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옥죄기” 불만에 배임죄 폐지 카드… 110개 경제 형벌도 완화

권순완 기자 2025. 10. 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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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과도한 형벌, 기업 혁신 막아”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 형벌 민사 책임 합리화 당정(黨政) 협의에서 김병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야기하고 있다. 당정은 이날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고 대체 입법을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과도한 경제 형벌이 기업 혁신을 막고 있다”고 했다./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30일 형법 가운데 배임죄를 폐지하고 대체 입법을 하기로 함으로써 배임죄가 72년 만에 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기업 경영 환경 위축을 막겠다면서 배임죄 완화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배임죄를 아예 폐지하기로 하자 여권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정부·여당이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밝힌 데 대해 정치권에선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 등 재계가 반대하는 법안을 줄줄이 통과시키자, 기업들은 불만과 우려를 제기해 왔다. 배임죄 축소·폐지도 요구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책임 있는 집권 여당으로서, 무조건 노조나 소액 주주 편만 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배임죄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과도한 경제 형벌이 기업 혁신을 막고 있다”고 했다.

형법상 배임죄의 문제점은 그간 재계와 법조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했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事務)를 처리하는 사람이 임무에 위반하는 행위를 해 이익을 취하거나 타인에게 손실을 끼쳤을 때’ 처벌하는 법 조항이다. 한국은 1953년 형법 제정 때 독일·일본 형법을 참고해 포함했다.

다만 독일은 경영상 판단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했고, 일본은 ‘손해를 가할 목적’이라는 고의성을 입증해야 처벌할 수 있다. 이런 단서 조항이 없는 한국은 기업인 수사·기소 단계에서 배임죄를 폭넓게 활용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2014~2023년 10년간 배임죄로 기소된 사람은 한국이 연평균 965명, 일본이 31명이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배임죄 적용 여부를 사실상 검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다”며 “검찰의 먼지 떨기식 수사의 근간이었다”고 했다.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은 윤석열 정부 시절이던 작년 6월 “배임죄는 현행 유지보다는 차라리 폐지가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부·여당은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더라도 대체 입법으로 처벌 공백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어떤 부분을 어떻게 입법하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또 배임죄 폐지 기한도 확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실제 폐지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법무부는 배임죄를 적용한 판례를 분석해 배임의 구체적 유형을 추려내고, 그에 따라 개별 입법화를 추진할 계획이지만 “배임죄 폐지는 기업 범죄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여권을 설득하는 일도 과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이날 논평에서 “배임죄는 기업의 사유화를 막는 핵심적인 장치”라며 “구체적 대안 논의도 없이 무책임하게 이뤄지고 있는 현재 배임죄 폐지 논의를 철회하라”고 했다.

이날 정부는 배임죄 외에도 경제활동과 관련한 각종 형사처벌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경제 형벌 민사 책임 합리화’ 당정 협의에 참석해 “(배임죄 등) 경제 형벌 중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형벌 규정 110항목을 우선 손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부 경제 형벌은 구체적 개선 방향도 밝혔다. 시장 지배 사업자가 가격을 부당하게 올리는 등 독과점 지위를 남용할 때 징역 3년까지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을 없앤다. 앞으로는 먼저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어기면 형벌을 내린다. 기업의 경영 활동에 대한 형사처벌 위험은 줄이되, 시정명령을 불이행하면 확실히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이 고객의 외환 거래가 합법인지 확인하지 않았을 때 징역 1년까지 처할 수 있던 규정도 없앤다. 대신 위반으로 얻은 이익의 40% 이하 과징금을 부과한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계약서에 일하는 장소 등을 적지 않았을 때 최대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던 것을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 부과로 바꾼다. 벌금과 달리 과태료는 행정 처벌이어서 전과가 생기지 않는다. 다만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핵심 사항을 서면으로 주지 않은 경우는 계속 형벌로 처벌한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상호를 바꾸고 깜빡해서 구청에 변경 신고를 하지 않으면 현재는 최고 징역 6개월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 트럭 운전자가 짐칸 크기를 조금 늘렸다가 승인을 받지 않으면 징역 1년형을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원래대로 고치고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내면 된다. 구내식당을 운영하면서 조리사를 잠깐 고용하지 못한 경우, 받는 처벌 수위는 징역 3년에서 1년으로 줄어든다. 배달 로봇 부품을 바꾸면 징역 3년 대신 과징금을 최고 5000만원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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