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위 군림하는 김어준… 어심-당심 일체화로 ‘영도적 권력’ 행사[허민의 정치카페]
당원주권 토대로 메시지 위력 과시… 정치소매업자 벗어나 제의적 권력 생태계 구축
팬덤에 ‘해방구 - 집합적 열광’ 선사… 좌파정치 내 대체불가 ‘김어준 퍼스트’ 굳혀

김어준의 권력은 강하다. 정치소매업자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주했다. 지금 그는 제의(祭儀)적 정치제도와 문화를 생성해내며, 진보·좌파 진영 내에서 영도적 권력을 행사 중이다.
◇명심, 당심, 어심
‘정청래 돌풍’을 일으켰던 더불어민주당의 8·2전당대회 전후로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게시글과 댓글 등에서 엿볼 수 있는 민주당원이나 지지자들의 특징적 관심사는 크게 세 가지다. ①당원주권 강화 ②‘어심(김어준 생각)’의 정치적 영향력 ③‘명심 대 어심’ 구도.
첫째 민주당 ‘당원주권 강화’.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당심을 알려면 딴지 게시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 판단의 중심을 딴지 게시판에 나타난 여론에 두겠다는 것이다. ‘당원주권정당특위’가 가동됐고, 당원 권한 대폭 확대 추진 관련 메시지들이 줄을 이었다.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민주당’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민심의 역풍이 일기도 했다.
둘째 ‘어심’. 정 대표의 생각이 김어준의 그것과 ‘동기화’됐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어심이 당심의 기준점이 됐다. 지지자들은 아침식사로 ‘김어준 퍼스트’라는 정치문화를 먹고 자란다. ‘오늘 김어준은 무슨 말을 할까’가 최대의 관심이 됐다. 1년에 28회 출연했다는 정 대표의 다빈도 출연, 김어준 방송에 나온 국회의원 119명 숫자가 화제가 된다. 게시판-방송-정치를 잇는 권력체인이 등장했다.
셋째 ‘명심 vs 어심’ 대립구도. 민주당 8·2전대는 ‘당심(정청래) 대 명심(박찬대)’ 분화를 보여줬다. 당심은 곧 어심이었고, 따라서 전대 승자는 명심이 아닌 어심이었다. 최종적으로 정 대표와 김어준의 동기화 속에서 어심이 당심을 견인하면서도 명심과는 때로 충돌하는 가운데, 당심은 명심보다 ‘극한 개혁’을 외치는 어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추이가 확인됐다.
서구 선진국에서도 일개 인터넷언론이나 유튜버의 정치적 영향력이 이렇게 막강할까. 미국의 러시 림보나 조 로건은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지만, 당헌 등 제도를 좌지우지하거나 주요 정당의 지도부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영국의 나이절 패라지는 보수당 내부에서 레거시미디어보다 강한 영향을 미쳤지만 외부변수 정도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김어준 생태계
김어준은 달랐다. 방송인 혹은 유튜버로서 정치 담론과 이슈를 주도하면서 제도적 권력 위에 올라탔다. 당심과 어심을 공고하게 결합시켜, 유튜버 1인이 여당과 대통령 권력 위에 군림하는 특수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는 정청래 깃발의 민주당이 이전과는 다르게 △권리당원 비중이 매우 큰 정당 구조로 나아가고 △탈(脫)레거시 환경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레거시미디어나 주류사회에서 음모론이나 괴담 생산자로 몰렸던 이들이 그들만의 정체성 공간인 ‘김어준 커뮤니티’에서 ‘억눌린 진실’을 공유함으로써 ‘유배된 자들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는 이른바 ‘해방구 효과’도 기여했다.
이념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정치문화도 김어준 권력 강화에 한몫했다. 대의기구나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 속에서 당원-대중-미디어를 하나로 연결하는 플랫폼 정치가 결합하면서 김어준은 당심의 대리인이 됐고, 어느 정치 지도자들도 넘보기 어려운 ‘상징권력’으로 떠올랐다.
한국의 진보가 지적 파산을 한 것 역시 김어준 카리스마를 키워줬다. 사실과 규범을 인정하지 않는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의 배설물과 같은 상대주의 철학 속에서는 괴담과 선정성을 사고파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어준이 메시지를 내면, 좌파 스피커들은 편견과 증오를 선동하고, 당원들은 여론을 퍼 나르며 광장을 지배했다.
