도쿄에 도착해 이노키를 향해 “생명이 위험하니 대전을 포기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알리는) 이번 대전을 위해 레슬러인 프레리 블래시로부터 레슬링 기술을, 한국인 이준구(李俊九)씨로부터는 태권도를 배웠으며, 이노끼를 8회에 KO시킬 야비한 기술을 습득했다고 장담했다. 한편 이노끼는 가라데 유단자이며 유도와 일본 씨름 스모를 익혔으며 대전을 앞두고는 가라데왕(王)인 재일교포 최영의(崔永宜)씨에게서 가라데 기술을 더욱 배웠다.” (1976년 6월 26일 자)

정작 경기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이노키는 15회 내내 링 바닥에 드러누워 알리의 다리를 공격했다. 글러브를 낀 알리의 펀치는 누워 있는 이노키에게 닿지 못했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는 “링 사상 가장 저조한 경기”라고 혹평했다.
“프로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일본의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끼 간의 ‘세기의 대결’은 링 사상 가장 저조하고 보잘 것 없는 경기 끝에 무승부를 기록했다. (중략) 알리는 고작 3개의 펀치밖에 날리지 못했으며, 이노끼는 매트에 등을 대고 누운채 발로 공격하는 전법으로 시종, 알리의 발에 겨우 찰과상을 입히는 정도의 지루한 경기를 보였다.”(1976년 6월 27일 자)
경기 직후 알리는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6월 27일 기자회견에서 “드러누워 돈 버는 것은 매춘부나 하는 짓이 아니겠느냐”고 독설을 날렸다. 이노키도 할 말이 있었다. 그는 대전 직후 “경기 규칙이 알리에게 유리하도록 짜여져 있지만 않았다면 내가 이겼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신문이 전한 경기 규칙은 다음과 같다.
“알리는 4온스짜리 글로브를, 이노끼는 맨손으로 경기에 임하고 알리가 쓰러졌을 경우에 이노끼는 공격할 수 없지만 알리는 펀치를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노끼가 다운됐을 때 레퍼리가 카운트10까지 세면 KO패가 되며 알리는 한쪽 어깨를 바닥에 대어 카운트3을 세었을 경우 KO패가 된다.”(1976년 6월 26일 자)

이노키는 이 경기 후 “인기가 계속 떨어졌다”며 2억2000만엔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다.
“6월 26일 ‘세계 격투기 선수권’ 대전이란 해괴한 이름을 내걸고 동경에서 프로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싱거운 무승부 경기를 벌였던 일본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끼는 27일 알리를 상대로 2억2천만엔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동경지방재판소에 제기했다. 이노끼는 “대전 당시 알리 측이 ‘이노끼는 일어서서 아래 배 등을 공격할 수 없고 찰 때는 반드시 양손 내지 한손은 매트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부당한 규칙 변경 때문에 팬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뒤 “이 때문에 인기가 계속 떨어져 예정됐던 홍콩 등의 해외 원정 스케줄이 취소되는 등 금전 상의 막대한 손해를 보고있다”고 주장했다.(1976년 9월 29일 자)

이노키는 1943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브라질로 이주했다. 1960년 브라질을 방문한 역도산에게 발탁되어 제자가 됐다. 17세였던 그해 일본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데뷔전 상대는 역도산의 제자인 당시 31세 ‘박치기왕’ 김일이었다. 이노키는 데뷔전에서는 패했으나 이후 김일에게 한 차례 승리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여러 차례 김일과 대결을 펼쳐 프로레슬링 인기에 불을 지폈다. 이노키는 화려한 경기 스타일로 ‘코브라 트위스트’ 기술을 선보이며 인기를 모았다.

정치에도 도전해 두 차례 참의원을 지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평양에서 레슬링 대회를 열기도 했다. 재선 참의원이던 2014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스포츠 교류가 평화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대회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노키는 ‘프로 레슬러와 정치인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정치인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스승인 역도산은 ‘프로레슬러는 관객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사로잡아 용기를 주는 직업’이라고 했다. 정치도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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