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우리나라 망한다”…‘세상에 없는 기술’ 못 만들면 미래 없다는데

이가람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r2ver@mk.co.kr) 2025. 9. 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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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상 교수·이정동 교수 좌담회
세상에 없는 기술이 국가 경쟁력
정부·기업·대학에 줄줄이 경고등
실패인정·규제해제 ‘생태계 변혁’
김정상 듀크대 교수(왼쪽)와 이정동 서울대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학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용석 기자]
교과서를 버려라. 교과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지식은 담고 있지만, 미래에 무엇이 알려질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그 어느 교과서의 이야기도 진리일 수 없다는 삐딱한 태도로 질문하고 주장하고 논쟁해야 한다. 주어진 교과서를 익히는 사람에서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으로, 자신만의 개념을 제시하고 도전하는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3년 3월 서울대 입학식 축사의 일부분이다.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를 잘 푸는 능력으로는 혁신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의미인데, 누구보다도 교과서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명문대 입학생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동시에 우리나라 행정부와 산업계를 향한 일침이기도 했다.

세계 산업·기술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선진국을 가장 빠르게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의 위치였다. 덕분에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다.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기술을 창조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외치지만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달성 가능한 목표를 우선하는 소극적 태도와 실패를 책망하는 사회 분위기, 획일화된 평가 기준 등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매경AX는 좌담회를 열어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해 국가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정책·교육·산업 혁신 방안을 짚어 봤다. 김정상 듀크대 교수와 이정동 서울대 교수가 참여했다. 좌담자들은 공통적으로 ▲정부·기관의 친혁신 전환 ▲대기업의 적극적인 스타트업 인수합병(M&A) ▲해외시장을 겨냥한 창업·투자 활성화 ▲대학의 교육 과정 개혁 등을 거론했다.

김 교수는 “미국 국방부 산하 첨단연구계획국(DARPA)은 연구자들에게 언제나 성공할 확률이 낮은 과제를 해결하라는 과제를 낸다”며 “기존의 기술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기술을 창출할 것을 지시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DARPA는 미래 국방 기술 및 방위 산업 연구에 집중하는 기관이다. 연 국방비 7000억달러(약 981조원) 가운데 8%에 달하는 600억달러(약 84조원)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 판정보다는 해답을 찾는 과정을 중시한다.

[사진 = 챗GPT]
일례로 DARPA는 2004년 자동차 경주대회 그랜드 챌린지를 개최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완전 자율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개발하려는 목표였다. 당시 참가자들은 무인 차량으로 사막 코스를 달려야 했는데, 아무도 완주할 수 없었을 정도로 험난했다. 하지만 거듭된 시행착오가 자율 주행 기술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외에도 전자레인지, 인터넷, 스텔스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무인드론, 수술로봇, 인공지능(AI) 등이 DARPA에서 탄생했다.

김 교수는 “국가가 실패를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쓸모없는 투자는 없다”며 “정부는 짧은 시간에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나 당장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기술을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 모두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연구를 정부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에 아무도 컴퓨터를 생각하지 못했다. 1970년대에 아무도 인터넷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이 일상이 됐다”라며 “앞으로 30년 후에 무엇이 산업과 삶을 이끌게 될지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제품을 최초로 만들어 상용화한 기업들이 산업계를 주도했다. 기술·산업 발전 흐름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미국증권시장 상장기업의 시가총액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1960년대를 이끌었던 시총 1위 종목은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였다. 전형적인 제조업이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면서 인터내셔널비즈니스머신(IBM)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2000년대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우로 증시를 좌우했고, 2010년대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애플의 시대가 열렸다. 최근에는 AI의 핵심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엔비디아가 부상했다. 전 세계 기업 중 처음으로 시총 4조달러(약 5520조원)를 돌파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지난 7월 16일(현지시간) 스텔스 무인 항공기 프로토타입인 XQ-58A 발키리가 전시된 펜타곤 정원에서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처럼 독보적 경쟁력을 보유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 전환이 시급하다. 현재 산업계는 수많은 규제와 인증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신생 기업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기존 기업이 두려워하는 역동적인 생태계가 구축돼야 하지만 경직된 구조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공무원들의 잦은 보직 변경과 비 전문화는 신사업 정책에 대한 이해도와 추진력을 떨어뜨린다. 외부에서 전문가를 초빙해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더라도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감사·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소방청이 드론만으로 소방호스를 아파트 50층 높이까지 끌어올려 발화지점을 정확히 타격하는 연구개발(R&D) 용역을 수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초고층화 주거환경에 도입할 필요가 있는 기술이고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실패한다면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 뻔하다.

