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박찬욱!’···그가 제시하는 ‘딜레마’의 가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개봉 첫 주말에 100만 고지를 밟았다. 박찬욱 감독이 꺼내놓은 이야기가 또 통했다는 의미다.
초기 흥행작인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어쩔수가없다’에 이르기까지, 박 감독의 지난 25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딜레마’(dilemma)다.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박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을, 그리고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항상 이 딜레마라는 구렁텅이에 던져놓곤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군사분계선을 넘은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을 그린다.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이들은 뜨거운 우정을 나눈 상대 병사와 나를 동시에 살릴 수 없는 상황 아래 고민한다. 같은 맥락으로 ‘박쥐’의 주인공은 금욕을 통해 절대선을 추구해야 하지만 타인의 피와 욕정을 탐하는 뱀파이어가 된 신부,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은 범죄 피의자를 사랑하게 된 형사였다.
또 다른 작품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주인공 동진(송강호)이 자신의 딸이 죽은 강에서 류(신하균)의 발목 아킬레스건을 끊으며 “너 착한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라고 말한다. 착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동진의 처연한 표정은 박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어쩔수가없다’다. 주인공 만수(이병헌)는 근면 성실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해고된 후 토끼 같은 두 자식과 아내, 그리고 대출금이 잔뜩 끼어있는 집을 지키기 위해 경쟁자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착한 가장에서 하루 아침에 범죄자로 전락하며 만수는 되뇐다. “어쩔수가없다….” 박 감독이 제시하는 고약한 딜레마를 단 한 마디로 응축시킨 대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제목으로 더할나위가 없다.
박 감독 역시 딜레마를 향한 자신의 애정과 고집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난 22일 진행된 언론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박 감독은 “제가 딜레마를 좋아한다”면서 “그런데 그냥 딜레마가 아니다. 짜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가 아니라 윤리적 딜레마”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감독은 “(‘어쩔수가없다’ 속 인물들은) ‘어느 쪽을 선택해야 올바른 길이냐’라는 질문에 빠진 사람들”이라면서 “완벽하게 좋은 게 하나 있다면 선택에 어려움이 없겠지만 좋기는커녕 둘 다 나쁘다. ‘뭐가 더 나쁜지 덜 나쁜지’ 이런 선택이면 고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딜레마는 만수의 아내 미리(손예진)에게도 적용된다. 미리는 만수의 달라진 행동을 의아하게 여긴다. 그리고 여러 상황을 조합해가는 과정 속에서 만수가 저지른 죄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미리는 또 고민한다. 만수의 잘못을 수면 위로 드러내 윤리성을 완성하는 순간, 만수는 죗값을 치르게 되고 미리의 삶은 파괴된다. 그렇다면 미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더 나은 것일까?
박 감독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사람을 묘사하면, 도덕적 질문을 공유할 수 있다. 또한 ‘나라면 어떻게 할까’ 라는 생각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 관람을 통해 관객들에게 윤리적인 고민을 깊게 해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이같은 메시지를 심은 이유를 밝혔다.
사실 딜레마는 일상이다. 결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숱한 인간들이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딜레마에 봉착한다. 그리고 깊은 고민 끝에 저마다의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게 꼭 옳은 선택인 건 아니다.
박 감독은 이런 딜레마를 보다 극적으로 포장하는 남다른 재능을 가졌다. 여기에 박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말맛’이 더해지며 근사한 영화 한 편으로 탄생된다. 그리고 관객들은 2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캄캄한 극장에서 그 딜레마 속 돌파구를 찾기 위해 주인공과 함께 머리를 싸매며 박 감독이 만들어놓은 세계관 속에서 기쁘게 허우적댄다. 박 감독이 추구하는 ‘영화를 통한 경험’이다.
그 안에서 박 감독은 항상 ‘공감’을 물었고, 또 적절한 답을 찾는 데 성공했다. 대중과의 소통이다. 박 감독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야기꾼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해외 유수의 영화제를 섭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심오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며 접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공동경비구역 JSA’(580만), ‘아가씨’(429만), ‘박쥐’(221만), ‘헤어질 결심’(190만) 등 박 감독은 늘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어쩔수가없다’는 200개가 넘는 국가에 선판매됐고, 개봉 후 닷새 만에 100만 고지를 밟았다.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또 다른 작품에 투자할 여력을 줘서 영화 산업을 선순환하게 만드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혹자는 “비싼 돈 주고 굳이 극장에 왜 가냐?”고 묻는다. 구독료를 내고 한 달 내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득세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1만5000원을 내고 극장에 갈까?” 혹은 “1만 5000원를 내고 OTT를 구독할까?” 두 가지 상황이 딜레마가 되려면, 그 정도 값어치를 지닌 영화가 나와줘야 한다.
그리고 박 감독은 그런 딜레마를 성립시키기 위한 끊임없이 양질의 영화를 내놓는데 몰두하는 영화인이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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