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둔 전남 곡성 당지마을…100년 동안 세배 합동으로 지내는 '효 동네'
마을 회관서 덕담하며 고향의 정 나눠
평소 공동 생일잔치·공동 제사도
인구 줄어도 정겨운 고향 내음 물씬


가족들과 모여 조상 묘 벌초를 하던 당지마을 이장 오규성(63)씨는 "명절이면 평소 만나지 못한 출향민들이 찾아와 북적이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게 큰 기쁨"이라며 "하지만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길어 혹시 사람들이 덜 올까 걱정"이라고 추석을 앞둔 소감을 말했다.
오 이장은 이날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나 정을 나눴다. 묘지 벌초를 마친 뒤 둘러앉아 나눈 늦은 점심상에는 웃음과 안부 인사가 오갔다.

그의 말처럼 이제는 한 집안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함께 모이는 모습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지역 소멸' 표현이 일상화될 만큼 농촌지역은 갈수록 사람들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명절때는 서로 바쁘고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고향을 찾는 출향민들도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당지마을 여전히 '함께'라는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다. 주민이 줄고 출향민들의 발걸음도 예전같지 않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이 가득하다. 추석에는 바쁜 수확철이다 보니 큰 잔치는 없지만 주민들은 품앗이로 서로의 농사일을 도우며 한가위를 함께한다. 바쁜 와중에도 집집마다 빚은 송편을 이웃끼리 나누거나, 마을 회관에 모여 덕담을 나누는 것이 전통처럼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명절이면 자연스레 모여 서로 웃고 덕담을 나누는 게 우리의 문화"라고 입을 모았다.
추석을 앞두고는 '울력'도 진행된다. 울력이란 마을 주민이 함께 모여 길가 풀을 베고, 회관 주변을 정비하며 손님맞이를 준비하는 공동 작업이다. 이렇게 정돈된 마을은 명절 손님을 맞이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난 부부의 제사 등 '공동 제사'를 마을 전체가 이어오고 있다. 독거 어르신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합동 생일잔치'도 열린다. 밥 한 그릇을 나누며 생일을 축하하고 작은 선물로 정을 표현한다.
이 같은 풍습은 당지마을의 오랜 전통인 '설날 합동세배'가 뿌리다. 무려 100년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합동세배는 세대를 바꿔가며 전승돼 왔다. 주민들은 설날 아침 각 가정의 제사를 마치고 회관에 모여 어른들께 절을 올리고, 함께 음식을 나눈다.
오 이장은 "공동제사와 합동생일잔치, 세배는 단순히 절을 올리는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며 "사람은 줄었지만 전통은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당지마을은 27가구 34명이 살고 있어 과거 70여 가구 200여명이 살던 시절보다 인구는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여전히 품앗이와 계를 이어가며 농사를 매개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전체 경지 20.6㏊ 가운데 12.4㏊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아 '유기농 생태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 이장은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지만, 한 그릇 밥을 나누며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공동체는 언제나 살아 있는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곡성/김성빈 기자 ksb@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