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공계 매년 580만명 배출 中, 1년 출생 23만명 韓은 의대로

조선일보 2025. 9. 3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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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나미 어떻게 넘을 것인가] [6]
지난달 4일 베이징에서 열렸던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대회를 앞두고 중국 대학생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설치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중국 쓰나미 어떻게 넘을 것인가] [6]

‘짝퉁의 나라’ 취급 받던 중국이 불과 10여 년 만에 한국을 추월해 미국을 위협하는 기술 강국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젊은 인재 대군’이 있다. 중국도 저출산을 겪고 있지만, 매년 이공계 대졸자만 580만명 배출한다. 한국과 근본 체력 자체가 다른 것이다. 저출산에 더해 반도체 계약 학과 학생들마저 의대로 이탈할 정도로 이공계 기피 현상까지 겪는 한국이 중국과 경쟁할 수 있을까.

중국의 실리콘밸리 선전(深圳)은 인구 1700만명의 평균 연령이 33.6세다. 서울(45.2세)이나 창원(45.8세) 등 한국 도시보다 훨씬 젊다. 최대 빅테크 업체 화웨이는 전체 직원이 21만명가량인데, 이 중 연구·개발(R&D) 인력이 11만4000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한국 통신 3사인 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전체 임직원을 합친 수(3만3000명)의 4배에 가깝다. 화웨이 연구원들 평균 연령은 27세다. 한국 통신 3사 연구소는 40대 중·후반이 주축이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의 R&D 인력도 2만600여 명이고, 절반 이상이 20대다. 한국 대기업에서는 젊은 20대 직원 수가 부장·임원급인 50대보다 적어지는 세대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첨단 기술의 심장부에서 엄청난 숫자의 20대 청년들이 밤낮없이 연구하는 중국과 그 반대인 한국. 기술 전쟁의 승패는 이미 여기서 갈리고 있다.

지금 중국의 20·30대는 부부당 자녀 1명만 허용하는 시대(1978~2016년)에 태어나 부모의 전폭적인 교육 지원을 받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 젊음은 그 자체로 혁신과 동의어다. 기존 관성을 벗어난 과감한 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기술 전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도 젊음이다. 지식은 폭발적으로 융합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중국도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명(한국은 0.75명)으로 떨어질 정도로 저출산을 겪고 있다. 하지만 한국만큼 심하지 않은 데다 14억 인구라는 절대적 규모가 충격을 완충하고 있다. 작년 중국 출생아 수는 954만명으로 한국(23.8만명)의 40배였다. 중국의 1년 이공계 대학, 전문대 졸업자가 580만명이다. 한국 1년 이공계 대졸자는 14만명 정도다.

중국 이공계 인재 양성은 공산당의 일관된 계획 아래 이뤄지고 있다. 2025년까지 고급 기술 인력 1000만명 양성 계획부터, 대학에 AI·로봇·반도체 특화 커리큘럼 도입을 지시한 ‘제조업 인재 발전 계획 지침’, 칭화대 등 명문 대학 15곳을 지정해 AI 특화 교육에 들어간 ‘AI 101 계획’까지 모든 정책이 하나의 목표를 향했다. 바로 ‘기술 굴기’다.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 수상자 등 영재를 대입 시험 없이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바오쑹(保送)’ 제도는 천재급 유망주들이 입시 부담에서 벗어나 연구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인재 양성 전략은 초기에는 해외 유학파를 다시 불러들이는 데 집중됐다. ‘천인계획’ 등을 통해 서구 기술과 경험을 가진 인재들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해 단기간에 기술 격차를 좁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류가 바뀌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한 AI 모델 ‘딥시크’를 개발한 량원펑과 그의 팀은 모두 중국 본토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순수 국내파다. 이제는 외부 수혈 없이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길러낼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매년 국내에서만 5만명 이상의 이공계 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축적된 연구 인력의 양은 연구 수준의 질을 끌어올렸다. 과학기술 연구의 질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에서 중국은 2023년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격차를 더 벌리며 2년 연속 정상을 지켰다. 글로벌 상위 10개 연구 기관 중 중국과학원(1위), 중국과학기술대(3위), 저장대(4위), 베이징대(5위) 등 8곳이 중국이다. 중국 이외에 10위권에 포함된 곳은 미 하버드대(2위)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9위)뿐이다. 한국 서울대는 52위, 카이스트는 82위에 그쳤다. 논문의 수준을 평가하는 ‘상위 1% 피인용 논문’ 수에서도 중국은 2022년 미국을 넘어서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중국의 암기식·주입식 교육으로는 창의적 인재를 키울 수 없다”던 서방의 조롱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중국의 인재 양성 배경엔 자본주의보다 더 철저한 ‘성과주의’가 있다. 중국은 ‘인간의 욕심을 멀리한다’는 공산당식 이념을 오래전에 버렸다. 화웨이는 “인간의 욕망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順人欲)이 리더의 도리”라며 최고의 성과에 최고의 보상을 약속한다. 좋은 성과를 낸 BYD 엔지니어 연봉이 7년 만에 3600만원에서 2억1600만원으로 껑충 뛰어오를 정도로 파격적이다. 중국 명문대 이공계 박사의 초봉은 2억원을 훌쩍 넘는다. 중국 대졸자 초임(약 1200만원)의 16배가 넘는다.

파격적인 보상 시스템이 있기에 중국의 젊은 인재들은 ‘주 6일,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100일간 분투하자’는 CATL의 ‘896’ 같은 고강도 업무를 감내한다. 휴식보다 성취를 택한 이들의 땀방울이 미국의 기술 봉쇄를 뚫는 동력이 된 것이다. 주 52시간제 준수를 위해 오후 6시면 전원과 컴퓨터가 꺼지는 한국 연구소와 전혀 다른 현실이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을 겪는 한국이 인구가 28배 많은 중국과 인재의 양으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이 아닌 질, 전면전이 아닌 ‘선택과 집중’으로 맞서야 한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미 20여 년 전에 “21세기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는 인재 경영의 시대, 지적 창조의 시대”라며 S급(특급) 천재 양성을 역설했다. 정부 차원에서 국민을 먹여 살릴 핵심 기술 분야를 정하고, 그 인재 양성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과감히 철폐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최고 인재에게 중국보다 파격적인 보상을 약속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인재 전쟁에서 우리는 이미 지고 있다. 더 밀리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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