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부상의 시기…현 상황·맥락에 맞는 보도준칙 발굴을”
“저널리즘 원칙, 때론 유연성 필요
익명 보도하거나 한쪽 입장 보도 등
부득이하다면 기사에 솔직히 밝혀야”
“조국 사면 두고 상반된 칼럼 의아
혁신당 성비위 소극적 보도 아쉬워
사건내막 헤아릴 수 있는 설명 필요”
“탐사보도 중시·의제 다양화 돋보여
입법 전쟁·공격·출격 등 거친 용어
대결조장 우려 있어 신중하게 써야”

한겨레신문사는 2020년부터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에 따라 저널리즘책무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한겨레의 취재와 보도가 저널리즘 원칙에 맞게 이뤄지고 있는지 감독하고 개선을 권고하는 기구다. 현재 5기가 활동 중이다. 4기까지는 외부 책무위원들이 한겨레 콘텐츠에 대한 평가를 담은 글을 써 뉴스룸국에 보내오는 방식으로 활동이 이뤄졌으나, 5기부터는 사내외 위원들이 모여 좌담회를 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5기 책무위원회는 3명의 외부 위원과 3명의 내부 위원으로 구성된다. 외부 위원으로는 박선희 조선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위원장), 이종혁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참여한다. 이종규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 최혜정 뉴스룸국 이슈부국장, 황보연 논설위원이 사내 위원으로 함께한다. 책무위원회는 독자 모니터링 기구인 열린편집위원회와 번갈아가며 격월로 열린다. 첫 회의는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박선희 오늘은 첫 회의이니, 평소 한겨레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편하게 얘기해 봤으면 한다.
채영길 저널리즘이라고 하는 것은 규범이고 원칙적인 것이어서 실천적인 차원에서의 행동 지침과는 다르다. 저널리즘 원칙도 취재의 맥락과 보도 환경 속에서 유보나 협상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반헌법적인 내란 사태나 극우 세력 관련 보도를 할 때, 무죄 추정이나 익명 보도 지양과 같은 기존 원칙들을 계속 강조하는 것이 현장 기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오히려 현재 상황과 맥락에 맞는 실천적인 요청들을 발굴해내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종혁 저는 저널리즘 교수이기도 하고 한때 신문사 기자도 했던 사람인데, 언제부터인가 종이신문을 안 보게 됐다. 나도 모르게 자꾸 유튜브로 눈이 가더라. 돌이켜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때는 한겨레를 비롯해 레거시 언론이 엄청난 특종을 했다. 시민들을 거리에 나서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명태균 게이트나 김건희 여사 의혹 등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그만큼의 영향력을 느끼기 힘들었다. 레거시 언론의 반성 포인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는 구조적 문제에 집중하고 제도적 개혁을 지향하는 탐사보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종이신문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긴 하지만, 그러면서 몸이 무거워지고 기동력이 떨어진 게 아닐까 싶다. 예컨대, 뉴스타파 등에선 사건 관련 녹취록과 수사 기록을 통째로 들고 나와 보도를 하는데, 한겨레에서는 그런 활기찬 기동력을 보기가 좀 어려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를 계속 잡아 놓는 힘은 그런 기억에 남는, 기동력 있는 특종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박선희 개인적으로,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레거시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고 정파적인 의견들이 유튜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문을 보면 사안을 잘 정리해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문은 매체의 성격상 속도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한겨레는 기후위기나 비혼 출산, 비전향 장기수, 노인 일자리 등 다른 언론에선 잘 다루지 않는 이슈들을 계속 다뤄주고 있어서 의제의 다양성이 돋보인다. 기자들도 연구자들이 논문을 쓰듯이 각자 자기의 주제를 갖고 계속 이슈를 추적하면서 깊이 있는 기사를 쓰면 어떨까 싶다. 이런 점에서 ‘영월 나이트’ 시리즈는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제안하고 싶다. 인공지능(AI)과 관련해 국가 차원의 산업 진흥이라는 측면만 너무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한겨레는 인공지능 시대의 불평등, 소외,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한겨레 기사에 여전히 전쟁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입법 전쟁’, ‘조기 등판’, ‘거침없이 공격’, ‘출격’ 같은 게 대표적인 예다. 적대적 이분법에 기반한 기사들도 더러 눈에 띈다.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 속에 대결과 경쟁을 조장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외부 필자 한 분이 칼럼에서 조국 전 장관 사면을 다룬 한겨레 내부 칼럼의 관점이 달랐다고 언급했는데, 그런 관점 차이에 대해서 한겨레 내부에서 조율을 하거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조국혁신당 성비위 사건의 경우, 보도 분량도 적었고 내용도 너무 객관적으로만 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가 주로 ‘강미정 대변인이 이렇게 주장했다’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렇게 쓰면 ‘팩트도 없는데 그냥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건가’ 하는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최혜정 위원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조국혁신당 성비위 사건을 너무 중립적으로 다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저희 내부에서도 하고 있다. 지적을 반영해서 앞으로 더 고민하겠다.
