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연예뉴스] 전유성 마지막 무대는 '개그콘서트'…묘비엔 "웃지 마, 너도 곧 와"

공보영 2025. 9. 3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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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국 씨와 김미화 씨의 '쓰리랑 부부'라는 게 있다. 거기에 배달하는 친구가 나왔는데, 그때 제가 '철가방'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우선 해보고 실천하는 거다. 새로운 얘기를 실험하고, 무대에 서면 활력을 찾는다." 대한민국 코미디계의 선구자로 화려한 족적을 남기고, 개그계 대부로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고 전유성의 말이다. 전유성은 지난 25일 밤 9시경 향년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폐기흉 악화로, 그는 지난 7월 초 폐기흉 관련 시술을 받고 호흡 곤란 증상 등이 계속돼 치료를 받던 중 전북 전주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유족과 후배들은 코미디언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한 후 지난 26일 오전, 서울의 한 병원에 빈소를 차렸다. 코미디언협회장 김학래가 유족과 함께 조문객을 맞았다. 고인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곁을 지킨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이며 "이미 다 망가져 계시는데 정신은 똑바르게 있었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숨을 쉬면서도 중간중간에 유머를 했다"고 말했다. "'형이 조금 먼저 가는 거야. 별 차이 없어. 우리도 곧 뒤따라가'라고 얘기를 했더니 '내가 먼저 가있을 테니까 거기서 만나자'고 하셨다"고 전했다.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본 이봉원과 이경실 역시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봉원은 "다행히 전날 얼굴을 뵀다. 같이 인사를 나눠서 천만다행이다. 계그계의 큰별이 지고, 제일 큰 형님이 가신 거라 더더욱 안타깝고 슬프다"면서 "고생 많이 하셨고 너무 많이 아프셨으니까 이제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경실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오빠가 이제 편안해지셨겠구나'였다"며 "이제 편안해진 오빠를 많은 분들이 명복을 빌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배들은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던 '선배 전유성'을 떠올리며 명복을 빌었다. 안영미는 "대선배님이라서 작품을 같이 한 적은 없다. 가끔 오며 가며 마주칠 때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 선배님이 계신 곳에서는 아무 고통도 없었으면 좋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수근은 "비록 이제 선생님과 함께하지 못하지만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자리하실 거라고 믿는다. 그곳에서도 많은 웃음을 전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코미디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스타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던 만큼 가수 양희은과 서수남도 빈소를 찾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양희은은 "처음 만났을 때가 70년이니까 55년 된 사이다. 항상 의논을 하면 명쾌한 답을 주시던 분이다. 가장 긴 세월을 본 선배가 가셨다. 이제 아픈 것 끝났으니 편히 쉬시길 바란다"며 명복을 빌었다. 서수남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너무 아쉽고 미안하다. 못난 형 때문에 빨리 간 것 같아서 미안함뿐이다. 형이 못나서 너를 먼저 보낸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의 유족과 동료, 선후배들은 추모의 뜻을 담아 펼쳐진 마술쇼와 성악 공연으로 잠시나마 슬픔을 달래고 또 한 번 고인을 추억했다. 대한민국 코미디계 중심에 우뚝 서 뜨겁게 내달렸던 고 전유성은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연출과 졸업 후 1968년 한 방송사의 코미디 작가로 일하던 중 코미디언으로 전향했다. 슬랩스틱 개그가 주류였던 시절, 유려한 입담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웃음을 선사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개그콘서트' 창립 멤버로 활약하고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최에 힘을 쏟는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창의적인 기획력을 발휘했다. 신인 발굴과 후배 양성에도 전력을 다하며 무대 위의 혁신가, 코미디언들의 스승, 인기 스타로서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앞서 2019년, 최양락은 "형님 연세 70에 아직도 '개그콘서트'나 '코미디 빅리그'를 챙겨보시고 누구는 저걸 잘하고, 저런 걸 고쳐야겠다고 하시는데, 이렇게 코미디에 열정이 있는 분이 대한민국에 또 누가 있을까 싶다. 또 '개그맨'이라는 말도 만든 장본인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전유성은 "저는 그냥 야사에 남는 개그맨이면 좋겠다"며 "겸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개그 현장을 쭉 지켜봤던 사람으로 남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고 전유성은 인기에 연연하기보다 소탈하고 겸손하게 주변을 두루 살폈고, 많은 이들이 그런 그를 따랐다. 지난 28일 오전에 엄수된 영결식에는 고인과 긴 세월을 함께한 이들이 한데 모여 고인의 삶을 되짚었다. 이홍렬은 "선배님은 엄격하셨지만 따뜻하셨다. 오늘 우리는 한 사람을 떠나보내지만 그분이 만든 길 위에 서있다. 선배님이 일깨우신 공개 코미디에 대한 용기, 후배들을 향한 신뢰, 기록을 남기려는 집요함. 그 모든 유산을 우리가 이어가겠다"며 고인을 기렸다. 김신영은 "제자를 넘어 친구라고 불러주시던 그 따뜻한 마음을 평생 간직하겠다. 후배들을 사랑하는 모습, 평생 코미디언 길을 닦아주신 그 마음을 이어가겠다. 천국에서 행복하고 재미있게 하고 싶은 것 다 하시길 바란다"고 인사를 전했다. 눈물바다를 이룬 영결식과 발인 이후 운구 행렬은 고인이 생전에 애정을 쏟았던 '개그콘서트' 녹화장으로 향해 노제를 치렀다. 이 자리에 함께한 많은 후배들은 큰절을 올리며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고인이 말년에 머물렀던 전북 남원으로, 고인은 그곳에서 영면에 접어들었다. 별이 된 코미디계의 거장, 고 전유성.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웃음과 가르침은 만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되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전유성 #전유성별세 #전유성장례식 #김학래 #이봉원 #이경실 #안영미 #이수근 #양희은 #서수남 #이홍렬 #김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