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쉽지 않은 ‘명칭 변경’

이름 바꾸는 게 보통 일이겠습니까. 절박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큰 결심이 필요하겠죠.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백 년 이어온 정체성을 흔드는 것일 테니까요. 그런데 최근 여기저기서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참 많습니다. 이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요. 다소 뜬금없는 상황도 연출됩니다.
몇 개만 추려볼까요. 우선 정부조직 개편에 맞춰 국회 상임위원회 명칭을 변경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지난 28일 여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획재정위는 ‘재정경제기획위’ ▷환경노동위는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 ▷여성가족위는 ‘성평등가족위’라는 새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름을 바꾼 건 소관 업무가 조정돼서입니다. 재정경제기획위는 기획재정부가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되면서 탄생했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는 환경부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성평등가족위는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개편된 데 따른 조처입니다. 상당한 진통이 있었죠. 정부조직 개편 자체를 강하게 반대해온 국민의힘은 본회의 표결에 불참했습니다. 쉽게 바꿀 수 있는 이름은 없는 셈입니다.
앞서 지난 26일엔 정부조직법 수정안이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죠. 검찰청은 78년 만에 간판을 내리고, 이름을 바꾼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이 생깁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위인설법’ 주장을 비롯해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았죠.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둘러싸고도 명칭 논란이 예고됐습니다. 최초 제안자인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24일 심포지엄에서 대학 명칭에 관해 ‘서울대로 통일하는 방안’과 ‘서울대와 한국대를 함께 쓰는 방안’ 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과연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할지, 질곡의 세월을 정체성으로 버텨온 거점 국립대들이 쉽게 ‘이름’을 포기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노동절’이라는 새 이름으로 기념할 가능성이 큽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19일 전체 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관련 법안을 처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인 1922년 5월 1일 조선노동연맹 주최로 기념행사를 한 것을 계기로 해마다 노동절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러다 1957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기념일을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로 바꿨죠. 1963년엔 명칭이 근로자의 날로 변경됐고, 1994년엔 국회가 노동계 요구를 수용해 날짜를 5월 1일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명칭은 그대로 뒀죠.
이에 따라 ‘부지런히 일함’이란 뜻인 ‘근로’가 노동에 대한 통제·수동적 의미를 지니므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돼 왔습니다. 이번 명칭 변경은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는 일에 여야가 손을 잡은 결과로 보입니다.

통일부도 흔히들 ‘북한이탈주민’ ‘탈북민’ 등으로 부르는 귀순 주민을 ‘북향민(北鄕民)’ 등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탈주민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탈(脫)’ 자다. ‘탈북’은 어감도 안 좋다”며 “그래서 통일부가 이름을 좀 바꾸자 해서 용역을 줬다.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오신 분들’이라 해서 ‘북향민’이 지지를 많이 받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올해 11월 용역 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겠네요. 귀순 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과 그들의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사례는 이재명 정부 들어 국정 기조와 철학이 변하면서, 어찌 보면 예상됐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와중에 부산에서도, 결은 조금 다르지만 명칭이 변경된 사례가 하나 등장했네요. 부산시는 29일 지역 ‘향토기업’ 명칭을 ‘명문향토기업’으로 변경한다고 알렸습니다. 지난달 시민 공모로 제안된 377개 이름 중 내외부 심사, 향토기업 임직원 선호도 조사를 거쳐 정했다고 합니다.
부산형 향토기업 제도는 2006년 도입됐습니다. ▷업력 30년 이상 ▷상시 종업원 100명 이상 ▷최근 3년간 평균 매출 200억 원 이상 기업 중 지역경제 기여도가 높은 곳을 인증합니다. 지금까지 68개 사가 선정됐습니다.
애초 향토기업 명칭 변경 논의는, 요즘 젊은이가 ‘향토’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껴 취업을 꺼릴까 봐 걱정된다는 기업인들 요구에서 시작됐습니다. 시대 흐름에 맞추자는 거죠. 하지만 딱히 새롭지 않고, 돌고 돌아 ‘향토’ 앞에 ‘명문’을 붙인 결과가 됐습니다. 부산시는 ‘부산의 향토기업 중에서도 잘 알려졌고(명문), 매출·고용·기술 등 성과가 우수하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는데요. 감이 잘 오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고심과 결심 끝에 이름을 바꿨다면, 그에 맞는 결실도 있어야겠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든, 좋은 일자리 확대든.
명문향토기업을 비롯해 이번에 이름을 바꾼 모든 기관과 조직이 ‘이름값’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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