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사상초유의 UPS 배터리 화재… “이삿짐 싸듯” 날랐다

박한나 2025. 9. 2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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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없던 UPS, 화재로 첫 사례
전문성 부재 등 인재 비판 목소리
정부, 관리·운영 부실 책임 불가피
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 등의 화재 정밀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의 화재로 사상 초유의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가 일어난 것과 관련, 정부의 안일한 하청업체 지정과 해당 업체의 전문성 부재가 낳은 완전한 ‘인재(人災)’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저가 경쟁 입찰로 선정된 업체들이 ‘이삿짐 센터’ 식으로 무지한 상태로 배터리 교체 작업을 한 탓에 화재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복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의 발화점인 데이터센터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배터리의 경우 지금까지 화재 사고가 발생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충전 용량을 50% 밑으로 낮추기만 했어도 화재가 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이동 전에 충전상태를 충분히 낮춘 상태에서 작업했으면 대형 화재로 확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와 업체 모두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고 있다. 기본 안전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인재라는 것이다.

정부는 무자격 인력 투입을 부인했지만, 이와 같은 이유로 업체들의 전문성에 대한 의문은 커지고 있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은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자원 화재 브리핑을 열고 “무자격 업체가 배터리 운반에 투입됐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배터리 이전 준비 중 화재가 발생했고 작업자는 자격을 보유한 전문 기술자이자 화재 부상자”라고 밝혔다.

김 차관은 당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현장에 투입된 인력은 8명으로 전기 제어장치 회사인 ‘일성계전’과 배터리 교체 작업을 하는 협력업체 ‘내일파워’ 등 3개사 소속 직원들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제기된 아르바이트생 투입 의혹을 부인한 것이다.그러나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직원들이라고 해서 전문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전산망 시스템인 만큼 해당 업체들이 대형 데이터센터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배터리 교체나 이송 같은 고난도 작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해온 경험이 충분한지 이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해당 작업을 했다는 일성계전의 경우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중소기업이고, 다른 협력업체들 역시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UPS용 배터리의 방전 작업 미이행 가능성도 화재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동 설치시 방전 작업을 진행한 뒤 작업하는 것이 배터리 제조사 매뉴얼이자 안전 관행이다.

국제 표준과 배터리 제조사 지침에서는 충전상태(SOC)를 50% 이하 구간으로 낮춘 뒤 작업하는 것을 안전 작업 권장 범위로 명시하고 있다. 방전을 하지 않으면 내부에 축적된 전기에 의해 전력을 차단해도 스파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SOC를 절반 이하로만 방전해도 철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부 충격이나 돌발 상황에 따른 화재 위험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방전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됐다면 인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UPS 특성상 제어방전을 쉽게 걸 수 있다고 지적한다. UPS는 평상시 메인 전원에 연결된 상태로 대기하고 정전 등 비상 상황이 생기면 즉시 비상 전원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인 만큼 전산 시스템이나 관리 소프트웨어로 SOC를 낮추는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부와 외주업체 모두 향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위험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작업임에도 안일하게 비용만 보고 입찰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다.

통상 국정자원이 발주하는 용역은 일반적으로 국가계약법에 따라 경쟁 입찰을 진행한다. 장비 이송이나 설치 같은 사업은 통상 최저가 낙찰제나 적격심사제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UPS 화재는 거의 100% 방전 작업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정부는 원칙만 제시하고 세부 절차와 실행은 전문업체의 경험과 기술에 의존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지만 선정 과정에서 전문성 검증만 제대로 했어도 기본 안전 절차는 수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4시 기준 행정정보시스템 647개 중 73개만 복구된 상태다. 단순히 배터리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데이터 백업 관리 부실도 보여준다. 기본적인 이중화·분산 저장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관리 체계와 운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자격 여부와 무관하게 현장에서 기본 절차를 소홀히 했다면 업체의 책임이다. 국정자원 화재로 완전 소실된 96개 민원·행정 업무시스템에는 통합보훈, 국민신문고, 국가법령정보센터, 안전디딤돌 등 국민 일상에 파급효과가 큰 정부 서비스가 상당수다.

“불만 나면 배터리 탓”…업계, 잘못된 인식 ‘전전긍긍’

배터리 업계는 ‘노후화된 배터리’를 이번 화재 원인으로 지목하는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에 화재가 난 UPS용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2014년 8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납품한 제품으로 권장사용 연한(10년)을 1년 이상 넘긴 상태다.

그러나 2010년대 초반 UPS용 배터리들은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설계와 안전성 확보 특성을 갖추고 있다. 또 배터리 판매·관리 업체인 LG CNS도 지난해 6월 점검에서 실시한 안전점검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배터리 자체 특성 때문이 아니라 SOC 관리 실패가 본질”이라며 “사실 SOC가 낮으면 불이 안 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화재나 에너지저장장치 사고 보도가 많다 보니 불이 나면 배터리 문제로 굳어지는 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영준 성균관대는 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는 “UPS는 전기차 배터리처럼 자주 충·방전을 반복하지 않아 화재 확률이 적은 장치인데 방전 유무가 중요할 것”이라며 “물리적으로는 충격이나 낙하에 취약하기 때문에 전문 인력이 작업해야 하는데 이번 화재를 계기로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관리 체계를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나 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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