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밥은 먹고 싸웁시다”…전국 농성장 돌며 식사 챙기는 ‘우리밥연대’ [포토다큐]


세상이 무너져도 때가 되면 속수무책으로 배가 고프다. 먹어야 살고, 살아서 먹어야 한다. 기왕이면 맛있게, 천천히, 꼭꼭 씹어서.
‘짜긍곰’(작은 곰)이라 불리는 우리밥연대 김주휘씨(53)는 농성장에 밥을 해다 나른다. 1인분일 때도, 1000인분이 넘을 때도 있다. 어떤 외부 후원도 받지 않고 여력 되는 대로 전국 곳곳을 다닌다. 올해만 해도 거제 한화오션 단식농성장, 비정규직이제그만 노숙농성장, 구미 한국옵티칼 고공농성장… 제대로 센 것만 3940인분, 직접 가지 않고 반찬만 보낸 것까지 합하면 4000인분 넘는 식사를 준비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동료 ‘킁곰(54)’이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계속 대접하고 싶다”며 제안해 우리밥연대가 시작됐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 어느 날, 케이크며 딸기를 농성장에 돌렸다. 누구냐고, 왜 이러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시민’이라고, 싸워줘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2017년 공동투쟁단 밥연대를 시작으로 콜드콜텍, 아사히, 쌍용차... ‘동지’라 부르며 함께 싸웠다.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본사를 점거했을 때는 압력밥솥에 밥을 했다. 설익은 밥을 씹지 못하고 남긴 모습을 보고 압력밥솥을 공수해 왔고, 경찰 앞에서 밥을 안치고 고등어를 구웠다. 밥이 익어가며 솥에서 칙칙 소리가 나자 노동자들이 “집에서 듣던 소리가 난다”며 울었다. 그렇게 울고, 울면서 먹고, 다시 투쟁했다. 주휘씨가 한 밥을 먹고 사람들은 고공에서, 길에서, 추위와 더위를 버텼다. 이 투쟁이 끝나면 저 투쟁이 시작됐으니 그의 부엌은 쉴 틈이 없었다. 경남 통영에서 운영하는 식당 ‘짜긍곰의 부엌’도 장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량으로 음식을 할 공간이 필요해서 문을 열었다.
지난 8일에는 새만금신공항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며 행진한 ‘새 사람 행진단’의 서울 도착에 맞춰 콩국수와 충무김밥을 준비했다. 행정법원 지하주차장 3층에서 콩가루에 물을 섞어 콩국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한술 뜨는 걸 보자마자 다시 차를 몰고 세종호텔로 갔다.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 중인 고진수 세종호텔노조 지부장에게 저녁밥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문어가 먹고 싶다는 말에 돌문어를 삶아왔다. 문어 세비체, 문어 김밥, 문어 초무침, 문어숙회... “당분간 문어 생각도 안 날 만큼 문어를 먹이겠다”며 트렁크에 도마를 펼쳐놓고 정성스럽게 차려냈다.





고기가 좋은지 해산물이 좋은지, 김치는 신김치가 좋은지 생김치가 좋은지 고려해가며 취향에 맞추다 보면 음식 가짓수도 늘어난다. 지난 22일 구미 한국옵티칼에서는 ‘풀코스’를 대접했다. 하루쯤은 길게, 대화하면서 천천히 식사하라는 취지다. 고공농성을 끝낼 때까지 땅에서 공장을 지킨 해고 노동자들이 이번 코스요리의 주인공이다. “이때까지는 고공에 있는 동지들 입맛에 맞춰 요리했으니 오히려 잘 됐다”며 며칠 전부터 몇번이나 메뉴를 수정했고, 전날 밤새 재료를 준비했다. 소스만 해도 다섯 가지, 피클은 알맞게 새콤해지게 미리 담갔고 새벽 시장에서 생선가스용으로 두툼한 횟감을 사왔다.
보코치니 치즈 샐러드, 새우 세비체, 비프 토마토 스파게티, 생선가스, 육회, 안심 스테이크, 물회, 인삼 마 주스까지 여덟 가지 음식이 차례로 나갔다. “연대자가 행복해야 음식을 먹는 동지들도 그 에너지를 받는다”며 노래를 틀고 춤도 춰가며 신나게 요리했다.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스테이크 두 덩이를 먹었다. 킁곰과 짜긍곰은 바지런히 요리하고, 사람들은 아기새처럼 쉬지 않고 입을 오물거렸다. “풀코스 먹으면 복직한대”하면서 예쁜 잔에 포도주스를 담아 건배했다. 식사는 시작한 지 3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끝났다. 주휘씨는 “소스까지 긁어먹는 사람들을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했다.




몇백인분 밥을 할 때는 쌀만 두 시간 넘게 씻는다. 며칠을 준비해 출발하려고 차에 앉으면 힘들어서 눈물이 나올 때도 있다. 몸도 무리를 느낀 지 오래다. 올해만 손목 수술을 두 번 했는데도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직 눈에 밟히는 현장이 많아 “이번 생은 글렀다”싶다. “곰 같은 것들”이라며 곰 앞치마를 사다 준 선배 덕분에 작은 곰, 큰 곰이 돼버렸으니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휘씨는 음식을 할 때, 장을 볼 때마다 동지들이 생각난다. 콜드콜텍 투쟁 노동자였던 고 임재춘씨는 투쟁이 끝나고 나서도 멸치볶음을 먹을 때마다 “주휘 동지가 해준 멸치볶음이 맛있는데 이건 맛이 없다”며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무짠지는, 꽃게는, 고들빼기김치는, 오뎅볶음은... 그는 동지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줄줄 읊었다. 맛있는 거 보면 생각나는 사이, 이걸 사랑이 아니면 또 뭐라고 부를까. 그러니 최선에 최선을 다해 만들어 먹이는 것이다.


정효진 기자 h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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