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몸값도 올랐다" 더 어려워진 K-콘텐츠 투자…갈곳 잃은 1.4조
[편집자주] K팝 아이돌을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흥행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케데헌은 왜 한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걸까. 전 세계가 열광한 K컬처 스토리에 정작 한국 자본도, 제작사도 숟가락을 얹지 못했다. 정부는 '제2의 케데헌'을 찾으라며 예산을 늘리는데 현장에선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발을 구른다. '문화강국'이라는 기치가 무색한 K-콘텐츠펀드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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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예산이 투입된 K-콘텐츠펀드의 미소진 투자금(드라이파우더)이 매년 급증하고 있다. 영화·드라마 등 각종 콘텐츠 제작비용 급증으로 흥행에 성공해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예산을 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P(지적재산권) 산업화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제2의 케데헌' 발굴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28일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플랫폼 '유니콘팩토리'가 문화체육관광부·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최근 4년간(2022~2025년 5월 기준) 모태펀드가 출자한 K-콘텐츠펀드(문화·영화 계정 합산, 전략·글로벌 계정 제외) 결성액은 총 2조7470억원으로 이중 37.5%(31조296억원)만 투자됐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미소진 투자금은 운용비 10%(2747억원)를 뺀 1조4427억원이다. 전체 출자금의 50% 이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펀드의 미소진 투자금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10% 수준이던 미소진 투자금 비율은 2023년 35%를 넘어서더니 지난해엔 50%를 웃돌았다. 이는 국내 전체 벤처펀드의 미소진 투자금 비율이 2023년 평균 17.4%에 불과했고, 지난해엔 결성액을 초과하는 투자가 이뤄진 것과 비교할 때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다.


이처럼 K-콘텐츠펀드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투자기준이 까다로워 투자대상 발굴이 쉽지 않은 데다 콘텐츠 제작비용 상승 등으로 수익을 올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K-콘텐츠펀드 중 2019~2023년 청산한 문화·영화 계정 9개 부문 자펀드 수익률은 대부분 마이너스였다.
한 대형 벤처캐피탈(VC) 대표는 "과거 영화와 드라마에 투자했었는데 정산 때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황당한 경험이 있다"며 "그 뒤로 문화 콘텐츠 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들이 배우·감독 등 몸값을 올려놓아 투자하기 더 어려워진 것으로 안다"며 "딥테크 등 투자처가 많은데 골치만 아픈 문화 콘텐츠에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문화강국을 정책 목표로 세운 정부가 관련 예산을 파격적으로 늘린 것도 드라이파우더가 점점 증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뜩이나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쌓여 있는데 내년 출자 규모가 더 늘어나는 것은 예산낭비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예산이 부족해 '케데헌' 같은 대박 작품을 놓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단발성 프로젝트 투자보다는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지적재산권(IP) 산업 활성화 등 문화 파이프라인을 심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통상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수출이 용이한 문화콘텐츠 등 소프트 머니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 산업혁신본부장은 "한국은 미국·일본은 물론 중국에 조차 IP 시장 경쟁력이 뒤진다"며 "필요하다면 IP 전략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케데헌 법안'을 만드는 한편 해외 플랫폼에 대응할 IP 주권 펀드도 하루빨리 기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28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청산된 모태펀드가 출자한 K-콘텐츠펀드(문화·영화 계정, 전략·글로벌 계정 제외) 9개 분야 자펀드들의 수익률 중위값(이하 수익률)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수의 '대박' 펀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손실을 기록했다는 의미다. K-콘텐츠펀드는 정부 예산에 민간의 자금을 더해 조성하는 펀드로, 콘텐츠·영화 프로젝트나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특히 일부 영역에서는 수익률이 -10%에 달했다. 해외 시장을 겨냥해 제작한 영화·드라마 등에 투자하는 '글로벌콘텐츠' 영역은 -16.2%, 제작 초기 단계의 영화·드라마 등에 투자하는 '제작 초기' 영역은 -9.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밖에 문화산업(-8.7%), 게임(-7.9%), 융합콘텐츠·기획개발(6.8%) 등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였다. 가장 선방한 공연예술 영역도 수익률은 -0.9%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수익률이 이보다는 소폭 증가했으나 다른 영역과 비교하면 낮은 것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정책 목적이 있는 모태펀드 특성상 수익률이 최우선시되는 건 아니지만 K-콘텐츠펀드의 수익률은 과도하게 저조하다는 평가다. 같은 기간 모태펀드가 출자한 전체 자펀드 중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는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에 투자하는 인큐베이팅 펀드(-2.5%)와 소재·부품·장비 펀드(-0.1%)뿐이었다. 나머지 21개 펀드는 모두 1% 이상의 수익률을 보였다. 제약·헬스케어 펀드(41.0%)나 해외진출펀드(14.7%), R&D 사업화(13.6%) 등 10% 넘는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도 있었다.
낮은 수익률은 민간자본의 참여를 가로막는다. 정부가 예산을 늘려도 함께 투자할 민간 출자자(LP)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실제 2023년과 2024년 대성창업투자와 코나벤처파트너스는 K-콘텐츠펀드 운용사(GP)로 선정됐지만, 출자자 모집에 실패해 GP 자격을 반납했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한국벤처투자가 진행한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에서 K-콘텐츠펀드 운용사 선정 평균 경쟁률은 평균 3.3대1로, 중진(중기)계정 평균인 4.3대1을 밑돌았다.

한 벤처캐피탈(VC) 심사역은 "문화·콘텐츠 분야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VC들이 있지만 소수"라며 "투자수익을 내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해 대다수 VC는 문화·콘텐츠 분야에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VC 심사역도 "여러 가지 펀드를 운용하는 대형 VC들도 문화·콘텐츠 분야 펀드는 맡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업계는 까다로운 투자 기준 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문화·영화계정 투자처를 엄격하게 설정해서 펀드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해외에서 흥행한 특정 영화가 국내에서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경우, 국내 매출 비중이 올라가면서 해외 매출 비중 20% 이상 영화에 투자하도록 한 글로벌콘텐츠 펀드의 주목적 투자처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투자한 VC는 펀드 목적대로 투자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를 받게 되고 차후 출자사업의 페널티로 이어진다. 콘텐츠의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해 굿즈나 푸드를 만드는 기업도 주목적 투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 VC 심사역은 "문체부가 K-콘텐츠펀드의 투자 주목적 범위를 결정하면서 업계와 소통이 부족했다"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으로 입증된 한국의 콘텐츠 경쟁력이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투자기준 완화 등 더 많은 자본이 유입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송지유 부장 clio@mt.co.kr 고석용 기자 gohsyng@mt.co.kr 김진현 기자 j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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