이 교수는 “친시장은 사실상 친기업과 동일한 표현이다. 우리는 친혁신을 지향해야 한다”며 “안 되는 이유는 천 가지인데 되는 이유는 한 가지다. 그러면 도전해야 하는데 안 되는 이유 천 가지로 막아선다”고 지적했다.

이어 “타다가 모빌리티 서비스를 개시하려다 좌초된 사례가 있다. 새로운 기업가적 시도가 제도적 경직성이나 촘촘한 이해관계에 짓눌려 원천 봉쇄되는 환경에서는 신산업을 기대할 수 없다”며 “급격한 변화가 부담스럽다면 혁신기업 위주로 규제를 풀어 성장을 지원해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정상 듀크대 교수(왼쪽)와 이정동 서울대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학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용석 기자]
좌담자들은 규제 해제와 함께 자금 지원도 정부의 역할로 거론했다. 스타트업의 고품질 제품을 정부가 가장 먼저 구매해 주는 혁신 조달 사업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미 성공 사례도 있다. 스타스테크는 해양 폐기물인 불가사리를 활용해 친환경 제설제를 생산했다. 중국산 제설제보다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어 판로 확보에 애를 먹었지만, 정부가 지원금을 투입해 선제적으로 불가사리 제설제를 구입했다.

불가사리 제설제는 중국산 제설제와 달리 도로 포장이나 차량 하부를 부식 억제 효과가 있다. 도로 보수 비용과 차량 수리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기에 국민 이익으로 돌아왔다. 비싼 값을 치른 것이 아니라 미래 비용을 줄인 투자였던 셈이다. 또 스타스테크의 다음 사업 도약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이 교수는 “청와대에서 경제과학특별보좌관으로 근무할 때 공공기관이 물품을 구매할 때 관련 예산의 1%는 혁신 조달 아이템으로 선정된 제품을 구매하도록 의무화했다. 정부에 제품을 납품했다는 증거는 기업의 수출에 도움이 되는 레퍼런스”라며 “애플도 그렇게 컸다. 미국 교육부가 애플의 컴퓨터를 학교에 깔아 줬다. 이것이 정부가 재정을 잘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M&A도 권장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M&A가 불가피하다. M&A는 시장 판도를 바꾼다.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는 자일링스를 인수하며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신중하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에너지 계열사 합병을 단행하기는 했지만 구조조정 성격에 불과하다.

스타트업이 지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대기업의 내부 개발이다. 스타트업이 내놓은 기술을 대기업이 시간과 자본을 들여 따라잡는다. 대기업이 M&A를 통해 스타트업을 품었다면 이중 지출을 막고 상위 기술 개발에 착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부정적 시선이 대기업의 M&A를 주저하게 만든다.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인수했을 때도 재벌기업이 신생기업을 집어삼켰다는 부정적 시각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교수는 “대기업의 M&A가 편법 취급을 받지 않도록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대기업의 전략적 인수와 투자가 활발해야 기술이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가고 인재가 시리얼 창업으로 더 큰 도전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경DB]
아울러 대학의 역할 변화 없이는 혁신이 어려울 것이라는 자성도 나왔다. 고정 학과가 아닌 통합 학과로의 전환과 학기 단위의 강의가 아닌 장기 프로젝트의 필요성이 거론됐다. 예컨대 1년짜리 창업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들이 아이디어 제시→실패→피벗→협업→성공의 사이클을 반복하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학점은 얼마나 시험 점수가 높은지가 아닌 얼마나 창의적인 시도를 했는지에 따라 부여한다.

학생들이 연구에 주력할 수 있도록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지급해 주는 장학 체계 개편도 시급하다. 장학금의 도움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학생들이 학교에 기부금을 낼 것이고 그 기부금이 다시 장학금으로 쓰이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면 갈수록 자금 부담이 줄어들기에 초기 재원 확보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대학이 단순히 지식을 공급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훈련시켜야 한다”라며 “국내시장이 좁다면 해외시장을 겨냥한 아이템을 구상할 수 있도록 글로벌 의식 함양과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부모가 의대 가지 말고 창업하라고 권장하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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