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조지아가 묻는 ‘우방’의 조건

뉴욕/윤주헌 특파원 2025. 9. 2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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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준공한 친환경차 전용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현대차 미국법인 제공

미국 조지아주(州) 애틀랜타 공항에서 약 3시간 30분을 달리면 끝없이 펼쳐진 허허벌판에 대규모 현대식 공장이 나타난다. 전체 부지 면적이 여의도의 약 4배(1176만㎡)에 달하는 이곳은 지난 3월 준공된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다. 미국 남부 시골 마을에서 한국 대기업 간판을 단 최첨단 공장을 실제로 보면 초현실적이다. 이달 초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한국인 근로자 317명을 구금한 사태가 벌어진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은 현대차 공장과 거의 붙어 있다. 정상적으로 공사가 진행됐다면 또 다른 최신식 공장이 올해 안에 이곳에 세워졌을 것이다.

이달 초 ‘한국인 구금자 사태’를 취재하러 조지아주에 3박 4일간 머무르면서 미국 지역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한국 기업을 봤다. 흔히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 국가를 돕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업 세계는 달랐다.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라 해도 구석구석 낙후되고 생활하기 불편한 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마치 신문물이라도 전수하는 듯 막대한 투자를 하고 고용을 하며 기술을 가르치는 등 지역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대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현대차 공장에서 30분 떨어진 곳에는 한국 협력 업체 공장이 있었다. 본관 유리문을 열자 현지인이 안내 데스크에서 맞았다. 이 공장 직원은 대부분 현지인이었다.

이번 사태는 한국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면서도 동맹국 국민을 수갑에 채워 구금하고, 오랫동안 지적돼 온 이민·비자 제도를 고치지 않은 미국 측 과실이 분명하다. 다만 조지아에 머무는 동안 ‘왜 미국은 한국 기업을 겨냥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정부 기관이 단속에 투입됐고 전 과정은 영상으로 녹화됐다. 미 정부가 ‘역사상 최대 단속’이라고 과시할 정도였으니 장관급까지는 사전 보고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통의 우방국인 한국 기업을 상대로 논란을 부를 단속을 한 것은, 현재 미국이 한국을 어떤 파트너로 보는지 알려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한미 관계가 동맹론자들이 탄식할 만큼 가벼워진 이유를 현 정부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하버드대 스티븐 월트 교수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은 5년마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우방국인 것은 맞지만,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100% 신뢰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미국 조야(朝野)의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 기업과 국민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땀 흘리며 성과를 내는데, 정치권은 그런 노력에 걸맞은 안정적인 외교 기반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민간의 피땀 어린 노력이 정치적 리스크에 발목 잡히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이번 조지아주 사태는 우리 정치권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외교적 신뢰와 국가의 격을 높일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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