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TV 망했다? ‘고인 물’ 말은 다르다

이상원 기자 2025. 9. 3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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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 주자 ‘치지직’이 20년 된 SOOP을 앞지르고 있다. SOOP 위기론이 나오고, 인터넷방송 변화도 점친다. 내막을 살피면 이른 주장이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 치지직의 <무한도전> 스트리밍. 시청자들이 방송 관련 채팅을 하고 있다. ⓒ치지직 유튜브 갈무리

9월10일 밤 10시, 생방송 플랫폼 ‘치지직’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방송인 ‘울프’의 시청자 수는 10만명에 달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건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 방송인의 얼굴은 화면 한 귀퉁이에 작게 나왔다. 가장자리 창에는 새로운 채팅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경기가 절정으로 달하자 방송인의 목소리는 커지고 채팅창 ‘ㅋ’의 수도 늘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방송인들의 반응이 돌았다. 다음 날 올라온 유튜브 편집본에도 적잖은 댓글이 달렸다. 인터넷 생방송 문화의 한 풍경이다.

‘치지직’이란 플랫폼은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오랜 기간 온라인 개인 생방송(스트리밍)의 대명사는 ‘아프리카TV’였다. 올해로 20년째 서비스해온 플랫폼인 만큼 그럴 만했다. 그런 아프리카TV가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는 사실도 많은 사람에게 낯설다. 지난해 상호를 SOOP(숲)으로 바꿔서다. 그런데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는 진단도 있다. 후발 주자에게 밀려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이용자 수다. 모바일 앱 조사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SOOP의 지난 7월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172만명이었다. 조사 대상은 ‘동영상 앱’ 전반이었다. 이 부문 MAU 1위는 유튜브(4705만명)이고, 인스타그램·넷플릭스 등 영상 기반 SNS 및 OTT가 SOOP(10위)보다 앞 순위에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에겐 익숙지 않은, SOOP과 흡사한 ‘생방송 개인 방송’ 플랫폼 치지직 역시 순위권에 있다. MAU 242만명을 기록해 7위에 올랐다. 낯선 서비스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갑자기 SOOP을 멀찍이 따돌린 모양새다.

치지직은 신생 매체다. 베타 서비스는 2023년 12월, 정식 출시는 지난해 5월이다. 운영사가 네이버라는 점 때문에 론칭부터 화제를 모았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방송’이라는 업종 특성상 단기간에 새 업체가 기존 강자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실제 베타 서비스 후 몇 달간 치지직의 월간 이용자 수는 SOOP보다 약 100만명 적었다(모바일인덱스 조사 기준). 그런데 정식 출시 뒤인 지난해 중반에는 SOOP의 턱밑까지 추격하더니, 몇 달 뒤부터 역전을 시작했다. 이 격차는 매달 점점 벌어지고 있다.

