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형법상 배임죄 폐지 확정..야당은 “이재명 구하기” 비난

김지섭 기자 2025. 9. 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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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잘못에 사장까지 처벌 막는다“, 대기업 가격담합 바로 처벌 폐지
정부,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 발표

정부가 기업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배임죄를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야당은 배임죄 관련 문제로 재판을 받는 이재명 대통령을 구하기 위한 법 개정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3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하며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되, 구성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 범위를 축소한 대체입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쓰거나 영업 비밀을 유출하는 등 중요 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최대 징역 10년 또는 벌금 3000만원에 처하도록 한 규정이다. 문제는 ‘임무 위배 행위’라는 요건이 추상적이고 적용 범위가 넓어 정상적인 경영 활동까지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법무부가 최근 5년간 배임죄 1심 판결 3300여건을 분석한 결과, 기업 임직원이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쓴 경우부터 부동산 이중매매, 계주가 곗돈을 안 준 경우, 종중 대표자가 종중 토지를 무단 매도한 경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배임죄가 기업뿐 아니라 공공·민사 영역까지 ‘만능 처벌 조항’처럼 쓰인 것이다.

◇“이재명 구하기 vs 기업 살리기”

하지만 배임죄 폐지를 놓고 정치권 공방은 격화하고 있다. 지난 26일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업을 도와주기 위해 민주당이 배임죄를 없앤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이 기소된 부분이 면소되는 결과가 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백현동 등의 사건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도 “민주당이 추진하는 배임죄 폐지는 친기업법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상은 이재명 대통령 구하기법”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장은 또 “배임죄 폐지는 기업을 위한 게 아니라 기업 오너와 경영진을 위한 면책일 뿐”이라며 “배임죄가 폐지되면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경영진의 행위가 면책돼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고 개미투자자는 투자금 손실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배임죄를 단순 폐지하는 게 아니라 주체와 행위 요건을 구체화한 대체입법을 만들어 중요 범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없도록 할 것”이라며 “기업의 자율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면서도 회사 자금 사적 사용, 사업기회 유용, 가상화폐 범죄 등 새로운 경제 범죄 유형은 계속 처벌할 수 있도록 설계하겠다”고 말했다.

◇“직원 잘못에 사장까지 처벌” 양벌규정도 손질

정부는 배임죄와 함께 직원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장도 함께 처벌하던 ‘양벌규정’도 대폭 손질한다. 양벌규정은 직원의 위반 행위에 대해 법인이나 사업주도 함께 처벌하는 규정이다. 문제는 아무리 관리·감독을 열심히 해도 사장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다. 과거 노동조합법 양벌규정이 위헌 판결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최저임금법에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한 사업주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면책 규정을 새로 넣기로 했다. 예를 들어 회사가 최저임금을 지키기 위해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직원 교육도 했는데 일부 관리자가 임의로 최저임금을 어겼다면, 사업주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전 부처의 양벌규정을 전수 조사해 행위자 외에 법인이나 사업주를 꼭 처벌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양벌규정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공정위·기재부·노동부 주요 규정도 완화

정부는 주요 경제 부처의 핵심 규정들도 손질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할 때 바로 징역 3년까지 처할 수 있던 직접 처벌 조항을 폐지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먼저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어기면 형벌을 내린다. 대기업의 경영 활동에 대한 형사 처벌 리스크를 줄이되,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해서는 확실히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은행이 고객의 외환거래가 합법인지 확인하지 않았을 때 징역 1년까지 처할 수 있던 규정을 폐지한다. 대신 위반으로 얻은 이익의 40% 이하 과징금을 부과한다. 절차적 성격의 의무이고 실제 형벌을 받은 사례도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계약서에 일하는 장소 등을 적지 않은 경우 벌금 500만원에서 과태료 500만원으로 바꾼다. 벌금은 형사처벌로 전과가 생기고, 과태료는 행정처벌로 전과가 생기지 않는다. 다만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중요 사항을 서면으로 주지 않은 경우는 여전히 형벌로 처벌한다.

◇“미용실 간판 바꾸고 신고 안 했다고 징역형?”

정부는 이번 방안에서 총 110개 경제형벌 규정을 손질했다. 일상 속 사소한 실수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되던 관행을 바꾸겠다는 취지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상호명을 바꾸고 구청에 변경신고를 깜빡하면 지금은 최대 징역 6개월에 처할 수 있다. 앞으로는 과태료 100만원만 내면 된다. 트럭 운전자가 짐칸 크기를 조금 늘렸다가 승인을 받지 않으면 지금은 징역 1년형을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원래대로 고치고 과태료 1000만원을 내면 된다.

구내식당을 운영하면서 조리사를 잠깐 고용하지 못한 경우 징역 3년에서 1년으로 줄어든다. 비료 봉지가 습기로 찢어진 상태로 팔았을 때 징역 2년에서 과태료 200만원으로, 수산물을 팔면서 이력추적 시스템에 등록하지 않으면 징역 1년에서 과태료 1000만원으로 전환된다.

◇형벌 줄이되 금전 책임은 강화

정부는 형벌을 줄이는 대신 금전적 책임은 강화했다. 선박 보험조합 임원이 조합 돈을 제멋대로 나눠줬을 때 징역은 7년에서 3년으로 줄이되, 피해액의 2배까지 배상하게 만든다. 배달로봇 부품을 조금 바꿀 때 징역 3년 대신 과징금 5000만원을 부과한다. 벌금 상한(3000만원)보다 높여 기업이 함부로 법을 어기지 못하게 막겠다는 것이다.

페인트 공장이 유해화학물질 보관창고를 정기검사 없이 운영한 경우 바로 징역 3년을 주던 것을 “먼저 고치세요”라고 개선명령을 내리고, 안 고치면 그때 처벌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정부 관계자는 “사소한 실수까지 형사처벌해서 전과자를 양산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대신 진짜 나쁜 행위는 징역도 주고 손해배상이나 과징금으로 확실히 책임을 지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개선안을 법으로 만들어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10월 이후에는 법 검토에 시간이 걸리는 과제들을 담은 2차 방안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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