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대하여
[사실과 의견]
[미디어오늘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가을이니까, 수확하는 절기의 연휴니까, 꿈결 같은 이야기를 적어도 괜찮을 것이다. 얼마 전, 꿈같은 책을 대학원생들과 함께 읽었다. '저책이책'(저널리즘 책을 읽는 이들의 책방)이라는 독서 모임에서 '워터게이트'를 읽었다. 처음엔 심드렁했다. 1970년대 미국 기자들의 이야기가 지금 무슨 소용일까. 그래도 선생 노릇을 위해 다시 읽었다. 전에 보이지 않던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 간직했으나 어느 때 놓아버린 낭만이 책장마다 (그리고 함께 찾아본 다른 문헌에) 적혀 있었다. 원생들도 모처럼 신나게 토론했다. 그들로선 처음으로 저널리즘의 별천지를 본 것이다.
칼 번스타인은 공산당원이던 부모 아래서 자랐다. 장발의 히피였고, 락을 좋아했다. 밥 우드워드는 법률가인 아버지를 둔 공화당원이었고(기자의 정당 가입을 금하는 규범이 자리 잡기 전이었다),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둘의 정파성은 서로에게 아무 변수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저널리즘 원칙의 저 아래에 묻고 다스렸다.
번스타인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17살 때부터 편집국에서 잔심부름하면서 모든 것을 밑바닥부터 익혀 기자가 됐다. 우드워드는 예일대에서 문학과 역사를 전공하고, 하버드 로스쿨 입학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입사 원서를 냈다. 그래도 낙방하여 지역의 작은 신문사에서 1년간 일한 뒤에야 워싱턴포스트의 정식 기자가 됐다. 취재 보도의 실무 역량만 평가하여 기자를 채용하던 시절, 고졸자와 아이비리그 졸업자는 모든 면에서 동등했다.
둘은 사회부 사건 담당 기자였다. 거기나 여기나, 그때나 지금이나 사건 취재는 막내 기자의 몫이다. 부자들이 사는 워터게이트 건물에 강도가 침입하는 일은 흔했다. 일상다반사 가운데 범행 동기를 납득하기 힘든 하나의 사건을 포착하고, 그 연원을 추적한 것이 워터게이트 보도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 취재가 권력 고발 취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세상 모든 초년 기자의 로망이 여기서 비롯했다.
번스타인은 취재 초기부터 배후에 대통령이 있음을 간파했다. 그 가설 아래 누구를 만나 무엇을 확인할지 구상했다. 우드워드에겐 가설보다 입증이 더 중요했다. 밤 12시 기사를 마감하고, 새벽 3시 취재원을 만나고, 아침 6시 출근하는 집념은 오직 사실의 교차검증을 위한 것이었다. 주관과 객관, 그리고 통찰과 검증이 저널리즘의 양면이라는 걸, 그 둘을 얼마든지 융합할 수 있다는 걸, 두 기자는 현실에서 입증했다.
다만, 아무리 특출난 기자라도 뉴스룸의 게이트키핑을 거쳐야 진실에 가닿는다. 부장, 국장, 편집인은 보고나 초고를 반려하거나 보완했고, 독려하면서 꾸짖었다. 대신, 간섭과 압력으로부터 기자들을 결연히 지켰다. 그러한 뉴스룸의 리더를 발행인도 지켰다. 그 반대로 행동하는, 현실의 수많은 사장, 편집인, 국장에게 “똑바로 하시오”라고 일갈할 때, 그 '똑바로'의 기준은 1970년대 워싱턴포스트다.

대통령 하야로 귀결되기까지, 품위와 책무가 무엇인지 똑바로 아는 정치인과 법조인의 역할도 컸다. 상원 특별위원회는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관련자를 추궁했다. 하원 법사위원회는 신속하게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다. 특별검사는 백악관의 내부 증거를 확보하여 대통령 최측근들을 기소했다. 행정부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공화당 의원이 민주당 의원과 협력했다. 고발당한 정치인조차 “오보로 몰아붙여 미안하다”고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 나중에 사과했다.
나는 지금 낭만에 대해 적고 있다. 좌우로 나뉜 유튜버가 정당, 의회, 행정, 사법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게 옳은지 그른지조차 정파적으로 판단하는 난리 와중에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는 기자들이 놓쳐버린 낭만이 있다.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법에 대한 낭만적 원형이 1970년대의 워싱턴포스트에 있다.
원래 민주주의 자체가 낭만적 고전의 재발견에서 비롯했다. 고대의 이상을 부활시키려 했던 르네상스 이래 민주주의가 법과 제도로 정착했다. 그걸 자본과 기술이 다시 무너뜨리고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르-르네상스'가 필요할 수 있다. 답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옛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관적인 미래의 해법이 어쩌면 두뇌가 아니라 심장에 있을지도 모른다. 두뇌가 해법을 분석할 때, 심장은 낭만을 통찰한다. 그리고 대개의 정답은 심장에 있다. 어떤 정답은 낭만에 있다. 어쩌면 그 낭만이 저널리즘을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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