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나토 침범과 유럽의 딜레마 [오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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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 국한되던 러시아의 군사 활동이 나토 회원국 국경으로 번지고 있다.
실제 폴란드와 에스토니아의 요청으로 나토 조약 제4조가 발동되어 긴급 협의가 열렸지만, 러시아의 침범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동맹 차원의 군사 대응을 가능케 하는 제5조는 발동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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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 국한되던 러시아의 군사 활동이 나토 회원국 국경으로 번지고 있다. 9월 들어 러시아 무인기와 전투기가 폴란드·루마니아·에스토니아 영공을 잇따라 침범하고,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는 러시아발로 추정되는 드론이 출현해 공항과 공군 기지가 일시 폐쇄됐다. 유럽의 긴장은 빠르게 고조되고 있지만,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은 녹록지 않다.
실제 폴란드와 에스토니아의 요청으로 나토 조약 제4조가 발동되어 긴급 협의가 열렸지만, 러시아의 침범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동맹 차원의 군사 대응을 가능케 하는 제5조는 발동되지 않았다. 전면적 대응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수천 달러 정도의 무인기를 격추하기 위해 매번 고가의 전투기나 요격체를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면 유럽은 감당하기 어려운 확전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나토가 러시아의 추가 도발에 단호한 대응을 다짐했지만, 현실의 제약 속에 그 다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러시아의 나토 영공 침범은 이른바 살라미 전술의 전형이다. 이탈리아의 얇게 썰어 먹는 소시지에서 착안된 개념으로, 토머스 셸링은 이를 "상대방의 대응을 자극하지 않는 작은 침범에서 출발해 눈에 띄지 않게 수위를 높여가며, 상대의 단호한 대응을 불러올 극적인 도발은 피하는 방식"이라 정리하였다. 즉, 도발의 수위를 '얇게 나눠서' 상대의 보복과 확전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저강도의 도발을 반복하여 상대를 '끓는 물 속 개구리'로 만드는 기술이다. 이번 러시아의 살라미 전술은 유럽에 확전 위험을 지우고, 대응 수준을 둘러싼 나토 회원국 간의 분열을 유도하며, 궁극적으로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약화시켜 종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굳히려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냉전부터 유지된 나토와 러시아 간의 ‘직접 충돌 회피’라는 레드라인의 선명성이 훼손된다는 점이다. 정치학자 이얀 총과 토드 홀은 1914년 이전 연속된 군사 위기가 열강 사이의 불신이 심화시키고, 외교·안보 정책을 강경하게 만들며, 여기에 전쟁은 피할 수 있다라는 역설적 자신감까지 불어넣어 1차 대전의 씨앗이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작은 도발이 자멸적 안보 딜레마를 발동시킬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이렇게 '끓는 물 속 개구리'의 운명을 피하기 위한 군사적 선택이 더 가혹한 위기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딜레마가 유럽 앞에 놓여 있다.

김인욱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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