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독립을 위하여!” 교실 박차고 나선 강원 학생들
춘천농업학교 첫 만세운동 전개
3차례 동맹휴학 등 독립운동 지속
철원 등 도내 곳곳 보통학교 동참
양구 매동보통학교 교사 홍순창
항일교육 적발 일제 연행 후 징역
“시대 불의에 침묵하지 않은 청춘
함께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역사”
광복 80주년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서 - 25 강원학생독립운동
강원도는 구한말 의병항쟁의 중심지였다. 이에 자연스레 학생들에게도 위정척사의 정신이 전해지면서 강원도내 학교 곳곳에서는 학생과 교사들이 나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학생들이 중심이 된 초창기 독립운동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이어진 항일운동의 뿌리가 됐다.

■최초의 강원학생독립운동 전개
강원도 학생들의 항일투쟁은 1919년 3·1운동 시기부터 시작됐다. 이는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 중 하나인 광주학생독립운동(1929년 11월 3일)보다 10년 빠른 시기다.
도내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학교는 춘천농업학교(현 강원생명과학고)다.

학생들에게 항일정신을 고취시킨 이는 졸업생인 김병환이다.
양양 출신인 그는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상황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앞장서서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설득했다.
김병환을 중심으로 모인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은 학교 기숙사에 모여 비밀리에 거사일을 결정, 3월 7일 학교 조회시간 도중 일제히 운동장으로 나가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만세운동의 규모를 키우고자 춘천 시내로 나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본군 수비대와 헌병, 경찰 등이 이미 학교를 에워싸 교내에 갇혔다. 학교를 나가지 못하게 된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밤에는 일본인 교사의 숙직실을 둘러싼 뒤 만세를 외치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학생들의 만세운동이 계속되자 결국 학교는 3월 10일부터 일주일간 휴교에 들어갔다.
만세운동에는 춘천 정명여학교(1937년 폐교) 학생들도 함께했다. 춘천 정명여학교는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부에서 파견한 여선교사들이 설립한 일제강점기 춘천 유일의 사립여학교였다.

당시 춘천농업학교는 교동(구 춘천여고 자리)에 위치해 있었고, 정명여학교는 옥천동(현 강원도청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의 외침은 맞은편에 있던 정명여학교 학생들에게 들려 이들 역시 수업을 거부하고 만세운동에 동참했다.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의 항일운동은 계속됐다.
1923년에는 일본인 교장과 교원을 배척하는 동맹휴학을 전개했고, 1927년에는 일본인 교무주임의 추방을 거세게 요구한 끝에 7명의 학생이 퇴학을 당했다.
1929년에는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동조한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이에 당시 시위를 주도한 17회는 입학한 50명 중 대다수가 퇴학과 무기정학의 징계를 받아 21명만이 졸업했다.
193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의 항일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특히 이때부터는 교문을 벗어나 다양한 장소에서 활동했다.
1934년 4월 29일 개교기념일에는 차별교육에 반대하고, 일본인 교사 6인의 배척을 주장하며 혈서 투쟁과 금강산 이동시위를 벌였다. 농성이 계속되자 학부모까지 나서 이들을 달랬으나 끝내 복귀를 거부, 결국 경찰이 강제로 학생들을 끌고 왔다.
이후로도 청평사에서 동맹휴학운동을 전개하거나, 독서회운동에 동참하는 등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의 독립운동은 광복을 맞이하기 1년 전인 1944년까지 이어졌다.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은 조국이 독립하기 전까지 총 세 차례에 걸친 동맹휴학과 9번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청춘을 불태웠다.

■강원도내 초등학교 곳곳에서도 전개된 독립운동
강원지역 학생들의 저항은 고등학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도내 여러 지역의 보통학교(현재의 초등학교)도 독립운동에 동참했다. 초등학교의 독립운동은 주로 1919년 3·1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철원지역은 1919년 당시 여러 학교가 항일운동에 동참했다. 특히 철원지역의 만세운동은 학생들의 주도로 전개됐다.
만세운동은 두 방향으로 계획, 한 축은 철원농업학교(1922년 폐교) 학생인 박용철·이해종 등이 이끌었고, 다른 방향으로는 철원보통학교(철원초등학교) 학생인 임응렴과 이규정이 주도했다.
학생들은 옥양목으로 태극기를 만들어 3월 10일 북간산에 결집했다. 당시 만세운동에는 학생 외에도 지역청년과 기독교인 등 25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철원군청까지 만세 행렬을 이어가 군수와 일본인이었던 서무주임에게 함께 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했다.
철원 외 다른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은 계속됐다.

간성보통학교(간성초등학교) 학생들은 1919년 3월 17일 학교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고, 이어 3월 27일 간성장날에서 열린 만세운동에도 참여했다. 1923년에는 일본인 교사의 해고를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전개, 결국 해당 교사는 학교를 떠나기도 했다.
삼척보통학교(삼척초등학교)는 1919년 4월 15일 전교생 176명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읽은 후 만세운동을 가졌다. 이들의 행동은 인근에 위치한 송정보통학교(동해 북평초)에 영향을 끼쳤다.
이에 송정보통학교 학생들은 김진수의 주도 하에 재학생 50여명이 모여 4월 17일 교내에서 만세운동을 펼쳤다.
학생들만 독립운동에 나선 것은 아니다.

매동보통학교(양구 해안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 홍순창은 비록 나라가 주권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식민사관에 저항, 학생들에게 올바른 한국사를 가르치고자 노력했다. 특히 그는 학생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등을 알려주고, 현재 우리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지배받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홍순창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마음에는 항일정신이 피어났다. 이에 1939년 9월 일본인 구보 이치로가 교장으로 오자 그의 부임을 반대하는 뜻에서 동맹휴학을 진행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홍순창이 그동안 학생들에게 항일교육을 해 온 사실이 적발, 1941년 교사 홍순창과 학생 10여명은 일제에 연행됐다. 홍순창은 징역 2년을, 학생들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강원지역 학생독립운동의 의미
춘천농업학교 학생들이 일제에 저항하고자 교실을 박차고 나선지 100년 이상이 흘렀다.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이들을 기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올해 8월에는 춘천시청 로비에서 광복 80주년을 맞아 춘천지역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집중 조명하는 ‘벗이여, 나아가자 조선 독립을 위하여!’ 특별전이 진행됐다.
춘천학 연구소 관계자는 “학생독립운동은 근대 학문을 배운, 소위 엘리트 계층 청년들이 시대의 불의에 침묵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면서 “이들은 개인의 안위를 생각하기 보다는 사회 변혁과 조국 독립이라는 거대한 가치 실현을 위해 스스로를 투신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암울한 시대에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 했던 이들의 고뇌 어린 투쟁은, 훗날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 스며들었다”라며 “이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역사”라고 말했다.
정민엽 기자 jmy4096@kado.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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