채영길 요즘 시민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권위에 누군가 도전한다고 느끼면 즉각적으로 반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내가 지킨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를 두고 ‘정치 과잉’ ‘확증 편향’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들을 그렇게 만든 맥락이 뭔지에 대한 질문부터 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많은 시민들의 정치 과잉은 과잉된 정치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의 정치적인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시민들이 느끼는 것 같다. 정치 과잉은 정치를 통해 뭔가 실현하겠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과잉된 정치의 실체나 맥락이 뭔지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단순히 드러난 현상에 대해 엘리트주의적으로만 접근하면 언론에 대한 적대감만 키울 수 있다. ‘탈엘리트주의’가 지금 저널리즘의 하나의 새로운 원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 공동체’에서 벗어난 시각이 필요하다는 거다. 특히 무슨 무슨 ‘빠’라거나, 강경파라고 낙인 찍는 것은 시민에 대한 적대를 드러내는 것이고, 시민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투명성도 지금 추구해야 할 저널리즘 원칙 중 하나다. 투명성은 내가 왜 이 기사에서 익명을 쓸 수밖에 없는지, 한쪽을 지지하는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지 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때로는 취재보도준칙을 어기면서 기사를 써야 하는 상황이 있지 않나. 그럴 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기사에 밝히자는 거다. 취재보도준칙을 취재를 제약하는 가두리가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협상도 할 수 있는 유연한 잣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극우 세력에 의해 퇴행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이종혁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신뢰도에서는 한겨레가 최상위권인 것 같다. 그런데 영향력 측면에선 많이 부족하다. 한겨레가 고품질 기사로 신뢰를 얻는 상황인 듯하다.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이 매우 상세하게 잘 되어 있던데, 사실 그런 준칙은 모범생인 한겨레가 아닌 다른 언론에 더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의 좋은 기사들이 많이 알려지지 않는 게 아쉽기도 하다. 영향력을 높일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언론 상황은 누가 봐도 보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한겨레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만의 차별화된 의제를 설정하는 것 못지않게 보수 언론의 의제에 대한 ‘카운터(반박) 의제’ 설정을 통해 독자들의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는 정치 관련 뉴스를 중요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경제와 국제 뉴스를 앞쪽에 전진 배치하면 의제 다양성 측면에서 좋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경제 뉴스로 국제·안보·외교까지 판단하는 시대다. 한겨레가 국민의 경제 리터러시를 높이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채영길 흔히들 신냉전 시대라고 하는데, 지금의 냉전은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아니라 경제적인 성격이 짙다. 경제 뉴스가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고, 사회적인 것도 될 수 있는 그런 시대다. 경제 뉴스를 많이 다뤄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특히 요즘 20대는 경제지를 많이 본다.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열망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은 경제지를 통해 정치·사회 이슈를 파악한다. 시장 중심의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한겨레가 경제 현상의 맥락이나 정책적 함의 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박선희 경제는 단순히 돈 버는 일과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굉장히 중요한 사회 작동 원리이다. 정치하고도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한겨레가 경제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제안이신 것 같다.
채영길 몇 가지 추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한겨레가 핵심적인 미래 의제 두세 개를 정해서 힘있게 끌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둘째, 지금 여당이 3대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한겨레가 생각하는 개혁의 방향이 뭔지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한겨레가 어젠다를 제시해줬으면 한다. 셋째, 특검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사건의 맥락을 알 수 있도록 잘 정리해주는 콘텐츠가 있으면 좋겠다.
황보연 아까 조국 전 장관 사면 관련 칼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칼럼의 논조가 너무 상반되니 내부 조율이 필요하다는 말씀인지 궁금하다.
박선희 2019년 ‘조국 사태’로 진보 진영이 갈라졌고, 그 과정에서 한겨레도 곤욕을 치르지 않았나. 그런데 이번에 조국 전 장관 사면을 두고 결이 다른 칼럼이 실렸고, 그걸 외부 필진이 언급하기도 했으니, 그게 신문사 차원의 의도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온 것인지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다.
황보연 칼럼의 경우 큰 문제만 없다면 내부 조율 없이 나가는 편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보기에 의문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칼럼이 실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한번 논의해볼 사안인 것 같다.
최혜정 조국 사면 문제는 저희 내부에서도 의견이 다양해서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되기가 굉장히 힘든 주제다. 그래서 그걸 조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문제는 저희의 고민이기도 하다.
황보연 채영길 위원님이 아까 투명성 얘기를 하셨는데, 기사나 칼럼에서 어떤 주장을 강하게 할 경우에는 독자들에게 그 맥락을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양한 의견이 나오더라도 독자들이 좀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싶다.
채영길 칼럼은 일반 시민의 목소리와 견줘 굉장히 영향력이 큰 공적인 의견이다. 자유로운 의견이라고 보기 어렵다. 방식이 뭐가 됐든,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최혜정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팩트를 중심으로 최대한 자세하게 사안의 전모를 드러내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박선희 그런 점에서 이번 조국혁신당 성비위 사건 보도는 좀 아쉽다. 한겨레 기사만 봐서는, 당은 절차에 따라 다 했다는데 왜 피해자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분노하는지 궁금증이 안 풀리더라. 당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보도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겨레가 너무 조심스럽게 이 사건을 다룬 것 같다.
이종혁 끝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고 싶다.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에서 세부적인 규정보다는 (준칙 맨 앞 ‘책임과 의무’ 장에 있는)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 시민 공동체 헌신, 권력 감시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부 규정에 얽매이다 더 큰 가치를 못 지키게 되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
박선희 오늘 많이 배웠다. 저희가 책무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한겨레가 좀 더 사랑받는 언론이 되었으면 한다.
정리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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