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주 4.5일제’ 논의…근로시간 단축에만 매몰되면 미래 없다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2025. 9. 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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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유럽은 “더 일하자”…기업 규모·업종·직무별 역차별도 우려 
준비 없던 ‘정년 연장’, 청년 일자리 감소 부메랑…충분한 숙의·고민 필요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정부가 연내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주 4.5일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9월16일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에도 주 4.5일제 추진이 포함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강조한 주 4.5일제는 국내 연간 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려는 데 목적이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넘어 '여유가 있는 삶'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주 5일제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1990년대만 하더라도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하는 5.5일제가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주 5일제가 모든 사업장에 공통으로 적용된 건 2011년으로 아직 15년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또다시 4.5일제가 정치와 경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논의 의제로 부각한 이유는 일의 방식, 그리고 근로시간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있는 광화문 인근의 빌딩 야경 ⓒ시사저널 임준선

'롤모델' 유럽에선 근로시간 확대 놓고 고민

코로나19를 겪으며 사람들은 온라인 회의와 재택근무를 통해 시행착오가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매일 만나지 않아도 조직의 생산성과 성과가 하락하지 않는 점을 체감했다. 참고로, 국내 대기업과 판교의 IT 기업 등 일부 조직은 격주로 금요일을 쉬거나 금요일 오전만 근무하고 퇴근하는 주 4.5일제를 이미 도입해 시범운영하고 있다. 해당 기업에선 임직원 만족도 향상과 이직률 감소 등 긍정적 효과도 나타났다.

그렇다면 4.5일제 도입을 서둘러야 할까. 몇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872시간이다. 미국(1811시간)과 유럽(1571시간)보다 많다. 그러나 우리가 늘 근로시간 단축을 고민할 때 대표 사례로 언급하는 유럽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성장이 지체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최고경영자(CEO) 니콜라이 탕겐은 "게으른 유럽보다 부지런한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다.

대학에서 노사관계론을 공부하다 보면 유럽은 휴가 제도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관대하고 세금은 높고 해고는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된다. 노조가 강력하기에 친노동 성향의 제도가 보편화돼 있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유럽은 성장과 혁신을 위해 일과 근로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다시 시작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과 중국의 혁신성장을 강조하면서 좀 더 근면하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주 4.5일제를 모든 기업과 업종에 일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도 있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어려움, 제조업의 공장 및 게임산업 등 투입한 노동시간과 산출되는 생산성이 정비례하는 업종의 경우 주 4.5일제는 필연적으로 성과 하락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심화, 업종·직무별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는다.

인공지능(AI) 도입으로 일의 성격 변화와 근로시간 유연화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다. 이미 국내 다수의 기업과 대학에서는 AI로 분석하고 정보를 축적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법 등 AI 활용 방법을 가르친다. 과거 기업이 수익 창출을 위해 필요했던 노동, 자본, 기술 중에서 첨단 기술 고도화로 노동에 투입될 시간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결국, 고민할 부분은 우리가 어떤 사회로 나아갈 것이냐에 있다.

중국은 996문화(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AI 기술혁명의 근원이 근면·성실에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일과 삶의 균형을 내세운 유럽 역시 미국과 중국에 경제와 기술 패권을 더 이상 넘겨주지 않기 위해 노력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도 잠재성장률이 0에 수렴하는 지금, 주 4.5일제 도입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정말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주 4.5일제를 도입하기 위해 AI가 일자리에 미칠 영향, 국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비중,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 등을 어떻게 보완할지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고민이 아닐 수도 있다. 이에 앞서 주 4.5일제의 목적과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2016년 준비 없이 진행된 정년 연장은 고령층 고용을 증가시켰지만 청년 일자리 축소와 고령층과 대체 관계가 깊은 36~54세의 임금을 한층 더 하락시켰다.

4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ㆍ시민사회단체 주4일제 네트워크가 '주 4일제 도입 및 노동시간 단축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목적과 방향성 명확히 설정할 필요

임금체계에 대한 고민과 고용 경직성을 고려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년 연장의 방향성과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지에 대한 철학이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정년 연장은 임금 하락과 청년 일자리 감소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고 사람들은 얘기하지만 충분한 숙의를 통해 방향성이 정립될 때 미래는 제대로 도착한다.

유럽은 저성장 국면을 다시 돌파하기 위해 일을 더 하자고 얘기하고 있고 중국은 자국의 부국강병 원인을 근면·성실로 해석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지층을 위해 이민자의 제조업 일자리를 강탈하고 고숙련 IT·금융 일자리까지 자국으로 끌어오기 위해 전문직 취업 비자(H-1B) 제도에까지 개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다른 나라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있기에 주 4.5일제를 도입하자는 건 곤란하다.

어떤 이는 4.5일제를 누리고 어떤 이는 제조업 또는 중소기업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4.5일제를 누리지 못한다면 이 제도는 또 다른 역차별만 초래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성장을 잠시 내려놓더라도 질적인 삶의 만족과 보람을 추구하는 사회로 전환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와 합의부터 필요하다. 매출과 생산성 하락 등의 고민은 우리가 여전히 성장을 중시하는 사회임을 의미한다.

누구나 금요일 일찍 업무를 마무리하고 2.5일간 가족과 친구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길 원한다. 이제부터라도 더 많은 숙론과 고민이 필요하다.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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