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 60㎝ 옆에 리튬 배터리 384개… 불꽃 튀자 열 폭주

김명진 기자 2025. 9. 2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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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 마비 부른 정보관리원 화재
28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가 소화수조에 담겨 있다.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로 정부 전산 서비스가 중단됐다. /신현종 기자

공공 온라인 행정 서비스 마비를 초래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26일 오후 8시 15분쯤 대전 본원 건물 5층 전산실에서 발생했다. 외부 업체 소속 작업자 13명이 이곳에 있는 ‘무정전 전원 장치(UPS)’용 리튬 배터리를 지하 1층으로 옮기기 위해 전원을 차단했다. 그로부터 40분쯤 뒤 배터리 1개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었고 불로 번졌다.

불이 난 전산실 내부 온도는 섭씨 160도까지 치솟았다. 화재 열기가 높은 탓에 전산실 온도와 습도를 적정하게 유지해주는 항온·항습기도 작동을 멈췄다. 결국 정보자원관리원은 불이 나지 않은 센터 내 데이터 서버까지 피해가 번질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나머지 서버도 모두 껐다.

그래픽=양진경

소방 당국은 27일 오전 3시 20분쯤 사다리차를 이용해 외부 유리창과 안쪽 격벽을 허물어 연기를 뺐다. 오전 6시 30분 초기 진화를 했지만 2시간 10분 만에 불길이 다시 일었다. 리튬 배터리 수백 개가 층층이 쌓여 있는 데다 배터리 주변에 설치된 서버 간 간격도 1.2m 남짓해 불길이 계속 번졌다. 불길을 잡으려면 물을 뿌리거나 배터리를 물속에 담가 냉각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 중요 정보가 담긴 서버가 파괴될 것을 우려한 소방 당국은 소량의 물만 뿌리거나 이산화탄소 가스 소화 설비 등을 사용했다. 이 바람에 재발화와 진화가 반복됐고 27일 오후 6시쯤에야 불길은 완전히 잡혔다. 화재 발생 22시간 만이었다. 리튬이온 배터리 팩 384개가 전소됐다. 배터리 주변 전산 장비 740대도 손상됐다.

27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 창문이 깨져 있다. 소방대는 전날 이곳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불이 나자 연기를 빼기 위해 유리창을 깼다./신현종 기자
그래픽=양인성

◇배터리 노후화·작업 실수 가능성

행정안전부는 화재 다음 날인 27일 오전 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위기상황대응본부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격상하고 화재 원인 조사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노후화가 이번 화재의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불이 난 배터리는 2014년 8월 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 설치됐는데, 제조사가 보증하는 내구 연한(10년)을 1년 넘겼다.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생산했고, 이를 넘겨받은 제조 업체 2곳을 거쳐 납품·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행안부와 정보자원관리원 측은 사용 연한 10년이 지난 UPS용 배터리를 계속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배터리를 관리원 5층에서 지하로 이전하기 위해 작업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전이 발생해도 전자기기에 전원을 지속 공급해주는 장치인 UPS는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교류 전원이 아닌 직류 전원을 사용한다. 전원이 연결된 상태에서 갑자기 케이블을 분리하면 전압이 급격하게 튀면서 불이 날 수 있다. 외주 업체 직원과 아르바이트생 작업자들이 전원을 제대로 끄지 않은 채 전선을 빼면서 화재가 났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27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소방대원들이 불에 탄 배터리를 소화 수조로 옮기고 있다. /신현종 기자

전산실 내 배터리와 서버의 간격 배치도 문제로 거론된다. 배터리와 국가 주요 정보를 담은 서버 간 간격은 60㎝였다. 미국화재예방협회(NFPA)는 리튬 배터리와 서버 간 거리를 90㎝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배터리 열이 서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사이에 금속 등 불연성 차단벽 설치도 권고하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핵심 설비가 같은 공간에 밀집해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가망 ‘쌍둥이 시스템’ 안 만들어

메인 전산망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도 예비 전산망을 통해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쌍둥이 시스템’(전산망 이중화)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전의 관리원 본원에서 불이 났더라도 분원인 광주·대구에서 곧바로 서비스를 대체 가동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이런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중요한 기간망은 외부적 요인으로 훼손될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이중 운영 체계를 당연히 유지해야 하는데, 시스템 자체가 없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관리원은 불에 직접 탄 전산실 서버에서 가동했던 96개 시스템은 대구센터로 이전해 복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전경찰청은 전담 수사팀을 꾸려 배터리 관리에 문제가 있었거나, 안전 조치가 미비했는지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UPS(무정전 전원 공급 장치)

주 전원이 정상적으로 공급될 땐 충전 상태를 유지하다가, 정전이나 전압 이상 등 비상 상황에서 즉시 전력을 공급하며 보조 배터리 역할을 하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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