김어준류 생태계에서 공적 서사는 붕괴됐다. 삼권 간에 상하가 정해져도, 법률이 헌법에 앞서도, 입법 독재가 판쳐도, 사법부가 공격당해도, 규범과 진실이 설 자리는 사라졌다. “놀라울 정도로 레닌의 방식을 도입해 타협을 거부하고 특정집단을 비민주적 방식으로 승격시키며 상대에 대해 악의에 찬 공격을 가하는 유사 전체주의”(앤 애플바움)의 모습이다. 한때 ‘김어준 방송을 듣고 종교집단 수준으로 세뇌돼 권력의 홍위병으로 동원됐던’(진중권) 개딸 당원은 지금 권력 그 자체가 됐다.
◇팬덤의 변천
김어준은 1990년대 딴지일보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반권위적 언론 패러디를 주로 해오다 2000년대 이후 라디오·팟캐스트를 통해 ‘반(反) 검찰·보수·주류언론’ 서사를 강화해 왔다. 민주당 성향 지지층의 르상티망을 분노의 서사로 번역해주며 점차 좌파 팬덤의 감정을 결속시켰다.
김어준이 역대 정권의 생성과 소멸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의 비극’ 이후부터다. 노의 죽음으로 인한 비극적 기억을 무기로 박근혜 정권의 소멸, 문재인 정권의 수립에 간여했고, 윤석열 정권의 탄핵과 이재명 정권의 탄생에 개입하면서 제의적 권력의 위상을 갖춰왔다. 그 결과 정당의 구조, 정치인의 생존, 정권의 정당성을 쥐락펴락하는 특수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같은 김어준의 정치 행로는 과거 민주당 정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고수했던 팬클럽 ‘노사모’가 주군의 비극적 죽음 이후 ‘노빠’로, ‘대깨문’으로, 다시 ‘개딸’로 진화하면서 비타협적 정치운동의 전선에 서게 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 모든 구비에 김어준이 있었다. 어느 순간 민주당 정치인들은 ‘당원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요컨대 어심과 당심의 일체화는 노무현의 비극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배신과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정치문화’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 위에서 김어준은 당심을 매개하거나 의식화하는 제의권력이 됐고, 민주당은 이에 열광적 지지를 보내는 당원의 압력 아래 놓이게 됐다. 이 같은 팬덤은 ‘정치적 훌리건’(제이슨 브래넌) 유형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고 파괴적이며 사교적 특성을 보인다.
마이클 린치 교수는 “나의 세계관이 다른 사람의 증거와 경험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고집하는 태도가 오만함을 부르고, 파벌의 신념만 중요하다고 할수록 권력을 위해 진실을 묵살하는 일이 늘어나며, 오만함이 파벌적인 양상을 띠면 파괴력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영도적 당심
민주당 열성 팬덤은 김어준이 제공한 해방구에서 ‘집합적 열광’(에밀 뒤르켐)을 경험한다. 김어준은 자신을 추앙하는 지지자들과 함께 이재명 정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전략적 지지를 넘어 영도적 지지를 보내는 중이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딴지일보’는 1998년 김어준이 창간한 진보 성향 인터넷 신문. 초창기부터 정치인 등에 대해 자극적인 풍자로 인기를 얻었음. 대한민국 팟캐스트의 기원이자 민주당계 커뮤니티의 기원 중 한 곳.
‘상대주의’는 절대적인 진리나 보편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진실은 문화나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사상. 마르크스주의를 잇는 서구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로 등장.
■ 세줄요약
명심, 당심, 어심: 딴지일보 게시판에 등장하는 민주당원의 특징적 관심사는 ①당원주권 강화 ②‘어심’의 정치적 영향력 ③‘명심 대 어심’의 대립구도 등. 김어준은 어심과 당심을 일체화해 여권 위에 군림하는 권력으로.
김어준 생태계: 민주당 내 당원주권 강화 흐름, 한국 진보의 지적 파산 위에 김어준 파워가 정권 위에 놓이는 특수한 구조가 만들어짐. 김어준류 생태계에서 공적 서사는 붕괴됐고, 강성 개딸 당원 역시 권력 그 자체가 됨.
팬덤의 변천: 김어준은 팬덤에 정치적 해방구를 제공하고 집합적 열광을 선사. 팬덤 역시 노사모-대깨문-개딸로 이어오며 비타협적 정치운동의 전선에 섬. 김어준은 좌파정치 내 대체불가 위상과 함께 영도적 권력을 행사 중.
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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