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21세기 지킬과 하이드’ 트럼프를 읽는 법

박영서 2025. 9. 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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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행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유엔을 100% 지지한다. 나는 유엔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엄청나다"면서 연신 치켜세웠다.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최근 발간한 신간에서 트럼프가 공개적으로는 자신을 공격했지만, 사적으로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통화에서 "나의 유일한 문제는 당신에게 화를 내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야, (그러니) 어떻게 당신에게 나쁜 말을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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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행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공개 석상에선 거칠고 적나라하고 황당한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나 막후에선 미소와 유머, 그리고 인간적인 온화함으로 상대를 끌어당긴다. 이번 유엔총회에서도 그랬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 시간 가까이 유엔과 동맹국들에게 독설을 쏟아냈다. “유엔은 쓸모없다”고 거세게 질타했고, 유럽을 향해서는 “당신들의 나라는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연설을 마친 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났을 때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유엔을 100% 지지한다. 나는 유엔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엄청나다”면서 연신 치켜세웠다.

이런 모습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최근 발간한 신간에서 트럼프가 공개적으로는 자신을 공격했지만, 사적으로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통화에서 “나의 유일한 문제는 당신에게 화를 내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야, (그러니) 어떻게 당신에게 나쁜 말을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해리스는 “그는 정말 사기에 능숙하다”면서 선과 악의 이중성을 다룬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등장인물을 인용해 “미스터 하이드와 전화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지킬 박사가 전화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물론 정치 지도자들이 모순적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리처드 닉슨은 대외적으로는 강경한 반공 지도자로 보였지만, 물밑에서는 중국과 비밀 접촉해 미·중 수교라는 역사적 전환을 이끌어냈다. 샤를 드골은 “미국은 프랑스에 간섭하지 말라”며 공개적으로 반미 발언을 자주 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영향력을 인정한 현실주의자였다. 스탈린과 마오쩌둥 역시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끊임없이 성토했지만 정작 협상장에서는 루스벨트, 닉슨과 손을 잡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보다 차원이 높다. 한층 더 노골적이고 계산적인 방식이다. 카메라 앞에선 상대를 무너뜨릴 듯 몰아붙인 후 곧바로 개인 대화에서는 “당신을 존경한다”며 손을 내민다. 심지어 거짓말이나 근거 없는 주장도 서슴없이 내뱉고 이를 정치적 무기로 삼는다. 그중 하나가 “임신부가 타이레놀을 복용하면 태아의 자폐 위험이 높아진다”는 그의 발언이다. 이렇게 정치 언어의 양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의 스타일은 미디어 시대에서 빛을 발한다. ‘21세기 지킬과 하이드’라 불릴 만하다.

국내 정치용 강경 선동 언사와 비공개 외교의 실용주의가 극명히 갈리는 그의 이중성은 개인적 기질을 넘어 일종의 협상 전술로 볼 수 있다. 협박과 회유, 그 양극단을 오가며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어떤 대미 전략을 취해야 할까. 경제·통상 분야에서 한국은 감정적 반응보다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관세와 무역 불균형을 끊임없이 거론하며 공개적으로 압박하지만, 협상 테이블에서는 거래 가능한 조건을 제시하곤 한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의 요구에 즉각 휘둘리기보다 기본 원칙을 고수하면서 협상 카드를 제시해야할 것이다. 무엇보다 공적 발언의 수위보다 실제 통상 협상의 구조와 이익 교환의 틀에 주목해야 한다.

안보·한반도 문제에선 그의 말보다 행동을 주시해야 한다. 그는 공개적으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면서도, 비공식적 자리에서는 동맹의 가치를 인정해왔다. 북핵 문제에선 위협과 대화를 오가며 ‘극적 전환’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왔다. 한국은 이런 패턴을 감안해 두 가지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원칙을 지켜 흔들리지 않는 한·미 동맹의 기반을 명확히 하고, 동시에 남북·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선제적으로 열어, 트럼프가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 ‘외교 이벤트’로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트럼프를 상대하는 기술이 국익을 좌우한다. 따라서 트럼프의 ‘지킬과 하이드식 언변’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거센 파도는 트럼프가 만들지만, 중요한 것은 그 파도를 타는 노하우다. 파도에 휩쓸릴지, 새 외교 공간을 열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전략적 지혜에 달렸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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