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 밖의 중국’이 더 커져, 우리 설 땅 좁아진다는 뜻

조선일보 2025. 9. 29. 00: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 쓰나미 어떻게 넘을 것인가] [5]
2022년 8월 항공 촬영한 그리스 피레우스항에 수천 개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피레우스 항의 대부분은 세계 3위 컨테이너 선사인 중국 COSCO 해운이 소유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중국 쓰나미 어떻게 넘을 것인가] [5]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18세기 대영제국의 모습이다. 지구 전체에 식민지가 있어 해가 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21세기 중국 산업이 자본·자원·기술로 명실상부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보다 ‘중국 밖의 중국’이 더 무섭다는 말까지 나온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광산, 유럽의 항구와 공장을 표시한 지도를 보면 지구 차원의 제국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다. 해저 광케이블과 위성통신망 등 ‘디지털 영토’까지 더해진다. 이제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세계가 중국의 공장’이 되고 있다. 우리가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은 글로벌 물류를 새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스 피레우스항이 대표적 사례다. 아시아발(發) 화물들은 수에즈 운하, 지중해를 돌아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도착해 중·동부 유럽으로 배송됐다. 중국은 피레우스항을 첨단 스마트 항구로 개조한 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화물선을 이곳에 하역시켰다. 이어 중국 자본으로 건설된 ‘중·유럽 국제열차’로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등 유럽 내륙 시장으로 운송했다. 물류 시간을 일주일 이상 단축시켰다. 땅에서는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철의 실크로드’(철도)가 있다. 이를 중국 상품을 쏟아내는 통로이자,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차이나 경제권’으로 만드는 핏줄로 만들었다.

중국의 물류 장악 전략의 출발은 20년 전이다. 남중국해에서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와 유럽에 이르는 핵심 해상 길목(SLOC)의 ‘진주’ 같은 항구들을 확보하고 연결해 ‘진주 목걸이’ 전략으로 불렸다. 파키스탄 과다르항은 미국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인도양 출구, 미얀마의 차우퓨항은 믈라카 해협을 우회하는 에너지 수송을 맡는 요충이다. 스리랑카는 막대한 빚을 감당 못 해 함반토타항의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겨줬고,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지부티는 중국의 투자를 거부 못 하고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 건설을 허락했다.

‘중국 밖 중국’의 힘은 땅과 바다를 넘어, ‘디지털 실크로드’로 이어지고 있다. 핵심은 해저 광케이블과 위성 통신망이다. 지금 전 세계 통신 트래픽의 99% 이상은 해저 광케이블을 통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중국을 해저 통신망에서 배제하려 하지만 이미 중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주요 케이블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중국 업체 헝퉁이 소유하고, 화웨이 자회사가 시공하는 피스(PEACE) 케이블은 파키스탄에서 시작해 케냐, 지부티 등 동아프리카를 거쳐 이집트를 통해 프랑스까지 이어지는 약 1만5000㎞의 거대 해저 케이블망을 완성했다. 일대일로의 핵심 국가를 모두 연결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를 직접 연결하는 첫 해저 케이블인 남대서양 횡단 케이블도 화웨이 자회사가 짓고, 중국수출입은행이 돈을 댔다. ‘디지털 포용’을 명분으로 개발도상국에 케이블을 설치해주고, 그 나라의 데이터 흐름을 중국 통제 아래 두고 있다. 통신망은 정보와 데이터의 생명줄이다.

‘중국 밖 중국’은 우주로도 뻗어가고 있다. ‘궈왕(國網)’ 프로젝트로 불리는 위성통신망 구축이다. 1만3000여 개의 저궤도 위성으로 지구 전체를 묶는 초고속 통신 네트워크다. 머스크의 ‘스타링크’와 한판 승부를 벌일 태세다. 위성통신은 오지나 해양, 항공 등 기존 통신망이 닿지 않는 곳까지 연결하는 미래 통신 인프라의 핵심이다. 중국은 중국판 GPS인 ‘베이더우’를 ‘궈왕’과 함께 정밀 군사 무기와 자율주행 시스템, 나아가 전 세계 군사·민간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전력으로 진화시킬 것이다.

자원 확보는 더 무섭다. 아프리카와 남미에 도로·댐·철도를 깔아주는 대가로 자원 채굴권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배터리 핵심 원료인 코발트의 경우 세계 매장량의 70%가 묻힌 콩고민주공화국 광산 19곳 중 15곳이 중국 기업 소유다. ‘하얀 석유’라 불리는 리튬은 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 등 ‘리튬 삼각지대’가 중국 손에 넘어간 지 오래다. 일대일로 과정에서 막대한 빚을 진 개도국들이 항만이나 자원을 중국에 넘기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제 미국과 유럽이 전기차로 전환하려 해도 그 핵심 부품의 공급은 중국에 달려 있다. 미국의 제재가 반도체 같은 특정 분야에서는 잠시 통할지 몰라도, 글로벌 시스템에 실핏줄처럼 통합된 중국의 거대 유기체를 도려내는 것은 어려워졌다.

스페인이 그런 경우다. 미국·유럽의 중국 전기차 제재에 스페인이 주저하고 있다. 중국이 스페인을 유럽 전기차 허브로 만들겠다는 당근을 제시하자, 스페인은 미국·유럽 대열에서 이탈해 버렸다. 스페인만이 아니다. 독일 자동차의 중국 의존도는 판매량의 30~40%에 달하며, 폴크스바겐에 중국은 단일 최대 시장이다. 프랑스 명품 업체의 최대 고객 역시 중국이다. 유럽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산업들이 사실상 중국에 명운을 걸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우리도 한때 경제 영토가 세계 85%에 이르렀다고 했다. 세계 GDP의 85%를 묶는 FTA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였다. 상품을 파는 데만 열중하고 그 경제 영토를 어떻게 경작할지 국가적 전략이 없었다. 국가의 에너지가 점점 더 내부 정치 싸움으로 소진되는 것과 맥을 같이했다. 그 사이 중국은 공장·항만·철도·자원·통신을 엮어 해가 지지 않는 산업 제국을 이룩했다.

우리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한국 밖의 한국’이 중국보다 더 필요한 나라다. 기존 FTA 네트워크 안에 우리만의 ‘진주 목걸이’를 꿰어야 한다. 세계 전략을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고 여야 없는 지원이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이 확보한 해외 자원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수사하는 식의 정쟁으로 희망은 없다. 핵심 산업이 겹치기 때문에 중국이 넓어지면 우리는 더 좁아진다. 시간이 많지 않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