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임대인 검증없는 대출심사, 당국 관리 실종…전세사기 키워
- “은행에 집 서류 내고 주택금융公 보증
- 공인중개사 끼고 확정일자 받았지만
- 대출 부실심사로 빚쟁이” 피해자 울분
- 금융권 ‘임대인 검증’ 사실상 형식적
- 전세대출로 이자수익만 5년간 23조
- 정부 등 감시감독시스템도 가동 안돼
김태욱 씨는 A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전세 사기 피해자다. 그는 경기도 광주의 다가구주택을 2022년 8월 전세보증금 2억2000만 원에 계약했다. 은행에 집 관련 서류들을 제출했고, 주택금융공사에서 보증도 받았다. 전입신고를 하고 바로 확정일자까지 마쳤다. 전세자금대출이라는 정부 정책에도 충실하게 따랐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전세임대차 계약을 체결했고, 제1 금융권에서 정책자금인 전세자금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보증금을 모두 날렸다.

김 씨는 “여기까지 저의 어떤 잘못과 실수가 있었나. 임대인이 건물 여러 채를 갖고 있어 보증금 떼일 일은 없다고 한 공인중개사의 얘기를 의심했어야 했나”고 가슴을 쳤다. 그러면서 “감정가 15억7000만 원, 공시지가 6억9800만 원 건물에 근저당 9억 원, 선순위보증금 8억 원이 잡혀있었다. 이런 집에 은행이 1억7600만 원을 대출해 주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은행의 부실 심사를 성토했다. 서울 영등포 대림동에 사는 안산하 씨는 B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다. 그는 “올해 1월 계약했는데 2월에 임대인이 파산 준비를 했다. 실제 입주가 3월이라 살아보기도 전에 임대인이 파산준비를 하고 있었다. 은행은 무엇을 검토해 한 달 동안 시간을 끌었나. 임대인의 상태는 하나도 보지 않은 것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입주 전 이미 1억 원 빚이 확정됐다.
30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앞에 모인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가득했다. 2022년 인천 미추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상처는 3년이 지났지만 더욱 깊어졌다. 이들은 사실상 부실 대출로 전세 사기를 가능케 한 은행권의 역할을 촉구했다.
최은선 인천 미추홀구 대책위 부위원장은 3년이 넘도록 전세 사기로 고통받고 있다. 그는 “무등록 임대사업자들이 몇백 채나 되는 주택들을 문어발식으로 사들일 때 금융기관은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않고 이들에게 대출을 남발했다”며 “그런데도 감시·감독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전세사기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갑자기 떠안게 된 빚을 임차인이 모두 책임지고 있다. 대출을 해준 은행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전세사기는 전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지금도 피해자의 고통은 계속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전세사기 피해주택 소재지’ 자료를 보면 지난 10일 기준 전체 전세사기 피해는 3만3408건에 달했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이 9380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 7299건, 인천 3469건, 대전 3846건, 부산 3619건 등이었다. 부산진구에서만 930건으로 부산 전체의 36%에 달하는 사기가 발생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는 피눈물을 흘리지만, 은행은 해마다 역대 최고의 이자수익을 올리며 ‘성과급 잔치’ ‘퇴직금 잔치’를 벌인다. 은행권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세대출로 얻은 이자수익만 23조7000억 원에 이른다.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결성된 ‘민달팽이 유니온’ 서동규 위원장은 피해자를 대신해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들은 빚더미에 올라있는데, 은행은 돈 잔치를 벌인다.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제 은행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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