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색해진 디지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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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정부의 디지털 행정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정부는 그간 재난 상황에서도 3시간 이내 복구가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공언해왔으나 현실은 수 일이 지나도록 수백 개의 전산 시스템이 멈춰서는 초유의 사태였다.
'디지털 정부'라는 간판이 무색해진 국가 운영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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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정부의 디지털 행정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정부는 그간 재난 상황에서도 3시간 이내 복구가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공언해왔으나 현실은 수 일이 지나도록 수백 개의 전산 시스템이 멈춰서는 초유의 사태였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화재 사고가 아니다. '디지털 정부'라는 간판이 무색해진 국가 운영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다. 국정자원은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전산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는 국가 IT 인프라의 총괄 기관이다. 정부24, 국민비서, 인터넷우체국, 119 신고 시스템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서비스 647개가 동시 중단된 것은 충격적이다.
대전 본원에서 불이 난 한 층이 멈추자 전국의 서비스가 마비된 것은, 분산 운영을 표방해 온 정부 설명이 사실상 허상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광주와 대구 분원이 존재하지만 즉시 대체가 불가능했던 이유는 '쌍둥이 서버' 개념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크게 드러난 문제는 데이터 이중화와 재난복구 체계의 불완전성이다. 일부 데이터는 백업돼 있었으나, 운영 환경 전체를 즉시 전환하는 DR 이중화는 구축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데이터 손실은 면했으나 국민이 체감한 불편과 혼란은 막대했다. 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2023년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정부가 3시간 내 복구를 약속했지만 이번 화재는 그 약속이 공허했음을 증명했다.
주목할 것은 예산과 정책의 지연이다. 충남 공주에 DR 전용 클라우드 센터를 짓겠다던 계획은 2012년부터 13년째 표류 중이다. 예산은 줄고 개소 일정은 미뤄져 '명맥 유지' 수준에 머물렀다. 정작 국가 핵심 데이터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는 지지부진하면서도, 겉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 디지털 정부'를 자랑해온 셈이다. 이번 사태는 이러한 정책 불일치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는지를 일깨워 준다.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 전산망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주문해왔다. 국가 1등급 정보는 반드시 실시간 이중화 체계로 관리해야 하며, 단순히 백업 서버를 보유하는 수준을 넘어 액티브-액티브 방식으로 즉시 동기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원 서비스와 같은 대국민 시스템은 민간 클라우드까지 활용해 가용성을 높이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디지털 정부는 더 이상 미래지향적 구호가 아니다. 국민은 이미 일상 대부분을 온라인 행정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 전산이 멈추는 순간, 출생 신고부터 세금 납부, 긴급 구조 요청까지 삶의 기본 기능이 마비된다. 데이터 안전망은 곧 국민 안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불가피한 사고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해야 한다. 국민에게 무색한 디지털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디지털 정부로 거듭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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