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연성 독재’가 코앞까지 닥쳤다
탱크와 곤봉이 아니라
투표의 외투를 쓰고 왔다
국회, 정부, 사법부까지
장악 과정은 합법적이나
권력 통제할 빗장이 풀렸다
한국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 “그 정도는 아닐 텐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 지금 위기의 핵심이 있다. 독재도 진화한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붕괴는 투표장에서 일어난다. ‘연성 독재(soft despotism)’는 선출된 독재다. 일단 합법적이다. 탱크와 곤봉이 아니라 국민이 선택한 결과다. 위장술이 매우 뛰어나, 웬만하면 법이란 외투를 벗지 않는다. 국민 일부는 열성적 지지자다. 대부분은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른다. 차베스가 통치하던 2011년,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1% 이상이 10점 만점에 8점을 줬다. 실제는 시험관에 누워 있으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매트릭스 민주주의’다.
연성 독재는 퍼즐 맞추기를 해봐야 보인다. 민주주의 파괴가 단편적 형태로 일어나서, 개별 사건만 놓고 보면 심각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민주주의로 민주주의를 죽이는 것’이다. 사과 벌레처럼 속만 갉아먹는 수법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정당과 국회를 껍데기로 만들었다.
2022년 8월, 친명 세력은 당헌 14조 2항을 신설하려고 했다. ‘권리당원 전원 투표가 전국대의원대회 의결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이다. 당원 중심 정당을 만들어 당내 민주주의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이재명 강성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의 통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목이 쏠린 것은 80조 1항,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는 조항의 개정이었다. 각종 범죄 혐의를 받던 이재명 당대표 후보의 정치 생명이 걸린 문제였다. 조응천 전 의원에 따르면, “당헌 80조만 신경 쓰다가 이런 게 도입됐는지도 몰랐다.” 슬그머니 14조 2항을 넣어 “당의 최고 의사 결정이 10%의 권리당원만 발의해서 하면 통과”되는 걸로 바꾸려 한 것이다. 신설은 결국 취소됐다. 하지만 이게 자라나 한국 민주주의를 죽이는 독버섯이 됐다.

2024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맞아 ‘당원 중심 대중 정당의 길’이 노무현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당원 중심 정당’을 당 강령에 명시했다. 민주당은 개딸들의 놀이터가 됐다. 민주당 내 비명계 의원들을 상대로 문자 폭탄·좌표 찍기 등에 나섰다. 비명계 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는 시위를 벌였다.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이런 비민주적 작태를 비판했다. “3개월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받은 문자가 몇 만 개”였다. 거주지가 노출되어 신변도 위험해졌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개딸은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 정치의 형태”라고 높이 평가했다. 당의 대의 체계는 무력화되고, 이 대표의 영향력은 극대화되었다.
연성 독재는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와 팬덤의 공동 작품이다. 이 대표의 정치적 기반은 빈약하다. 영호남 지역 기반도 없고, 노조·시민단체에도 특별한 연고가 없다. 하지만 오직 개딸의 힘으로 당권을 장악하고, 다시 국회를 지배했다. 국회는 이재명 방탄 국회로 전락했다. 31회나 윤석열 정부의 공직자를 탄핵해 정부가 마비됐다. 덫에 걸린 윤 전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으로 자멸했다. 정당과 국회, 정부가 차례로 무너졌다. 그 폐허를 딛고, 마침내 대통령에 올랐다.
당대표 때 이 대통령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 다만 불법만 아니면 뭐든 했다. 합헌적 제도를 국정 파괴용 ‘무기’로 썼다. 법사위가 대표적이다. 법안을 최종 심사하는 법사위원장은 제2당이 맡는 게 오랜 관례였다. 다수당의 폭주를 막는 사실상 상원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21대, 22대에 그걸 깼다. 민주당 법사위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입법 폭주의 기관차가 됐다. 법률은 아니지만 관례가 무너지자,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가면역 결핍 흉기로 변모했다.
입법부, 행정부를 장악한 이재명 정부는 이제 사법부 장악에 나섰다. 대법원장 청문회를 강행하는 추미애 법사위가 그 선봉장이다. 검찰을 해체하고, 모든 수사권을 행정부가 장악했다. 예산권도 대통령실로 옮겼다. 모두 합법적이다. 하지만 권력을 통제하는 빗장이 풀렸다. 그대로 가면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명백하다. 2500년 전 플라톤은 “폭정은 다른 어떤 정치 체제보다 민주주의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지금 한국에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 연성 독재가 코앞까지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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