원인은 뭘까. 기성 매체들은 ‘다양성’으로 풀이한다. 치지직에서 볼 수 있는 방송의 종류가 더 많기에, 상대적으로 균질한 SOOP보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치지직은 게임 방송뿐 아니라 골프, 배구와 같은 스포츠, 아시안게임, 노벨문학상 시상식 중계까지 했다. 운영사인 네이버의 적극적 투자 덕분이다. 특히 두드러지는 건 ‘같이보기’ 서비스다. 치지직은 방송사와 계약해 〈무한도전〉 〈심야괴담회〉 〈더 지니어스〉 등을 24시간 송출한다. 앞서 나열한 콘텐츠 모두 TV나 OTT에서 볼 수 있지만, 치지직에는 인터넷 생중계만의 차별화 요소인 채팅이 있다. 같이 웃고 떠드는 경험은 다른 매체에서는 맛보기 힘든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네이버의 자본을 앞세운 치지직이 각 콘텐츠 시장의 다양한 구성원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트위치 철수 수혜, 치지직이 누린 까닭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관찰되는 시청자들의 이야기는 외부 시각과 사뭇 다르다. SOOP은 치지직만큼 ‘같이보기’ 서비스가 활성화돼 있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예능·애니메이션 다시보기 시청자 수는 많아야 1000~2000명 규모로 MAU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단순히 콘텐츠의 수만 살폈을 때는 양 플랫폼 간 큰 차이가 없다. 스포츠 중계는 SOOP도 하고, 낚시와 같은 취미 영역은 SOOP에서 더 활발하다. 이 밖에 뉴스, 춤, 주식 등 여전히 여러 부문의 방송 중계가 SOOP에서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오히려 ‘SOOP의 콘텐츠가 더 다양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2020년 7월8일 하태경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이 아프리카TV(현 SOOP) 방송 내용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시청자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원인은 따로 있다. ‘트위치 흡수’다. 글로벌 생방송 플랫폼인 트위치가 2023년 12월6일 한국 철수를 발표하고, 이듬해 상반기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대한민국의 망 사용료가 너무 높다는 이유였다. 전성기 트위치는 MAU 수십만 차이로 아프리카TV(현 SOOP)를 넘어서는 1위 매체였다. 트위치가 사라지자 그 이용자 절대다수는 치지직으로 흡수됐다. 데이터로도 어느 정도 입증된다. 현시점 SOOP의 이용자 수(MAU)는 트위치에 밀리던 때와 견주면 소폭이지만 늘었다. 또한 과거 SOOP과 트위치의 총 이용자 수와, 현재 SOOP과 치지직의 총 이용자 수 간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따라서 ‘치지직이 SOOP의 시청자를 빼앗아왔다’ ‘치지직이 인터넷방송에 무관심한 사람을 끌어들였다’는 설명은 모두 합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치지직은 어떻게 SOOP이 버티는 시장에서 트위치 시청자 대부분을 흡수했을까? 여기서도 쉬운 설명은 ‘규모의 경제’다. 이를테면 트위치 출신 인기 방송인들을 좋은 조건으로 영입했기에 치지직은 트위치의 후신이 될 수 있었다는 것. 그런데 시청자들이 근본 원인으로 꼽는 대목은 다르다. ‘문화’ 차이다. 기성 매체에 익숙한 이들은 시청자가 방송인을 맹목적으로 따라간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방송인이 시청자를 따라가는 경향도 있다.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방송과 채팅의 분위기가 SOOP은 자유롭고(혹은 험하고), 트위치는 깨끗했다(혹은 통제가 심했다). SOOP 시청자들은 트위치가 ‘인싸 감성’ ‘노잼’이라며 조롱했고, 트위치 시청자는 SOOP을 ‘더럽다’ ‘친목질한다’며 경멸했다. 기존 트위치 시청자들은 이 ‘문화’에 변동이 없길 바랐다. 트위치 출신 방송인들은 ‘여론’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트위치 철수 직후에는 SOOP으로 옮기거나, SOOP과 치지직에서 동시 송출을 시작하며 추이를 지켜봤으나 이후에는 대부분 치지직에 정착했다.

‘SOOP 위기론’은 어느 정도 섣부른 감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 트위치 철수의 반사이익을 거의 누리지 못한 건 아쉬울 수 있지만 치지직과 SOOP의 격차가 앞으로도 점점 벌어지리라는 전망은 이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터넷방송 문화의 변화를 논할 근거는 더욱 충분치 않다. 길게는 10여 년째 이 시장 MAU는 총 450만에서 500만명 정도로 포화 상태다. 수치만 볼 때 치지직의 새로운 시도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시청자 수가 가장 많은 건 여전히 게임 방송, 특히 e스포츠 중계방송이다. 막대한 도네이션(시청자가 방송인에게 기부하는 것)이 들어와 플랫폼에 수수료를 안겨주는 부문은 선정성·폭력성 논란이 있는 콘텐츠들이다. 모든 플랫폼이 여기서 자유롭진 않다. 인터넷방송은 매달 수백만 명이 24시간 모여들어 고유한 분위기를 형성한 문화현상이지만, 한편으론 외부의 상상 이상으로 ‘고인 물’인 셈이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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