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 김해, 낙하생 한시로 되살아나다
좌장 김남이 토론자 하강진 등 3명
낙하생 이학규 삶·문학 재조명
문화적·인문학적 가치 되새겨

제2회 김해역사문화학술대회 '落下生 李學逵-조선 후기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김해'가 롯데호텔앤리조트 김해수로홀에서 지난 26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5시 30분까지 열렸다. 이 학술대회는 김해문화원, 동양한문학회, 김해민속박물관이 주최하고 주관했다.

김종간 전시장(김해향토문화연구소 연구소장)은 기조 강의문에서 "나 김종간은 이 땅, 이 김해가 가락국을 도읍한 영광과 축복의 땅이라고 자긍하면서 살아왔다. 김해가 결코 조선 8도의 어느 땅보다 살기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낙하생의 작품은 나를 분노케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감 없이 당시 김해의 희로애락 삶과 부끄럽고 묻고 싶은 삶을 소롯이 담아낸 낙하생이 아주 그립다"면서 "낙하의 시문은 보석이다. 김해의 1800년대 초기 사회를 만나고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일 것이다"고 했다.

제1발표자 정석태 석좌교수(한국고전번역원)는 '조선 후기 김해지역과 낙하생 이학규' 연구 발표를 통해서 "낙하생 이학규는 한양에서 출행했고, 인천 소래에서 세거했다. 아버지는 이응훈, 어머니 여주이씨며, 부인은 다산 정약용 가문의 나주정씨다. 아버지 이응훈은 이학규가 태어나기 5개월 전에 2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학규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고 외할아버지 이용휴에게 교육받았다. 약관의 나이에 문학(文學)으로 정조에게 인정받아 포의로 '규장전운' 편찬사업에 참여하고 왕명으로 원자궁에 내릴 책을 교감했다. 1800년 순조 1년 신유사옥에 삼종숙 이승훈 등과 함께 구금됐는데. 조사 결과 천주교와 무관함이 밝혀졌으나 전라도 능주로 유배됐다가, 이해 10월 내종제인 황사영의 백서사건이 일어나 다시 국문을 받고 김해로 유배지를 옮겨 1824년까지 지냈다. 해배 뒤에도 다시 김해로 내려와 지내다가 만년에 충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며 이학규의 생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어서 "이학규가 쓴 많은 글들이 아직 많은 부분이 번역이 안 돼있다. 이것은 김해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이학규가 쓴 글이 사실상 번역이 어려워 손을 대기가 쉽지는 않다"고 말하며 김해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가 꾸준히 돼야 한다고 했다.

제3발표자 이국진 강원대 한문학과 교수는 "'이학규와 김해의 산과 사찰'이라는 주제로 이학규가 서림사 신민 스님과 유탄 스님에게 쓴 한시의 이야기로 풀어갔다.
'어디서 왔는가? 학이 둥지 트는 그 자취요/ 어디서 사는가? 거북이 노니는 넓은 모래톱일세'(서림사 신민 스님께 드리는 게송, 일부분)
'나뭇단에 연기 없고 등잔불 가물대는/ 서림사 절 방에서 꿈길만 오락가락/ 밤 들어 산속 나무. 비오는 듯 소리 내니/ 비로 첫 추위에 잎 지는 때로구나'('방에 서림사 유탄 스님의 방에 묵으며', 일부분)

발표가 끝나고 김남이 좌장(부산대 교수)이 토론을 이끌어 나갔다. 토론자로 (하강진, 이성혜, 최금자)교수가 참여했다. 요약하자면 신유박해라는 사건과 조우하면서 김해라는 곳으로 유배 생활을 했던 유배의 낙하생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던졌다. 깜깜했던 김해에 와서 낙하생의 시선으로 정말 철저한 기록 정신으로 만들어 놓은 그 19세기까지의 김해를 어떻게 과거로부터 다시 조명해서 현대로까지 그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학술대회에 참여한 하성자 전시의원은 '낙하생 이학규가 남긴 글들은 당시 김해와 주변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시문들에서 알 수 있듯 지역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 겉치레 없는 글을 썼다는 점이 놀랍다"며 "말하자면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한 글들이기 때문에 김해학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리라 본다. 학술대회에서 다뤄졌고 또 늘 생각해왔던 문제점은 선비 이학규라는 인물이 조선 후기 김해와 연결되는 많은 시문들 가운데 원전 번역이 미진하다는 점이 아쉬움을 넘어서 문제점이라고 보기에 한시바삐 저술 번역이 실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인문학 도시 김해에 소중한 보물이 될 한글 완역서를 누구라도 읽고 다양한 콘텐츠로 확산된다면 강진이나 보길도나 흑산도가 가진 유배문학의 한 꼭지로써 김해와 낙하생은 충분한 위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본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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